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남편
"어떻게 해줄까? 이혼해 주면 돼?"
경주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삭막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틀간 컵밥과 라면만 먹었다던 남편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은 고기마니아 두 명을 위해 대패 2팩, 제육볶음, 목살 1팩, 쌈채소 손질 등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납작 엎드린 나는 갈비찜을 하고 대청소를 한다. 물론 출근 전! 남편은 쉬는 날이었다.
(한가한 날은 부부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한다)
그때 날아온 문자 메시지 한 통.
사진 속에는 남편과 어느 여인이 함께 앉아 있었다. 때는 2025년 4월 28일 저녁 9시 23분이었다. 지인 부부가 나의 남편과 닮은 사람이냐며 보내온 것이다. 분명 남편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출근길에 남편에게 문자를 남긴다.
"컵밥을 앞에 계신 분과 드셨나 보네."
그랬더니 대뜸 걸려온 전화.
"어떻게 해줄까? 이혼해 주면 돼? 내가 모텔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참나. 그 정도 믿음도 없다면 같이 살 이유가 없지. 그리고 사진 보낸 사람 우리 부부사이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이(남편은 우리 부부 사이가 매우 좋고, 행복한 결혼생활 중이라 생각한다) 분명하니까 친하게 지내지 마라. 전화번호 보내. 죽여버릴 테니까."
뭐지? 논지이탈. 주제 흐리기. 가스라이팅.
내가 화가 난 것은 여자를 만났다는 것이 아니다. 여자 문제로 헤어질 거였음 진즉 이혼했을 것이다. 산 세월이 25년인데 겨우 그런 일이 이유가 될 것인가? 늘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져왔다. 아이들이라는 무기를 쓴다. 잘못을 하고도 "이혼하던지. 지겹다. 나도" 그러면 나는 "오빠 제발, 이혼은 안돼. 미안해." 이렇게 마무리된다. 바람이던지 금전적 사고던지 친정식구와의 문제에서도. 독박육아, 만삭까지 일하고 출산 후 28일 만에 다시 출근 뭐 이런 건 당연했던 것이고. 죄송하지만 그따위의 일들은 내게 타격감 제로.
그러나 내가 분개한 것은 나를 함부로 대한 점이다. 나에겐 툴툴대고 욕 섞인 말을 하고, 불리하면 이혼 협박을 하거나 오히려 큰소리로 겁을 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하고, 없는 시간도 쪼개어낸다?
불과 엊그제 4월 8일 결혼기념일조차 술 마시러 나갔던 그 사람이다. 선물? 현금? 편지? 꽃? 살아줘서 고맙단 흔한 문자 한 통 조차 없던 그다. 그런데 연향 3 지구 카페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놓고, 내겐 집에 처박혀 컵밥과 라면밖에 못 먹은 척 연기를 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라니! 수시로 영광인 줄 알라며 주입시킨다.
"나 광주은행 가니까(광주은행 법원점) 법원으로 와. 오늘 이혼하자. 지금 나와."
내가 이야기하자 그는 움찔하며 "내가 모텔을 갔냐? 그 연락처주라고. 죽여버릴 거니까." 문제의 본질을 계속 흐렸다.
"연락처를 줄 이유는 없고, 법원 앞으로 와."
전화를 끊고, 출근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늘 그랬듯이 웃으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객실 최종 점검을 하고 손님을 맞이했다. 남편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고, 귀찮아진 나는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답장을 했다. 싸우기도 귀찮다. 헤어지는 것도 귀찮다. 퇴근 후 친구와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평소보다 조금 많이 마셨다. 노래방 가서 춤도 추었다. 3차론 해장국 집. 그런데 해장국집에서 남편의 절친. 남편이 결혼기념일, 해외여행, 일주일 두세 번 만나는 친구. 오늘도 그를 만나러 간다 했는데, 유부남인 그가 어떤 여자랑 1대 1로 해장국을 먹으러 왔다. 유유상종. "재수 씨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예요. 친구!" 여자는 내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자자 진짜로 친구예요. 우리"
여보세요. 누가 뭐래요. 당신들 삶에 관심 없어요.
해장국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남편에서 전화가 왔다. 가게 201호에서 자고 온다고. 모텔을 운영하다 보니 외박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내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조금 울었다.
하루가 지났고, 숙취로 죽을 맛이다. 타이레놀 500 먹고 침대에서 두통과 사투 중이다. 머리가 아프니 마음이 아픈 것을 잊게 된다.
오늘 모텔하는 여자 출근불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