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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거울에 비친 아이들의 노래, 내 마음 콘서트

어린이 작곡가/작사가 프로젝트

by 백다은


"오늘 아침에 거울보면서 무슨 생각했는지 말해볼 사람!" 초등학교 2학년 이안이가 턱에 브이자를

그리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꼭 방탄소년단 뷔처럼 멋져보였어요." 개구진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럼 혹시 마음 거울 본 적 있는 사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되려 질문이 쏟아진다. "마음을 어떻게 봐요?" "선생님은 보신 적 있으세요?" "음... 기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긴 하니까, 얼굴이 마음 거울일 수도 있겠네요. 울거나 화내고나면 얼굴도 못생겨 보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마음은 동그라미, 세모, 네모.. 이렇게 모양이 보이진 않아. 그래서 특별한 거울이 필요해."


이 때다 싶어 그림책을 연구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배워둔 '은유거울' 활동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은유거울'이란 나를 하나의 사물이나 색, 음계, 동식물 등에 빗대어 표현하는 활동이다.


"동산초등학교에 이렇게 시인들이 많은 줄 몰랐네!"

2,3,4학년 음악전담교사로 1년을 함께 쌓아온 시간 덕분일까. 고맙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활짝 열어 보여주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몇 번이고 소름이 돋아 팔을 연신 비벼대며 진정시키기 바빴다.

2학년 나윤이의 마음 (은유거울 작곡작사 창작 활동) - 자신을 차가운 눈송이로 비유했다. 겉으론 차갑게 방어하지만, 속마음은 자신에게 다가와주길 바란다며.
나는 차가운 눈송이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만지는 게 싫어서
차갑게 방어하지만
속마음은 다가오길 바란다.
나를 너와 뭉쳐 마음을 열자. 단단해지자.

-초등학교 2학년 김나윤 어린이 작사가 작품


God 거짓말 노래가 떠올랐다.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마)'


나윤이의 글을 노래에 맞게 바꾸어보니 이런 가사가 나왔다.

나는 차가운 눈송이
다가오지 마 (얼른 내게로 와)
괜히 겉으로만 그럴 뿐이야
그러니 나에게 다가와줘
창문을 활짝 열어둘게


나윤이는 자신이 쓴 가사에 차례가기, 뛰어가기 가락을 입혀 멜로디를 다듬고 있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완성된 멜로디를 무지개빛 라벨 스티커로 붙여보려고 한다. 빨주노초파남보, 도레미파솔라시, 색깔별로 두툼하게 준비된 스티커 뭉치에 내 마음도 웬지 든든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 빛깔에 어울리는 반주를 완성해 선물해줄 것이다. 언제고 노래가 나윤이 옆에서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게.

내 마음은 마치 구겨진 종이같다. 친구와 다투고나면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꼭 접혀졌다 펴져도 종이에 흔적은 사라지지 않듯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김다연 어린이 작사가 작품


친구와 다투고 난 후 속상한 마음을 구겨진 종이에 비유한 아이도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쓴 글 맞아? 토이나 아이유 노래가사 같다. 종이가 구겨졌을 때 흔적을 상처와 연결짓고, 펴도 남아있는 그 자국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친구와 다툰 그 날 밤
내 마음은 구겨진 종이 같아
아무일 없단 듯 웃어보지만
접혀졌다 펴진 종이 흔적은
내내 사라지지 않듯 말야
2학년 민현이의 마음 (은유거울 작곡작사 창작 활동) - 자신을 필통에 갇힌 연필로 비유했다. 필통문을 활짝 열고 자유로워지는 꿈을 꾸며.


똑소리나는 민현이에게 이런 글이 나올 거라곤 사실 예상치 못했다. '필통에 갇힌 연필'이라.. 아이들에게 누가 쓴 글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이 단어가 주는 느낌에 대해 물었다. 그냥 연필도 아닌 필통에 갇힌 연필 하니, 이이들은 뭔가 외롭고, 답답하고, 슬픈 느낌이었을 것 같다고 했다.


