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광부(白首狂婦)다. 현재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는 백수광부로서의 삶이 제법 익숙하다. 시작이 언제부터였을까?
2년 전 이맘때만 해도 나는 아침에 눈뜨면 그곳에 들렀다. 틈만 나면 들렀다. 그곳은 유명한 인터넷 교육카페였다. 교육 외 잡담은 허락되지 않는 칼 같은 곳이었다. 등업은 어렵지만 강등은 너무나 쉬운 곳이었다.
나는 7년을 그곳에 머물렀다. 얼핏 보기에는 삐뚤어진 교육열을 가진 요란한 부모집단 같아 보이지만 아니다. 그곳 멤버 대부분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교육에 진심인 분들이었다.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알게 된 교육정보를 숨기지 않고 마구 퍼주었다. 한 줄 질문에도 스무 줄 댓글을 달아주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좋은 책과 교육정보, 노하우 등을 공유하며 열심히 활동하는 멤버였다.
긍정의 닉네임을 달고 열심히 활동하던 나도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헛헛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거기 글들도 무한반복되는 느낌에 지치기 시작했다.
'국어 성적 올리는 건 집을 팔아도 힘듭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고등 국어성적 올리는 건 정말 힘들다며 국어공부가 이슈가 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재미 삼아 시 한 편 지어보았다. 풍자시였다.
제목은 '한숨가'.
자식교육으로 고단한 본인의 삶을 한탄하고 따라주지 않는 자식에 대한 원망을 자조적으로 쓴 시였다. 반응이 괜찮았다. 이후 아이 공부에 손을 떼게 하는 '단념가'도 큰 호응을 얻었다. 댓글 보는 재미가 삶의 낙이 되었다. 아이들 성적상승보다 내 구독자 상승에 관심이 가던 시기였다.
"아 진짜 너무 웃겨요^^ 아들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고 묻네요. ㅋㅋㅋㅋㅋ"
"커피 내리는 중에 알람이 떴어요. 일단 하트 누르고 정주행 고고^^"
"나 미쳐! 이 아줌마 도대체 뭐야? 당신 정체가 뭐예요? 작가 맞죠?"
"작가가 아니라고요? 책 내세요. 저 아는 출판사 편집장님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누군가 무심결에 해준 '작가 아니세요?'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물론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기엔 민망한 포지션이지만 그래도 '작가'라는 말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래서 시를 계속 썼다.
기말고사 시즌에 맞춰 지은 3탄 ‘공부도해가’가 또 조회수를 경신했다. 고전시가 ‘공무도하가’를 보는 순간 시상이 떠올라 지은 시였다. 거기 나오는 ‘백수광부(白首狂夫)’가 당시에 내 모습 같았다.
피곤에 절어 맥주 한 캔 없이는 하루의 마무리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애들 공부는 봐줘야겠다는 집념의 광부, 내가 바로 만화 속 '백수광부' 같았다. 마침 새치도 하나둘 나기 시작했을 때라 뭔가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 닉네임을 바꿨다. '부'의 한자만 살짝 바꾸어 '백수광부(白首狂婦 : 흰머리 미친 여자)’가 되었다.
p.s)그때 지은 시들은 내 브런치북에 고이 들어있다.
칭찬은 고래도 웃게 하고 댓글은 밤잠도 설치게 했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뭔가 떠오르면 베개 옆에 있는 수첩이나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1분 안에 휘발될 글감을 여기저기 남기기 바빴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무언가가 떠올랐다. 심지어 아이 수영장 캐비닛 종이 번호표에도 시를 적었다.
"이 글을 보면 엄마들이 엄청 웃겠지?"
동년배 엄마들끼리만 통하는 감정선, 해석가능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독자들과 소통은 아주 원활했다.
그날도 눈을 비벼가며 글을 쓰려고 카페앱을 열었다. 나름 철저하게 임시저장까지 하며 글 등록에 성공했다. 잠시 다른 일을 하다 댓글을 보려고 다시 카페에 들어갔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활동이 7일간 정지되었습니다.
