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글쓰기
"어떤 집을 되면 좋을지 글로 써주세요"
건축주와 두어 번의 미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바탕으로 원하는 집에 대하여 글로 적어 보시라고 했다.
말하자면 '설계요청사항'을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이미 대화 중에 한 이야기 일지라고 글로 써서 달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글은 말과 다른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이지만 말로 뱉는 단어보다 종이에 써 내려앉은 단어는 무게감이 있다. 종이라는 물질 위에 잉크로 새겨진 언어는 안착되어 형태를 갖추게 된다. 머릿속의 생각이나 공기 중에 떠다니 음성언어와 달리 종이에 쓰인 단어는 중력을 받는다. 이렇게 쓰여 있는 언어는 물질성을 갖추고 있다. 중력을 받고 형태가 있는 언어의 메시지는 강하다. 생각이라는 추상이 물질성을 갖추면 건축이라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생각이 언어가 되고, 언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손으로 쓰면서 선택된 단어들은 쓰는 사람만의 감각을 전달한다.
‘설계 요청사항’이라는 건조함에도 사람마다 선택한 단어로 담아내는 미묘한 감각의 차이가 있다. 진맥을 하는 의사가 환자의 심장의 진동을 느끼며 데이터가 전달하지 못한 정보를 읽어내듯이, 선택된 언어의 감각에 담긴 건축주의 마음의 알아챌 수 있다. 그런 것을 기대하면서 건축주에게 원하는 것을 글로 써 달라고 하는 것이다.
역시나 건축주가 노트 한 면에 적은 몇 가지 소망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 부분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공간으로 번역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건축가는 공간 번역가가 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