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데이비드 이글먼

서평

by 백경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의식이라는 작은 방 너머를 들여다보다


뇌과학의 발전 속도를 세상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과학은 한 발 두 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우리의 직관과 통념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데이비드 이글먼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그런 간극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스포일러 주의)


이 책의 핵심은 명확하다. 우리의 뇌는 대부분 무의식으로 작동한다. 의식은 그야말로 ‘작은 방 한 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그 좁은 공간의 바깥에서, 수많은 결정과 반응, 사고와 감정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온 신경을 집중해 페달을 밟고, 균형을 잡고, 핸들을 조절한다. 이때는 의식이 전면에 나서 모든 행동을 지휘한다. 하지만 일단 몸이 루틴을 습득하면, 자전거 타기는 자동화된 프로그램처럼 무의식 속에 저장된다. 그 이후로는 의식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인간 행동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의식이 등장하는 순간은, 기존의 무의식 패턴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을 때 뿐이다. 새로운 변화, 예외 상황, 혹은 판단이 필요한 갈림길에서만 의식이 고개를 든다.


이 책은 무의식의 구조를 탐색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자유의지, 도덕 판단, 사법 시스템까지 확장시켜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 모든 행동은 결국 뇌에서 비롯된다. 만약 뇌에 문제가 있다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행동 역시 비난보다 이해가 필요한 대상일 수 있다. 이 영역은 요약보다는 직접 읽고 사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통념이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타인의 행동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품었던 판단과 감정들이 의심스럽게 다가온다. “나는 무엇을 알고 감히 타인을 재단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에 스며든다.


갈릴레오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다. 제임스 허튼은 지구의 나이를 밝히며 교회의 시간 축을 무너뜨렸고, 다윈은 인간을 진화의 하나의 가지로 되돌려놓았다. 양자역학은 현실의 직관적 구조를 해체했으며, 크릭과 왓슨은 생명의 본질을 단 네 글자의 시퀀스로 환원시켰다. 그리고 신경과학은 이제 인간의 자아가 ‘의식’이라는 통제실에서 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책을 읽을수록 직관은 너무도 자주 틀린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사고방식은 종종 진실과 먼 거리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생각—‘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자각—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절실한 태도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책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것이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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