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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호 Mar 29. 2024

모텔관리자의 시선처리

본능에 관하여


햇살이 좋은 3월의 봄날이다. 새로 산 야생화 화분을 현관 앞쪽으로 옮겨 일광욕을 시키려는데 한 커플이 로비에 들어선다. 익숙한 듯 ‘외부인출입금지’라고 써진 문을 열고 체크인을 돕는다. “예약자분 성함이?”

 

오전 11시, 이 시간이면 대실 손님으로 북적인다. 나는 대실 손님들은 나란히 같은 층으로 배정한다. 이는 퇴실 후 청소팀의 수월한 청소 동선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을 나누는 커플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이유인 즉 모텔에서 나는 신음소리는 벽과 벽 사이를 통과하기 마련인데 한쪽에서 시작된 소리가 옆방으로 전달되면 그 소리는 다시 옆방에서 요동치고 그 소리는 다시 그 옆방으로, 다시 그 그 옆방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소위 노래방에서 어느 한 곡을 지정하여 부르기 시작하면 옆 방에서 ‘내가 더 잘할걸?’ 생각하며 같은 곡을 따라 부르는 식이다. 누가 누가 잘하나?

 

오늘 대실은 6층이다. 601호, 602호, 603호... 차근차근 방을 채운다. 자!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승자는 누구인가? 이 게임의 제한 시간은 오직 선수들만이 정한다. 선수가 경기를 시작하면 시작되는 것이요. 손님이 경기를 끝내야 끝이 나는 것이로다. 요란한 신음소리를 내는 손님이 반가울 지경이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다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걸 어떻게 아는가? CCTV로 손님의 입실 여부를 확인하다 보면 603호 손님이 602호 앞에서 어물쩍 거릴 때가 있다. 그 이유가 무얼까? 뭐 어물쩍 거리는 것은 양반이고 아예 대놓고 문 앞에 귀를 대고 듣는 사람도 있는 걸?!

 

그럼 나라는 녀석은 어떨까?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지 8년 차인 베테랑이자 40대 중년의 여인! 꽃을 좋아하고 로비에 수많은 자기 계발서, 에세이, 시집들이 꽂혀 있는 걸로 보아 교양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601호 문이 열린다. 601호 게임오버.

나는 110번을 누른 후 지시한다.

“601호 청소”

 

청소가 끝나고 객실 점검을 위해 6층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문이 열리고 한 발 짝 내디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현란한 신음소리. 주체할 수 없다. 나 8년 차잖아. 나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익숙해질 때도 됐다구!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601호에 페브리지(방향제)와 청소기를 들고 들어간다. 아뿔싸! 소리는 계속 들린다. 청소기를 돌려! 어서 돌려막으라고 그 소리를! 머리가 지시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 방안에 멍하니 서있다. 아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멍하니 서있다니?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야? 잠시 후 신음소리가 멈추자 청소기가 돌아간다. 페브리지를 침구에 두세 번 뿌린 후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1층입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장에 삐져나온 책을 밀어 넣는다.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 건강한 사람이다.

나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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