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전주 여행 2025.4.19-20

반 고흐, 뱅크시

by 서호

대전/전주 여행_2025.4.19-20



*출발

“뭐? 반 고흐 원화가 대전에 전시된다구?”

토요일 정오 출발을 약속하고 헤어진 것은 4월 15일 화요일 밤이었다. 녀석도 고흐전에 너무 가고 싶었다며 그날 밤 입장권을 예약했다.

“넌 예술인 패스?” 녀석이 물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예술인 패스’ 아! 나에겐 그것이 있었구나. 예술인 패스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문학, 시각예술, 연극, 무용, 전통예술 등 예술인에게 발급해 주는 것으로 공연 및 전시 관람 할인(혹은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예술인 증명’을 받은 후 ‘예술인 패스’를 발급받는 절차를 시행하지 않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1년 전인가 예술인 증명만 인증받아두는데 그쳤다. 급히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접속하여 ‘예술인 패스’를 신청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모바일로 카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입장료는 22,000원이었으며 예술인 패스 소지자는 17,000 원으로 할인받는다.

4월 19일 정오 녀석을 태우러 갔다. 내가 장거리 운전에 특화되어 있으므로 늘 내 차를 이용한다. 서울, 광주에서는 운전 잘 못하는 도시 기피자이긴 하지만.

춘향 휴게소에서 해장을 하기로 한다. “난 순찌” , “난 유부우동” 메뉴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

우린 서로 눈 맞춤을 한다. 두 손을 쌍권총 모양을 하고 “야 너두?!” 동시에 웃음바다가 된다. 여행 전날임에도 애주가였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자리에서 과음을 했던 것이다. 아차 휴게소에서 40분을 허비하다니!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시속 120~km유지. 살아보니 그랬다. 더 밟아도 덜 밟아도 실제론 10~20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대전진입

대전에 무슨 차가 이리 많은가. 양보도 안 해 준다. 차선을 바꿀 수가 없다. 또 끼어들기를 계속 당한다. 시내 운전은 어렵다. 그래도 괜찮다. 결국 안전하게 도착할 것이고 고흐를 만날 것이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대전엑스포를 갔었다. 1992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기억이 선명한 까닭은 가장 친한 친구가 포항으로 전학을 갔는데, 수학여행지에서 딱 만났던 것! 와 인연이란 게 참... 둘째 아이가 5살 무렵 두 번째 방문. 대전에 박물관이 많아서 아이들이 즐기기에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분명히 대전엔 차가 없었단 말이다. 도로는 넓게 나있었지만 텅 비어서 운전하기 쉬웠던 말이다. 그래서 기차를 두고 차를 탄 건데 이게 무슨 일인가? 친구 녀석에게 대전에 차가 이리 많은 지 몰랐다. 전엔 운전하기 쉬웠다 한탄을 하니 내게 묻는다. “대전에 언제 왔는데?” “음 준호 5살 때.” 참고로 2025년 준호는 대학생이다. “야! 15년 전엔 순천도 차 없었어. 아 이론... 하하하 못살아.” 듣고 보니 그렇다.

*주차운

도로에 즐비하게 주차된 자동차들. 몇 바퀴를 돌고 돌았다. 주차 때문에 늘 애를 먹으며 살아왔다. 그날은 학부모 모임날이었다.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소리에 미리 갔는데 자리가 없어 돌고 또 돌았다. 멀리 겨우 한 자리를 찾아 차를 대고 카페에 도착했다. 단체 카톡에서 늦게 출발한다던 지인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난 늘 주차운이 좋아서 주차 걱정은 안 해. 여기 바로 앞에 한 칸 있던데?”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주.. 차.. 운?’ 아 그런 단어가 있었다니! 주차운! 바로 그거야. 난 늘 주차장이 없다며 징징거리고 늦은 퇴근 날이면 남편을 졸라 이사 가자 극성을 부려왔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겠다. 그날 이후 ‘난 주차운이 좋아. 저 모퉁이를 돌면 내 차를 주차할 넓은 주차장이 나올 거야. 집 가까이에 주차 자리가 한 칸 있을 거야. 오늘 열심히 했으니까.’ 이렇게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우주가 답해 주길 기다렸다. 간절한 바람이 닿았을까 그 이후론 주차할 곳이 항상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두 바퀴를 돌고 나니 대전시립미술관 앞에 딱 한 칸이 있는 것이 아닌가? 기적처럼! 마음이라는 것이 이리도 중요한 것이구나. 늘 좋은 생각을 갖고 살아야지. 삶이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니까.


