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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17 기본단위 , 이게 술이 몇병인데

윤금주씨의 금주일기

by 윤소장

오늘의 술 :La Chouffe 맥주

벨기에 스타일의 스트롱 에일로, 알코올 도수 8.0%이며 금빛의 탁한 색감과 풍성한 거품이 특징. 감귤류의 상큼한 맛과 오렌지 껍질, 고수에서 오는 향긋함이 조화를 이루며, 꿀 같은 단맛과 홉의 쌉쌀한 맛이 혀에 퍼지는 것이 매력적. 일명 스머프 맥주




사람은 자주 쓰는 물건이나 지출 단위가 곧 생활의 기본 단위가 된다. 옛날 어른들은 물건 값을 두고 “이거면 쌀이 서 말이여”, “이게 고기가 몇 근이여” 하며 피부로 와닿는 단위로 다시 환산했다. 운전자는 기름값 몇십 원 차이에 민감하고, 흡연자는 면세 담배 한 보루를 놓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윤금주 씨의 생활로 빗대자면, 어느 날 길에서 5천 원을 주운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야, 이거면 맥주 페트 한 병 사겠다”였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배꼽 잡고 웃었다. 그냥 5천 원의 ‘꽁돈’이 아니라, 오늘 마실 맥주 1.6리터의 값으로 환산되니 훨씬 실감이 난 것이다.


그래서 금주를 계획할 때,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아낀 술값 기록하기’를 정했다. 하루 맥주 한두 캔만 줄여도 5천 원, 외부 모임까지 더하면 백일 동안 백만 원은 거뜬히 아낄 것 같았다. 실제로 모임 자리에서는 밥값보다 술값이 두세 배 더 나가니, 인심을 쓰려면 차라리 1차 밥값을 내는 게 낫다. 술값뿐 아니라 음주로 날려버린 시간까지 돈으로 환산하면 금주의 의미는 더 커진다.


물가를 비교하는 지표에도 이런 생활 단위가 쓰인다. ‘빅맥지수’나 ‘짜장면지수’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비재를 기준으로 물가를 환산한다. 금주일기에선 맥주가 그 단위가 된 셈이다.




생각해보면 전문 분야마다 저마다의 기본 단위가 있다. 건축의 세계에서 기본 단위가 밀리미터(mm)인 것도 같은 이유다. 재료의 두께가 곧 강도와 작업성, 그리고 비용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0.02mm 비닐의 얇음부터 수백 km 도시의 광대함까지 아우른다. 그래서 숫자 단위뿐 아니라 상대적 크기를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는 무형의 스케일 도구, 그것이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다.-'우주를 짓다' (윤주연 저) 건축가는 왜 mm를 쓸까 중에서


술 한 병 값에서 시작된 단위의 이야기는, 결국 건축가의 눈금에도 닿는다. 생활과 건축 모두, 기본 단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윤금주씨의 요즘 생활단위는 맥주값이 아닌 포카칩 한봉지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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