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일본만 가려해도 시골에선 하루가 걸린다. 공항대기 3-4시간만 잡아도 공항까지 가는데 2-3시간이 걸리는 걸 합하면 5-7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도착 후 수속까지 생각하면 거의 하루가 나간다.
그렇게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좋았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크다. 이게 웃긴 게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또다시 해외여행 병이 도진다는 사실.
주변 지인들의 해외여행 이야기, sns사진, TV홈쇼핑 여행상품을 보고 여행바이러스가 스멀스멀 다가온다.
그다음 여행지는 또다시 국내여행, 다시는 해외여행 안 간다며 다짐을 한다. 그러다 또 해외 갔다 국내 갔다 왔다 갔다 마지막엔 여행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는다. 진짜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상태에 따른다.
경주여행.
선물을 바리바리 챙겼다. 여행지에서 산 거울, 키링, 화이트셔츠 여러 장, 화장품...
순천에서 경주까지 대중교통으론 최소 6시간이 걸리므로 자차를 이용하기로 한다. 내 차가 있으니 마음껏 짐을 싣는다. 리조트라니까 슬리퍼, 한 번 사두고 사용 안 한 노래방기계, 딸내미 데리고 온다니까 미술용품(패브릭, 물감, 붓...) 바리바리 풀소유. 그러나 옷은 속옷과 양말 달랑 1장씩.
읽을 책과 쓸 책 각각 1권씩 챙기면 준비완료다.
기름을 가득 넣고 폴킴, 이무진, 로제, 케이시로 엮은 앨범 들으며 출발! 야호!
휴게소의 진미는 핫바가 아닌 커피! 휴게소마다 맛 다름 주의! 심지어 섬진강 휴게소 커피는 상했다? 어떻게 그러지? 남도에서 꽤 잘 나가는 섬진강 휴게소. 그래서일까? 커피를 주문 전에 미리 빼놓고, 아아 주문 시 3초 만에 나온다. 불안한 마음에 한 모금! 뭐지? 차 돌려서 따져 물으려다 참는다.
도저히 못 먹겠어서 5000원 버린셈치고 진주 휴게소에서 다시 구입. 위의 사진을 보시라. 좌 진주 우 섬진강. 색부터 다르다. 참고하시길.
(영업방해 의도 없어요)
네 가지 색깔의 장미화분을 구입했다. 꽃을 사려다가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어서. 4명을 만나니까 노랑, 분홍, 다홍, 빨강. 예쁘다. 선물을 하는 의도가 불순하다. 사실 내가 이런 선물을 받고 싶어서 좋아하는 상대에게 선물하고, 기쁨을 나눠가지려는 흑심이 있다. 이 마음 들켜선 안돼!
#교리김밥
경주에서 김밥 팔아 건물 올렸다는 곳이다. 인당 2줄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 오픈형 주방에 직원이 여럿이고, 주차장이 있다. 김밥집에 주차장이라니! 포장 손님이 제법 많다. 이곳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숙소도착. 피규어때문에 눈 돌아간다. 철인 28호. 내 성 정체성을 의심하던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로 본 첫 영화. 비디오 구입 후 '노아의 방주' '철인 28호'를 사은품으로 받고, 몇 번이나 돌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리조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경주와 북울산 사이에 있는 곳으로 1000 고지 가까이 된다. 공기 맑음 주의! 골프장이 메인인 듯. 산속이라 제법 불륜? 들도 온다는 고급 정보가? 후훗~
신간도서를 선물 받았다. 원태연 시인님의 에세이인데 두께가 제법 있다. 양장본이라서 고급스러움은 덤. 인테리어용으로도 제격인 듯하다. 원태연 시인님의 글은 1992년에 처음 만났는데 벌써 30년도 넘게 흘렀다.
#원태연의 작사법
#손끝으로원을그려봐니가그릴수있는한크게그걸뺀만큼널사랑해
#고양이와선인장
적당히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고, 숙면했다. 여행 온다고 설친 것도 있지만 부부싸움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장거리여행을 한 탓 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 복어해장을 했다. 전날 점찍어둔 해장국집이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전망 좋은 카페로 향했다.
아아 마시고, 헤어지기 아쉬워 가까운 산책로로 향했다.
"와 공기 좋다. 고지가 높아서인가?"
감탄하며 걷다가 문제 발생. 사찰이라고 해서 기도와 명상이나 할까 했는데(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사람이 안 보인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데 스님인가? 아닌 것 같은데 왜 차만 다니는 거지? 가도 가도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펼쳐진다. 1시간 넘게 걷다가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한다. 가위바위보해서 진사람이 차 가져오기. 나머지는 목적지까지 걸어가고 있기로. 결국 차를 가져오는데, 우와 진짜 걸어갔음 오늘 안에 도착 못할 뻔했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며 찾은 전망 좋은 식당. 바다뷰.
일등이 전복죽이었는데 못 찍었군!
이야깃거리가 없다. 이야기를 너무 나누어주고 왔나 보다. 늘 혼자여행을 하다가 오래간만에 여러 멤버들과 다녀왔다.
여행이란 혼자도 여럿도 좋다.
부부싸움만 아니었다면 더 많이 웃었을 텐데. 다시 돌아가려니 행복한 마음속에 불안한 마음의 불씨가 자꾸 피어나려 하는 걸 간신히 무시했다.
잠시만 이 여행지에서만큼은 모습을 보이지 마시길. 그곳에서 기다려달라고. 싸움의 기억을 순천에 두고 온 줄 알았는데 언제 달라붙어 온 걸까?
사실 영영 돌아가지 말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여행한 친구의 아이를 보니 내 아이가 떠올랐고 미치게 보고 싶어졌다. 어릴 적부터 직장 생활한다고 남의 손에 맡겨 키웠는데, 부모까지 뺐는 건 잔인하니까. 남편과 내가 헤어지면 엄마, 아빠는 존재해도 '부모님'이라는 명사는 쓸 수 없을 텐데. 아 그건 아니 되겠다. 내가 더 잘하자. 애들한테 좋은 아빠 만들어주려면 나부터 다정하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먼저 웃으며 다가가봐야겠다.
현명한 내가 선택한 남자니까.
이야기의 끝이 삼천포로 빠졌네.
둘째 날 혼자 삼천포 여행을 했다.
곧바로 기록하지 않아서 두서없는 내용에 웃음이...
남편을 생각하며 숙소에서 시 한 편 지어보았다. 이번 여행은 관계개선을 위한 반성의 시간을 가진 셈이다.
의자
의자 하나가 있다
낡아서 삐걱거리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이십 년 전 가구점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덧칠이 벗겨져
보드라운 스웨터의 털실이
한 올 한 올 걸리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나사못이 빠져
엉덩이에 상처를 남기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이제는 낡고 낡아
좁은 집만 차지하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한때는 화장대 앞에서
한때는 책상 아래에서
한때는 식탁 곁에서
제 쓸모를 뽐내던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사세요
헌 의자 팝니다”
중고 마켓에 올려볼까?
의자 하나가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공짜로 준대도
가져갈 사람 없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이젠 팔 수도 없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무릎 시린 이에게
딱 맞는
의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가 있다
닳고 또 닳아
까칠하던 피부가
맨들맨들해진
의자 하나가 있다
여자 하나가 있다
의자 하나를 사서
애증으로 꽁꽁
엮이고 엮겨
쓸모를 다했어도
버리지 못하는
여자 하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