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해설
고궁에가면 문화재 해설사가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도슨트 투어가 있지요. 문화재와 작품의 의미와 가치 이면의 이야기까지 이해가 잘 되도록 풀어주는 사람들. 건축에도 건축해설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적정한 건축소통을 지향하는 의미에서 주요 건축용어와 일상어를 빗대어 건축해설서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기초는 모든 일의 기본이며 시작이고, 중급과 고급으로 가기 위한 초보적인 단계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든 운동이든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건축에서 기초는 그보다 훨씬 무겁고 절실한 말이다. 건축의 기초는 땅과 맞닿는 부위를 말한다. 먼저 땅을 충분히 다지고, 그 위에 건축의 기초를 만든다. 기초는 다른 부재보다 더 두껍고, 더 많은 힘을 받는 구조체다. 일상의 언어에서도, 건축의 언어에서도 기초는 결코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공부를 할 때도 기초가 허약하면 뒤로 갈수록 어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기초가 탄탄하다”는 말은 무엇을 하든 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과 비슷하다. 건축도 일상도 부실한 기초 위에 세우면 위태롭고 신뢰할 수 없다. 건축에서 위에 있는 것들이 부실하면 보강하거나 일부를 다시 만들 수 있지만, 기초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사실상 전체를 허무는 일에 가깝다. 그만큼 기초는 시작이면서도 되돌리기 어려운 결단이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멋진 입면, 세련된 마감, 반듯한 공간. 하지만 건축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기초는 완성된 뒤에는 땅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건축물의 운명은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상당 부분 결정된다. 이 점은 인생도 닮아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태도와 성품, 반복해 쌓아온 습관과 버티는 힘이다. 결국 foundation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오래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건축과 인생에서 foundation의 차이가 있다면, 건축의 기초는 구조체이고 인생의 기초는 사람의 성품과 태도라는 점일 것이다. 건축은 땅에 기초를 내리고, 사람은 마음과 몸에 기초를 쌓는다. 하지만 둘 다 공통점이 있다. 기초가 튼튼할수록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게 갈 수 있다는 것.
나무로 만든 건축물도 기초는 돌로 세워져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무는 따뜻하고 유연하지만, 땅과 닿는 곳에는 더 단단한 것이 필요하다. 기초는 사람의 발과도 닮았다. 키가 큰 사람이 대체로 발이 크고 넓듯이, 발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체격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건물이 모두 불타 사라져도 기초는 남는다. 그리고 그 기초를 보면 그 건축물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황룡사지와 미륵사지가 그런 예다. 황룡사가 있던 터, 미륵사가 있던 터라는 뜻의 이름처럼, 지금은 건물이 사라지고 기초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초의 크기와 간격을 보면 그 위에 어떤 건축이 서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기초가 크고 간격이 넓다면, 그만큼 기둥 사이가 넓고 높은 건축물이 있었으리라는 힌트가 된다. 그렇게 건축의 기초를 바탕으로 문헌 기록과 당시의 양식을 대조해 복원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기초를 다진다는 말은 단순히 초보 단계를 밟는다는 뜻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버틸 힘을 준비하는 일, 나중에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지금은 아래를 두껍게 만드는 일이다. 기초를 잘 다지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결국 가장 중요한 부분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생도 건축도 기초를 오래 다지고 튼튼히 할수록 더 멀리, 더 높게, 더 깊어질 수 있다. 건축의 기초는 땅에 가려지고, 사람의 기초는 성품과 태도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좋은 기초, 튼튼한 기초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