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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장 May 31. 2024

취미는 지도 보기

건축가가 될 재능이란 따로 있을까

취미는 지도 보기

 

나는 어려서부터 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세계지도, 국내지도 그리고 사회과부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지도를 좋아했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어디가 위에 붙어 있고 아래에 붙어 있는지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무엇이 보면서 상상하는 것이 재밌었다.    


지도는 들여다볼수록 볼 것이 많았다. 종이지도라 디지털 맵처럼 줌인 줌아웃을 자유롭게 하는 것도 아닌데도 하나씩 보다면 못 읽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기호도 옆에 범례에 적혀 있고, 누구에게 물어볼 것이 없이 글자와 숫자만 알면 지도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지도 자체는 멋이 있어서 가지고 싶게 생겼다. 그림이 있고 색깔이 있다. 부호나 숫자와 글자도 많은데, 무엇인가 그 안에 질서가 있었다. 많지만 정갈했고, 빈데 없이 빼곡했지만 강약있다.


지도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랑이가 그려진 대한민국전도와 지구본에 있는 세계전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로 받았던 사회과부도, 과거의 지도가 있는 역사부도. 하이라이트는 아빠차에 있던 교통지도였다. 전국일주 교통지도는 도로 위주로 표현이 되어있고, 상세페이지가 링크로 따라가면 축척이 작아지면서 주변을 상세하게 표현한 지도가 나온다.


 

오래 살던 단독주택을 떠나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도식계획지도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둔산동 개발계획도’라는 지도를 보고, 청사가 생기는 부분은 노란색, 공원은 녹색, 상가가 있는 곳은 빨간색 그렇게 덩어리 덩어리 잘라진 땅과 도로를 보면서, 새로 살 동네를 익혔다. 덩어리 땅 중에 하나인 우리가 이사 갈 크로바 아파트 단지 구성을 보면서 동호수의 구성이나 상가와 경로당 놀이터 그리고 테니스장 배드민턴 장을 보고 산책로를 훑고 정문 후문 쪽문도 훤히 꿰었다. 마침내 지어져서 이사한 아파트를 걸어 다니면서, 상가는 생각보다 가깝고 단지는 생각보다 크구나 동네 크기에 대한 감도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처음 본 평면도라는 것은 진짜 새로운 차원의 지도였다.  

분양 카탈로그에 나온 평면도를 어찌나 열심히 봤는지 모른다. 현관을 열면 왼쪽에 화장실과 내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할머니 방이 있고. 처음 듣는 베란다라는 것이 있고 다용도실이 있었다. 내방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막내 언니와 같이 써야 하는 방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새 아파트에  처음으로 우리의 방과 새 가구가 생긴 것이었기에 엄청난 꿈에 부풀었다. 언니와 나는 책상과 이 층침대를 넣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이렇게 배치해 보고 저렇게 배치해 보고, 원하는 것이 다 안 들어갈 거 같으니 마음속으로 방을 더 키워서 이것저것 방을 꾸미는 상상을 했었다. 막상 이사를 가니 상상 속보다는 방이 작아서 책상 두 개를 한쪽벽에 붙이니 이불 깔고 잘 자리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의 평면도는 상상의 세계에서는 우주만큼 컸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좀 나긴 하지만, 그렇게 공간을 상상하고 그리는 사람이 될 첫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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