몇 시간을 고생해서 올린 글이 삭제되었고 손발이 묶였다. 허무했다. 몇 개 달렸을 댓글을 못 본 것이 제일 억울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사유를 물었다가는 쫓겨나는 곳임을 잘 알고 있었다. 참고 유튜브 영상이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마구 샘솟던 나의 도파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공허함만 찾아왔다. 카페에 들어갈 수 없음에서 오는 허한 느낌도 컸지만, 고생해서 쓴 내 글과 댓글이 사라짐에서 오는 허함이 더 컸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일기장처럼 비공개로 글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기나긴 7일이 지나고 글쓰기 자격이 주어진 날, 지난 글은 내가 자체 삭제한 글이 아니고 삭제된 글임을 독자에게 알리고 싶었다. 나름 어필하고 싶었다. 최대한 은유법을 써서 시로 표현했다. 딱히 교육과 거리가 멀지 않도록 교육정보도 곁들였다.
샤워를 한 후 다시 댓글을 보려고 내 글을 클릭하는 순간 비수가 날아들었다.
카페에서 강제 탈퇴되었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불법 광고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다른 회원들과 싸운 것도 아닌데···. 무슨 위배활동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강퇴에 재가입 불가처리까지 된 것인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접근 자체가 안되니 알 길이 없었다. 한참 후 카페 공지글에 뜬 일부 단어를 보고 추측할 수 있었다. '인기몰이, 감정몰이 금지'라고 적혀있었다. 카페 운영진이 경계할 만큼 나름 내가 인기가 있었나 보다. 쩝.
관계는 와장창 끝이 났다. 쌍방의 소통은 제삼자에 의해 절단되었다. 카페 회원들과의 위로, 조언, 덕담, 추억이 다 날아갔다. 7년 동안 아이의 성장에 맞춰 고민한 내 흔적, 엄마들과 공감하며 웃고 울었던 댓글들이 공중분해되었다. 산산이 조각났다. 이 사건은 제법 큰 충격이었다. 며칠간 우울했고 멍했다. 내 몸 깊숙한 곳이 도려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곳에 정을 너무 줬던 모양이다.
블로그에 간간히 글을 쓰며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이내 글쓰기에 회의감이 들었다. 독자가 없다는 것은 외로웠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공감해 주는 독자'가 없다는 것이 외로웠다. 그래서였을까? 소규모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찾아가게 되었다. 서로의 글에 반응해 주는 독자가 생겼다. 작가이자 독자들이었다. 나의 글쓰기는 다시 생기를 찾아갔다. 글모임에서 정보를 알게 되어 결국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한쪽이 닫히면 다른 쪽이 열린다. 내 인생이 꼭 그렇게 흘러온 것 같다. 카페로 들어가는 문은 닫혔지만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은 활짝 열렸다. 만약 내가 그곳에서 강퇴당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곳 죽순이로 살았을 것이다. 유명한 문제집 이름, 단계별 로드맵을 줄줄 꿰며 말이다.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아마 둘째 입시가 끝난 이후에나 시작했을 것이다. 아니 시작되었을 것이다.
글을 쓰며 아이들에게 쏟던 내 에너지의 방향을 나로 돌렸다. 그랬더니 아이들과 관계가 더 좋아졌다. 무심코 익숙해진 것들과의 결별은 나를 소중한 것으로 회귀하게 했다.
중학생 딸이 개인정보동의서를 내밀었다. 내 사인을 요구했다. 서류를 보고 빵 터지고야 말았다.
학생과의 관계 칸에 ‘매우 좋음’이라 적혀있다. 원래 ‘모(母)’ 써야 하는 자리인데 말이다.
그냥 ‘좋음’도 아니고 ‘매우 좋음’이라고 하니 뿌듯하다.
'글쎄, 이런 사람도 있다니까요.'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른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