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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까워!

아깝지 않은 집. 아깝다는 말

by 윤소장

“아깝다” – 흑백의 요리사 이균(에드워드 리)의 한 마디.

그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소개한 한국어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아깝다”였다. 의외의 웃음을 주는 동시에 생각을 멈추게 하는 말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네 권의 책을 낸 뉴욕대 출신 작가인 그가 골랐다는 점에서, 이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깝다”는 한국어 특유의 감정이 농축된 표현이다. 어떤 가능성이나 기회가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을 때, 더 잘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아쉬워하며 건네는 한마디. 단순한 후회 이상의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음식으로 치면 삼겹살을 다 먹고도 밥을 볶지 못했을 때, 닭 한 마리를 푹 고아놓고도 육수를 버려버린 느낌이랄까. 삼계탕을 끓이며 배 속에 찹쌀을 넣지 못했을 때의 허탈함. “아이고, 이렇게 아까울 수가…” – 생각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건축가로서의 ‘아까운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완공까지 해놓고도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을 때. 찍어놓은 사진이 있었지만 끝내 퍼블리시하지 못했을 때. 방송 섭외까지 들어왔는데 결국 촬영이 성사되지 못했을 때. 잘 지은 집이었지만 상 하나 받지 못했을 때. 건축의 매력을 충분히 이미지로 설명하지 못해 본래의 이야기가 전달되지 못했을 때.

물론 그 이전 단계에도 아쉬움은 있다. 눈에 밟히는 아주 좋은 땅, 욕심 나는 프로젝트였지만 수임하지 못했던 경우들. 꽤 괜찮은 계획안이었지만 예산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던 경우도 많다.

이런 순간들이 왜 아까운가 하면, ‘더 이상 함께 성장할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프로젝트와 나 사이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싶은, 마치 ‘아까운 청춘’이라는 표현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감정이다.


반대로, ‘아깝지 않은 프로젝트’란 어떤 것일까. 즉,아깝다는 아쉬움 없이 잘 마무리된 프로젝트

입주 전후의 삶을 직접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특히 사계절의 풍경까지 담아낸 집. 직접 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공간이 품은 삶의 기운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들. 집도 사람이나 나무처럼 생명력을 가지기에, 그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건축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게다가 상까지 받고, 대중이 알아봐 주고 좋아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그건 ‘아까움’을 넘은 ‘욕심’의 영역이다. 요리사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먹어주고, 우연히 그 손님이 미쉐린 평가자여서 대박이 나는 정도의 바람일 뿐이다. 사실 의도를 잘 알아주고, 맛있게 즐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된다.


이렇게 ‘아깝지 않은 프로젝트’들은 건축가에게 대표작으로 남나보다. 나에게는 <EBS 건축탐구>에 소개된 평담재, 경기도 건축상을 수상한 운중동 국민주택 집속의 집, 그리고 그 시작점에 있었던 판교 온당청양 농가주택이 그러했다.

다행이도 '집宇집宙'(아하 '우주') 또한 아깝지 않은 프로젝트다. 이미 충분히 잘 자랐고,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내가 직접 하룻밤을 보내며 그 공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기도 했다.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집에서 자는 일도 쉽지 않은데,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 깊다.


이제는 ‘아까운 상태’를 넘어서, 그 이상의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우주'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집의 매력은 A4 한 장 분량의 설계 설명서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었기에 블로그에 한 꼭지씩 풀어내기 시작한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인터넷 신문에 연재를 하게 되었고, 생애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으며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풍부해진 이야기들을 또다시 ‘이대로 묵혀두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한 권의 책으로 엮기 시작했다.


마치 씨간장을 푹 떠서 만든 비법 요리처럼. 건축을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나만의 레시피가 자연스레 농축되어 씨간장이 되어 있었다. 건축가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핵심 스토리를 요리조리 구상해보니 ‘잘 엮으면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목차를 짜고 글을 써보았다.


지금은 원고를 투고하고 출판사와 계약을 마친 상태. 퇴고를 거쳐 현재 편집 중이다. 건축으로 치면 한창 마무리 공사 중. 아직 비계(아시바)를 걷지 않은 상태다. 창작자로서 완성된 모습이 가장 기대되면서도 희망을 품고 온갖 걱정도 되는 시기다.


부디, 우주의 매력을 제대로 전할 수 있기를. 하나도 아깝지 않게 세상에 나와서 너의 가능성을 활짝 펼쳐줘!



Q: 당신이 생각하는 ‘아까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글을 그냥 지나치기엔, 그 자체로 좀 아깝지 않나요?



에드워드 리 명언2.jpg

'에드워드 리'의 또다른 명언.

우주가 아깝지 않은 또다른 이유는 우주도 내게는 새로운 시도였고, 성장과 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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