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함덕에서
어릴 적 아빠는 술고래였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다. 아빠의 술버릇은 집안의 막내였던 남동생을 으스러지게 끌어안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18살이 되던 날이었다. 사춘기 소녀에게 첫 남자친구가 생기고 남자친구의 친구들과 내 친구들이 카페에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주문했다. “500 여덟 잔요!” 나는 조금 놀랐지만 익숙한 척 굴었다. 그땐 술을 마시는 행위가 퍽이나 어른스러운 거라 착각했으므로. 다들 한 모금씩 마셨다. 나는 첫 술을 입에 댔다. 생각보다 쓰지 않았고, 좀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벌컥벌컥 단숨에 한 잔을 비웠다. “안주 먹어.” 남자 친구가 감탄했고 친구들 역시 “오!” 박수를 쳤다. 나는 “한 잔 더!”를 외치고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룻밤이 흘렀고 친구의 집 침대였다. 정신이 드냐는 친구의 말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부모님께는 친구집에서 놀다가 피곤한 내가 잠든 것이라 전했단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넌 어떻게 500 한 잔을 먹고 뻗냐? 너무 귀엽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쑥스럽기도 했지만 귀엽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며칠 후 남자 친구와 연락이 끊겼고, 이유인 즉 친구가 남자 친구와 사귀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는 아이라고.
첫 남자 친구에게 그렇게 차이고 또 다른 친구가 슬픈 나의 사연을 달래주겠다며 ‘전라도 땅’이라는 소주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망가질 테야.’ 욱하는 마음에 체리소주를 주문했다. 두 번째 술자리. 체리소주는 생각보다 달았다. 안주 없이 음료처럼 연거푸 들이켰다. 다시 깨어보니 내 방 침대였다. 보수적인 부모님께서 왜 아무 말 없으실까 궁금하여 언니에게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너 어제 경찰한테 연락 왔어. 웬 여자애가 피를 흘리며 누워있다고. 네가 쓰러지고 몸을 주체 못 하자 친구가 우리 집에 전화하러 갔었고 그 사이 누군가 신고를 했던 거야. 자세히 보니 옷에 묻은 건 피가 아니고 체리소주 오바이트 한 거였고. 그리고 널 혼내지 않은 게 아냐. 기억 안 나? 너 욕실에서 엄마가 옷 벗기고, 찬물 부으면서 바가지로 죽어라 맞은 거. 나랑 엄마가 너 씻겨서 재웠지.”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알코올 흑역사가 기록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두 번의 블랙아웃으로 술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진짜 어른이 되었을 때 나의 주량을 알고,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깨달았다. 술은 내성적인 내 안의 진짜 나를 불러내곤 했다. 그것은 용기였고, 희망이었으며, 또 다른 세계로의 출구였다. 그 후로 종종 알을 깨고 나오는 새가 되곤 했다.
지금 내 나이는 마흔에서 쉰으로 향해있다. 달라진 것은 없다. 내 스스로 알코올 의존증 환자임을 인식하고 있다. 임신하고 출산 후 몸조리를 할 때를 제외하고 줄 곧 술을 입에 대고 살았다. 사실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도 술 때문이었다. 첫 만남 때 날 새도록 마신 것. 밤에 하는 잠자리 역시 술을 마시면 더 흥이 났다. 낯설었던 친구와 가까워진 것도 술을 마시고 마음을 열었던 덕이었고, 첫 책을 출간한 계기도 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술이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람들은 내게 술을 끊으라 말하지만 술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술이 있어야 웃고, 술이 있어서 울 수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끊고 싶은 생각이 없다. 술은 내게 삶 그 자체니까.
언젠가 기안 84가 힘든 일정을 마치고 자취방에 앉아 소주와 참치캔을 따며 이 맛에 산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지친 하루 나를 달래는 건 퇴근 후 마시는 술 한 잔이 전부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생각부자다. 모든 일을 시행하기 전에 수많은 계획을 짜는 편이다. 플랜 1~@까지. 그러나 술에 있어서는 즉흥적 P형이다. 언제든 전화가 오면 승낙을 한다. 그러기 위해 주변 정리는 필수다. 아침 이불정리, 모닝커피, 꽃 물 갈아주기, 청소, 빨래, 그 외에 할 일을 밀리지 않고 해 둔다. 마감이 있는 일 역시 며칠 전 다 해두는 편인데, 그 이유가 바로 언제든 술을 마실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술을 마시면 언제든지 건강을 해칠 수 있고, 생애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주변 정리를 다 해둔다. 내가 죽거든 시신은 기증을 하라는 따위의 유언도 마친 상태다. 내 기준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했고, 갖고 싶은 것도 모두 가졌다. 사랑, 이별, 결혼, 집, 차, 자식, 샤넬백, 외제차, 해외여행, 시계, 와인, 똥커피, 책 출간에 이르기까지 살며 꿈꾸어온 모든 것들을 해치웠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리고 덤으로 하루하루 살면서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신다. 혼자 술에 취하면 펑펑 울기도 하는데, (아참! 다른 사람들 앞에선 울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하게 기쁨이 넘치는 삶에 대한 감사와 환희, 갸륵함이 이유다.
사람들은 내게 술 좀 그만 마시라는 둥, 줄이라는 둥의 충고를 하곤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가슴에 담아두는 나는 어떻게 살라고?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의 병이 걸리거나 스트레스 없이 몸이 아프거나 어차피 인생은 모 아니면 도 아닌가? 그렇다면 내 선택은 마음의 병 말고 몸의 병을 택하겠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공을 발로 차고, 던지고 굴러가는 공을 쫓으며 노는 아이들은 ‘공을 가지고 논다.’ 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공이 아이들을 가지고 논다는 이론이었다. 어쩌면 술이 그런 지도 모르겠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를 마시는 것인지도. 술과 나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렇게 ‘무명 수설가의 알코올중독이야기’를 마친다. 햇살이 좋은 제주 함덕에서 쓰는 글이다. 저 멀리 델문도에 주차된 차가 많군. 델문도는 아메리카노가 8000원인데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 아마존에서 5개에 2800원 주고 구입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셨다. 고소하니 해장되던데 커피값이 8000원 이라니? 그 돈이면 제주 에일 맥주 한 잔 값인데. 픕.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해야지. 제주 바다를 안주삼아!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