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탐색 및 디자인을 중심으로, 약한 연결의 힘을 통한 삶에서 공부찾기
삶을 이해하는 일은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대개 삶의 작은 한 부분만을 알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는 점점 기계를 닮아간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얻거나 사실을 끌어모아 엮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uddu Krishnamurti)
일상의 순간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바라봅니다. 평범해보이는 일상 속에서 나날이 쌓여가는 경험과 배움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삶을 꾸려갑니다.
한 초등학생의 하루를 들여다봅니다. 잠이 덜 깬 채로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 밥상 앞에 앉아 눈꼽낀 얼굴로 하품을 하면서도 이 얼마나 감사한 순간인지 표현하진 않아도 아이는 이미 느끼고 있습니다.
과학 시간에 ‘태양계와 행성’에 대해 배우며 세상의 전부인 줄만 알았던 나와 주변은 어쩌면 이 우주 속에선 먼지와 같은 작디 작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철학자같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국어시간에 연극을 하며 극중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기도 하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뛰어놀고 우정을 나누며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떤 유형의 교육을 따로 떼내어 보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것이 공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선택하여 공부에 좀 더 집중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 매료되어 아미르 칸이라는 배우이자 감독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난독증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고,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는 인도교육에 대해 알아보고, 인도의 명문 공대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세 얼간이'를 보며 이 문제가 한 학교만이 아닌 커다란 사회구조 안에서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비단 한국사회만이 아닌, 더 나아가 전지구적인 문제임을 알고 세계의 교수법은 어떤지,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공부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가는 지점입니다.
진로탐색 및 디자인을 중심으로
각자 삶의 환경과 맥락 속에서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발견하고, 다양한 능력과 재능을 탐색하고 연구하여 학습자의 배움의 이력(CV, Curriculum Vitae)을 구성해가도록 그 과정을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개별 맞춤 교육.
제가 정의해본 개별맞춤교육인데, 여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정지훈 교수님과 교육 팟캐스트를 만들던 2014년무렵부터 교실과 교실 밖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의 관심사를 학과로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하였
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제자와 디지털 아티스트 정병길 화가님과의 만남을 주선하였습니다.
디지털 그림 전시회 학과 (10세, 여)
디지털 아티스트 정병길 화가님은 은행 지점장 은퇴 후 평소 좋아하던 풍경화(유화) 그림을 생활 속에서 쉽고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아이패드 등 디지털 기기에 그림을 그리고, 여러 차례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분야에서 인정받는 분이었습니다.
꾸준한 지도와 피드백 덕분에 아이는 방학 내내 그림 연습에 푹 빠져들었고, 저 또한 디지털 기기에도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마이크로 소프트가 주최한 Girls Coding Party에 함께 참여하는 등 진로설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또다른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도 최연소 작가로 당당하게 참여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위 디지털 아트 사례 외에도, 발명, 글쓰기, 소프트웨어 등의 분야에서 관심사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한 맞춤형 수준별· 개별화 수업 및 창의적 진로설계를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직접 기획, 온라인 강의 제작에까지 실행해보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축적된다면, 학생에게는 학습과정의 계획 및 실행 과정 포트폴리오, 교사에게는 맞춤형 진로설계 도움 및 교수학습자료 제공을 위한 아카이브가 구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당시 약한 연결의 힘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모델은 Master Class 마스터클래스 ;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인 셀러브리티 강의를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었습니다.
“Everyone should have access to genius.”
누구나 천재와 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로 시작된 마스터 클래스는 넘사벽이라 불릴만큼, 이름만 들어도 혀를 내두르게 하는 셀럽들이 강사진으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만약 한스짐머가 음악을 가르친다면?”
“만약 고든램지가 요리를 가르친다면?”
“만약 더스틴호프먼이 연기를 가르친다면?”