*불멸의 화가 반 고흐

2007년과 2012년에 이어 12년 만에 찾아온 반 고흐의 진품 명화전. 국내 전시는 네덜란드 오털루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과 협력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76점의 작품들 하나하나 고흐의 숨결이 느껴졌다. 연대기적 그림 전시로 고흐가 살아온 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전시는 네덜란드 시기(나도 무언가가 될 수 있다), 파리 시기(빛의 발견), 아를 시기(색채의 발견), 생레미 시기(자연으로 돌아가라), 오베르 쉬르 시기(나는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인간인가) 이렇게 다섯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었다. 1881년부터 1890년까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또 짧은 기간 동안 2100점을 그렸다고 하니 평균 1년에 200점 이상을 그린 것이고, 1.5일에 한 장을 그린 것이니 예술성을 넘어 그림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누가 따를 수 있으리. 책에서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그림들도 많았다. 신기했던 것은 진품을 눈앞에서 보니 그의 온기가 느껴졌고, 작품 앞에서 두근거리기도 하고, 와락 눈물도 났다가, 한동안 그림 앞에 발이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기도 하였다. 한 가지 단점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사람들이 한글을 못 읽는다는 것인데 이 말인즉, 줄을 서지 말고 보고 싶은 공간을 자유롭게 이리저리 돌아보라고 전시장마다 메모되어 있었으나 한 줄 서기를 하여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나같이 키 작은 꼬맹이는 꼰지발을 서고도 관람이 힘들었다. 작품을 순서대로 보지 않고 사람이 없는 공간부터 보려 지나가면 내가 새치기를 한 사람 취급을 하기도. 줄 서지 말라고 쓰여있는데. 역시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살아온 대로 해석하고 행동한다. 전시 매너에 살짝 실망하고 찾은 곳은 참새 방앗간. 굿즈 구매 57,000 원. 기쁜 마음으로 소비를 마친다. 그래 행복이란 이런 거랬어. 명품백이나 비싼 옷이 아니라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사는 거야. 쓸 때마다 기쁨이 샘솟는 그런 것들 말이야. 예쁜 양장본 일기장이나 (이를테면 고흐의 아몬드나무 표지의 다이어리 같은) 매끄럽게 써지는 펜이나 내 이름이 새겨진 에코백도 좋겠다. 카멜리아향이 나는 향수나 봄 햇살처럼 포근한 이불도. 비싼 차가 닳을까 세워두기보다는 어디든지 맘 편히 굴러다니는 작은 자동차 한 대면 충분하지.


*뱅크시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은 뱅크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 고흐 전시장 바로 옆에 있었다. 관람료는 22,000 원으로 동일했지만 예술인 패스는 통하지 않았다.




뱅크시는 익명의 영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이자 사회 운동가, 영화감독이다. 놀랍게도 그의 신원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전 세계 도시의 벽이나 공공장소에 사회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풍자적인 그라피티나 스텐실 작품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자본주의, 소비주의, 권력,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비판한다.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미술 시장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대중문화와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풍선과 소녀 (Girl with Balloon). 뱅크시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벽에 그려진 어린 소녀가 손에서 놓친 하트 모양 풍선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6억 원에 낙찰봉이 내려치는 순간, 액자에 미리 숨겨져 있던 파쇄기(shredder)가 작동하면서 작품의 하단 부분이 액자 밖으로 길게 늘어지며 파쇄되기 시작했다. 작품의 절반 정도가 파쇄된 후 파쇄기는 멈췄다. 경매장은 순식간에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파쇄기가 작동하는 영상을 올리고,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파괴하려는 충동 또한 창조적인 충동이다(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라는 글을 남긴다. 이는 작품이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것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메시지이자, 작품의 가치와 소유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으로 해석된다. 파쇄된 작품은 퍼포먼스 아트작품으로 가치가 더욱 높아졌고, 2021년 재경매에서 295억 원에 낙찰되었다. 뱅크시가 훌륭한 가장 큰 이유는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난민 캠프, 정글 등 위기에 닥친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라피티를 남긴다는 점이다.