"혹시 비슷한 경험한 사람 손들어볼래?"

여기저기서 대다수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버튼을 누르기도 해 순식간에 화면창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우리 연필아, 너만 그런 거 아니래. 코로나 때문에 집콕 오래해서, 시험 스트레스 받아서, 칭찬 못 받고 맨날 야단맞아서. 다들 그런 적 있대." 내 말에 민현이는 안도하는 듯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었다.


3학년 준영이의 마음 (은유거울 작곡작사 창작 활동) - 자신을 멘탈이 약해 쉽게 깨어질 수 있는 유리컵에 비유했다.

평소 온라인 수업에 자주 지각을 하고, 말없이 조용히 리코더를 부는 준영이. 수업 시간이 끝날 무렵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종이를 건넸다.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자신의 글과 그림을 보고 있는 나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나는 유리컵이다. 왜냐하면 멘탈이 약해서 유리컵이 깨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코로나만 아니라면, 아무말없이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저 용기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말할 뿐. 돌아서 나오는데 일주일 내내 이 아이의 슬픈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얼마나 마음에 와 닿을지 모를 조언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 그대로를 직시하는 것이 좋을지도. 아주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거나 깨질 수도 있지만, 대신 유리컵은 그만큼 투명하고 맑은 속성이 있단 걸 넌지시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유리컵 조그만 충격에도 깨져요
그러니 나를 조심히 다뤄주세요

-초등학교 3학년 윤준영 어린이 작사가 작품
2학년 정빈이의 마음 (은유거울 작곡작사 창작 활동)
나는야 해결사 스카치 테이프
도레파 파파미 레레레 레레도

너희들의 틈을 메워줄게 (빈틈없이)
파파파파 파파 미미미미

이제 좀 그만 싸울 래 (쫌!)
레레 레 미미 파파 솔

랄라라라 트랄랄라라
파파파파 미미미미미

행복-할 시간도 부족해
레레-레 미미미 솔솔파
3학년 자영이의 마음
요-즘 내 머리 속은
도-도 레 레레 레레

꼬불꼬불 꼬불꼬불 라면같아
미레도레 도레미레 미미레도


항상 씩씩하고 장난기 넘치는 자영이에게 대체 무슨 고민이 그렇게도 많았던 걸까.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 숙제에, 레벨테스트에, 기말고사에, 엄마 잔소리 등등 속사포같이 불만사항을 토로하기 바빴다.


나는 말없이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자영이의 꼬불꼬불 복잡한 라면같은 머릿 속 고민에는 좋아하는 민진이 생각이 가득한 건 아닐까. 친구들이 '왜냐면?' 'why?' 중독성있는 후크송을 불러대자, 100% 쌍방향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된다. 아이들 노래 너머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 누나, 동생의 웃음 소리도 마이크를 통해 들려온다.


왜냐면(why?) 왜냐면(why?)
라라라(why?) 솔솔솔(why?)

좋아하는 여자친구 생각만- 나
파미레미 파미파라 솔파미레 도


아이들은 지금껏 답이 정해진 시험지에 어른들이 원하는 정답만 적어내야만 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진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 '처음 순간'을 맞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역시 서로의 속마음을 듣고는 "ㅇㅇ이에게 그런 면이 있었어?"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곧 하늘로 비상할 알바트로스로,

집에 돌아가면 녹초되어 스르르 녹는 눈사람으로, 친구들 사이 갈등을 봉합하는 스카치 테이프로,

좀 더 완벽한 10으로 성장 중인 숫자 9로,

코로나로 창고 속 갇힌 축구공으로,

가온도에서 높은도까지 오가는 피아노 건반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위장을 위트있게 파리지옥으로..


마음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전해준 287명의 시인 한 명 한 명에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이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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