아론 소킨(Aaron Sorkin) : 시나리오 강의.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 지명된 할리우드의 작가 겸 제작자
더스틴 호프먼(Dustin Hoffman) : 연기 강의. 수차례의 미국/영국 아카데미상, 6번의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한 배우
세리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 : 테니스 강의.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를 기록
한스 짐머(Hans Zimmer) : 영화음악 강의.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각종 시상식에 총 19번 지명된 천재 영화음악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 보컬 강의. 빌보드가 선정한 2000년대 여자 음악가 중 마돈나에 이어 2위를 기록
데드마우스(Deadmau5) : 일렉트로닉 뮤직 프로듀스 강의. EDM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 프로듀서
어셔(Usher) : 퍼포먼스 아트 강의. 셀 수 없는 수상, 노미네이트 경력과 2100만 장의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진 팝가수
제인 구달(Dr. Jane Goodall)의 커뮤니케이션 강의.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한 침팬지 행동 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
고든 램지(Gordon Ramsay) : 요리 강의. 미슐랭 스타 15개와 대영제국훈장 OBE를 받은 쉐프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 : 방송 강의. <그레이 아나토미>를 집필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 중 하나
스티브 마틴(Steve Martin) : 코메디 강의. 아메리칸 코메디 어워드 평생공로상과 각종 비평가 협회의 남우주연상을 받은 코미디언, 뮤지션, 배우, 작곡가, 제작자, 감독, 작가
출처: http://froma.co.kr/309
비록 강사별 2~5시간 정도의 이벤트성 단기강좌에 불과할 수 있지만, 온라인 교육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강사의 독점 워크북, 인터랙티브 과제, 커뮤니티 토론 활동 독려 및 심층 피드백 등의 장치를 둔 것도 나름 고심해온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야 할 교사 전문성' 글에서 대안적 관점으로 제시한 교사 전문성 (진영은, 함영기 (2009) 수업 전문성의 유형별 분류) 중 연계적 전문가(자신의 교과 영역을 넘어서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학교 밖 사람들과도 협동해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와도 이 시도가 연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아직 미완의 것이지만요.
사실 국내에서도 master class와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프라인상 각종 초청 특강은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한때 진로교육 열풍으로 비슷한 컨셉의 컨텐츠는 많았습니다. 물론 영상미, 컨텐츠 구성, 전체적인 퀄리티에는 차이가 있었겠지만요.
학습자 동기부여 면에서는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적어도 제가 본격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컨텐츠 제작 자체에도 많은 시간, 비용, 노력이 필요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단순히 콘텐츠의 제공자가 아닌 촉진자로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시도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습 환경이나 자료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니까요.
관심 중심 교육과정 운영에서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적극적인 조력자, 그리고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학생들이 필요한 기본역량을 갖추도록 이끌며, 가지고 있는 역량을 향상하도록 도움을 주는 코치이다. 조력자, 코치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교사가 필요한 지식, 역량,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관심 중심 프로젝트 학습을 진행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교사도 관심 중심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차츰 갖추어가게 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패는 ‘성공적이지 않은 실험’일 뿐임을 기억하며 익숙하기 위해 노력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박남기, 열정을 갖고 배우게 하는 법 : 학생 ‘관심 중심 교육과정’ 운영)
교실에서의 공부와 자신의 삶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 느끼게 되는 학생의 입장에서 관심사를 중심으로(특히, 진로설계) 가정과 교실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끌어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이 또한 저의 관심사니까요.
물론 모든 배움을 이렇게 교실에서의 공부와 자신의 삶과 연결짓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나름대로는 다양한 교수학습법을 적용한 수업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어서 현재로서도 충분히 접목 가능한 부분들도 있다는 것도 알고 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체감하는 흥미나 절실함을 높일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교육심리학자 비고츠키 역시 다른 교육학자들처럼 ‘교육에서 흥미가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아이가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 받을 때 능력있는 타인과의 협력적인 대화를 통해 전수받은 전략을 내면으로 통합시키며 이를 통해 새로운 발달이 일어나 학습발달을 주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흥미의 매개는 부모, 교사 또는 영감을 주는 누군가를 통한 것인데, 이는 아이가 누구와 만나는지, 어떤 기회와 마주하게 되는지에 따라 배움은 얼마든지 더 확장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경험과 배움이 쌓여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왔는지 보여줄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배움의 이력이자 개인의 인생사를 뜻하는 라틴어 Curriculum Vitae 로도 연결될 것입니다.
If you want to build a ship, don't drum up the men to gather wood, divide the work and give orders. Instead, teach them to yearn for the vast and endless sea.
Antoine de Saint-Exupery
이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배를 만들어주거나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는 생텍쥐베리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교육자 역시 실패는 ‘성공적이지 않은 실험’일 뿐임을 기억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끈기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 배움의 시간이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하며 현재진행형의 고민을 나눠봅니다.
관심사 교육과정 바탕의 맞춤형 수준별·개별화 수업 4에서 이어집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추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자료도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