얼마 전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천상병 시인의 에세이를 읽었다. ‘일제 삼십육 년 간의 피침략을 겪으면서 문학가들은 무엇을 했던가. 어느 날 나는 어떤 소설가에게 물은 일이 있다. “일제 침략 때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라고 했더니, “작품을 썼지 뭐 별일 있나”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 별일‘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별일이 없었던 그 일에 있는 것이다. 만 사 년도 채 못 되는 독일의 압제 시의 프랑스의 문학가들이 집 안에서 작품만을 쓰고 별일 없이 지냈던가. 레지스탕스니 하면서 최근에 와서 떠들고 있지만 그런 안이한 관념상의 붓장난이 아니었다. 생명을 걸고 실제로 총검 바로 앞에서 투쟁한 것이 레지스탕스 운동이었다. 삼십육 년과 사 년을 비교하지 않아도 좋다. 이것은 세월의 길고 짧은 것이 아니라 민족성의 더 구체적으로는 한 인간의 진가 문제가 되는 일이다.’



책임 있는 예술가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희생을 감수한 비판도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나의 창작물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별일 없는' 행위들만 기록됐던 것은 아닐까? 시대적 아픔에 공감하며, 예술을 통해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기여해야겠다. 현장으로 나아가자.

뱅크시 관람을 마치고 굿즈샵으로 이동. 우표와 엽서, ‘소녀의 풍선’ 하나씩 든 채 열 다섯 소녀가 되어 본다.

*전주

아무래도 대전에서 낼 오전 출발하면 출근에 지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행선지를 전주로 찍었다. 대전에서 전주는 한 시간 거리. 현재 시각 오후 6시 5분. 도착 예정 시각 오후 7시 5분. 고속도로 입구만 찾으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 시립박물관이 고속도로 입구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목포에는 갈치가 순천에는 길치가 있었으니. 허허. 자꾸 샛길로 샌다. 돌고 돌고 돈다. 이러다 대전에서 못 나가는 거 아닌지. 겨우 빠져나와서 갈림길을 만나고 남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세종시를 향해 굴러가는 바퀴. “경로를 재검색합니다.” “경로를 재검색합니다.” 갈 수 있을까? 몇 번의 시도 끝에 전주 톨게이트가 눈앞이다. 이것 봐. 결국 오잖아. 걸리더라도 말이야.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말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점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오른쪽 차선으로 톨게이트 진입을 하는데! 아뿔싸! 이건 또 뭐람? 가장 우측은 하이패스가 아니었다. 결국 차에서 내려 직원 호출을 누르고 현금 계산을 하는 원시인. 녀석과 나는 빵 터졌다. 난 왜 운전대만 잡으면 아이큐가 50 정도로 떨어질까? 킥킥거리며 전주에 자주 가는 아중리 숙소 도착. 짐을 풀고 밥집을 찾는다. 마음은 양식을 먹었으니 이제 몸의 양식을 먹을 차례 아닌가?



그렇게 찾은 곳은 ‘일품대패’ 화요일 여행 계획 세울 때 갔던 그놈의 일품대패. 1인분 3900 원의 달콤한 유혹, 다양한 채소와 반찬 무한 리필!

콸콸 시원한 소주 한 잔을 잘 따라와 준 그녀의 잔에 따른다. “건배” 마지막 밤의 축제가 이제 시작되었다.



마무리는 컵라면과 편의점김밥 그리고 해장술이다. 행복하고 감사한 1박 2일 여행을 마친다. 잘살자. 다음 주엔 어디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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