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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 왜 하필 84m²일까?

건축가는 영화에서 공간을 본다

by 윤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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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 왜 하필 84m²일까?

주말에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를 봤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무리해서 아파트를 산 30대 직장인 노우성(강하늘)의 이야기입니다. 아파트값이 치솟던 시기, 마지막 상승 열차에 올라탄 그는 영끌로 아파트를 마련하지만, 대출 이자를 갚느라 밤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뛰고 정작 집은 제대로 누리지도 못합니다. 설상가상, 층간소음까지 겹치면서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집니다. (여기까지는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영끌족의 현실을 비판합니다. (영끌족이란 ‘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로, 부동산·주식 투자 등을 위해 대출과 자산을 총동원하는 사람들을 뜻하죠.) 사람들은 모두 아파트값 상승만 바라며, 층간소음이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져도 “집값 떨어질까 봐” 쉬쉬합니다.

감독의 메시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의 입을 통해 드러납니다.


“공동주택은 다 연결돼 있어서 아무리 잘 지어도 근본적으로 소음이 날 수밖에 없어.

비리? 시공?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에 살려면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야 한는거 아니야?.”


“아파트가 무슨 죄야?
결국 사람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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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m², 단순한 면적이 아니다

건축가로서 제가 주목한 것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84제곱미터(84m²)’라는 면적입니다.

이 숫자는 한국 아파트 시장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주택법 제2조 제3의 3에 따르면, ‘민간건설 중형 국민주택’은 주거 전용면적이 60㎡ 초과 85㎡ 이하인 주택을 말합니다. 이 범위가 이른바 ‘국민평형’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84m²가 국민평형의 대명사가 되었을까요?

1973년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주택공급 계획을 세울 때, 1인당 적정 주거면적을 5평으로 잡았습니다. 4인 가족 기준 약 25평(82.6㎡)이 적정 규모로 판단됐고, 이를 제곱미터로 환산하면서 85㎡ 이하가 국민주택의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25평형(현재의 84m²)이 오랫동안 한국 아파트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민평형의 변화, 84에서 59로


하지만 최근에는 국민평형이 84형에서 59형(전용면적 59㎡)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원문:기사링크참조)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2인 가구 증가 – 인구 감소로 소형 주택 수요가 늘었습니다.

발코니 확장의 합법화(2006년) – 서비스 면적을 대폭 늘릴 수 있게 되면서, 59㎡ 아파트도 방 3개, 화장실 2개가 기본이 됐습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핵심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2006년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아파트 평면은 “어떻게 하면 발코니를 최대한 확장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진화했습니다.

주택의 표준을 제시하는 LH조차 현재는 59형 4 베이 평면을 표준으로 제시할 정도죠. 즉, 집의 20~30%를 발코니 확장으로 해결하는 구조가 보편화된 것입니다.


왜 유독 주택에서만 발코니 확장을 많이 할까요?

부동산 세금이 분양면적(전용면적) 기준으로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발코니는 서비스 면적, 즉 세금을 내지 않는 면적이기 때문에, 적은 공급면적으로 넓은 실사용면적을 확보하는 데 유리합니다. (어떤세제 혜택에 유리한지는 따로 링크로 적어둡니다.)



발코니 확장이 만든 아이러니

저 역시 이 원리를 활용해 적정건축ofaa의 ‘운중동 국민주택 시리즈’를 설계했습니다.

예를 들어 ‘집속의 집’ 은 전용면적 84m²지만, 지하차고·창고·다락·발코니 확장 등을 통해 실사용면적은 150m²에 가까워집니다. 단독주택은 입체적 공간 구성이 가능하기에 아파트보다 더 많은 볼륨을 확보할 수 있죠.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의 아파트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발코니 면적을 얼마나 더 찾아낼 수 있을까.”


영화85제곱미터리뷰6.jpg 발코니확장을 제대로 뽑아먹는 방법


이 질문이 설계의 중요한 화두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 를 보고 난 다음 날, 우연히 접한 압구정 3 구역 재건축 평면도는 적잖이 놀라웠습니다.

분양면적 37평형(약 122m²)인데, 실사용면적이 56평형(약 185m²)이라니요.

공동주택은 엘리베이터나 복도 같은 공용공간이 많아 실사용면적이 분양면적보다 작아지는 게 당연한데, 이 경우는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마치 램프의 지니가 소원을 들어준 듯, 숫자가 한껏 부풀려진 느낌이랄까요.

물론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서 이런 평면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영화85제곱미터리뷰1.jpg 압구정3구역 홍보평면도

하지만 이 장면이 보여주는 건축의 풍경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분양면적과 실사용면적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발코니 확장이라는 제도가 유독 주거용 건축물에서만 이런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발코니 확장에는 분명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 평면이 과연 모든 규정을 충실히 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 조금 더 너그러운 해석을 한 덕분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영화 속 84m²는 진짜일까?

건축가인 제 눈에는 , 영화 속 우성(강하늘)의 아파트는 49 타입이나 59 타입으로 보입니다.

주방과 거실의 폭, 구조를 보면 거의 확실하죠. 영화의 전개를 보면 다른 층 집에서 확인한 집의 구조상 방 3개의 크기나 구조도 딱 49나 59 타입형이에요. 아래 평면도에서 침실 3과 침실 2가 바뀐 정도의 느낌이죠.

(건축가는 전공을 이런데 낭비 응용 한다)


영화85제곱미터리뷰5.jpg 실제 영화 집 구조와 크기가 유사
영화85제곱미터리뷰4.jpg 주방과 연결된 거실 ( 폭이 4m가 넘어 보이지가 않음)
영화85제곱미터리뷰3.jpg 빈거실 (강하늘 181cm, 스케일을 생각해 보자)


그러니 영화 제목의 ‘84m²’는 현실적인 면적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이상향”을 상징하는 숫자
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윤소장 생각




물론 그 안에는 부동산 세금을 깎아주는 '국민주택'이라는 법과 제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돈 아껴주는 건축가

제가 요즘 쓰고 있는 책 '우주의 집을 짓다(가제)' 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건축가가 건축주의 돈을 아껴주는 방법에 대한 글인데요, 오늘 이야기와도 연결점이 있습니다. 넓은 집을 만드는 데 무턱대고 면적만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주어진 규정 안에서 어떻게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을지, 건축가는 그런 해답을 찾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적정건축에서 제가 시도했던 여러 실험들 역시, 결국은 ‘같은 공간,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끌어내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 〈84제곱미터〉를 보며, 다시 한번 그 질문을 곱씹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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