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에는 이재무 시인의 ‘나는 여름이 좋다.’에서 발췌한 문구가 걸렸다. 글판을 보고 있으니 차르르 흔들리는 미루나무 아래에 누워 눈 감고 여름 바람맛을 좀 느꼈으면 싶다.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 그 여름.
나도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공모전에 응모했다. 기존 작품에서 명문장을 찾아도 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나는 창작해서 제출했다. 그 편이 더 쉽다 생각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상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광화문 한복판에 내가 창작한 문구가 걸렸으면 싶었다. 당시 머릿속에 휙 하고 지나가는 문장 3개를 적어서 제출했다. 결과는 셋 다 탈락이었다.
'아, 뭐야?'
공모전에 떨어지면 하는 반응이다. 1초 컷 셀프 위로다.
'휴지통'으로 들어간 아까운 문장을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해야겠다.
당신의 여름은 언제였나요?
뜨겁게 보내셨나요?
청춘의 여름,
그 뜨겁던 젊은 날의 추억으로 힘든 시기도 잘 버텨오셨나요? 버티고 계신가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뜨겁던 시절은 20대가 아닐까?
20대는 말이지.
20대는 그렇다.
40대가 되면 옛 친구가 그리워진다. 정신없이 살아오던 삶에 잠시잠깐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뭔가 헛헛함이 몰려올 시기. 지난 세월 돌아보면 그래도 내가 가장 생기 있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타임머신 타고 '그때'로 가다 보면 '그 시절 나와 그때를 공유했던 그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 씨엔블루 -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그날의 우리들일까
잠이 오지 않는 밤
그 시간 속 그대로의
그 자리에 새겨진 우리 추억만
It’s stuck in my head
가사 진짜 최고다.
그대든
그때든
그날의 우리들이든
다 그립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서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
나의 20대는 어땠을까?
20대 초반 대학 친구들 중 한두 명을 제하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락하지 못했다. 010으로 휴대폰 번호가 통일된 이후에도 연락을 했었기에 전화번호 바뀐 애들은 없었지만 선뜻 연락하기 쉽지 않았다. 카톡까지 열려있는데 왜 그 쉬운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을까?
바빴나?
자신 없었나?
어느 날, J로부터 단톡방 초대 링크가 날아왔다. 오랜만에 그녀 이름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링크를 타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10명 내외의 남녀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이름만 봐도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동아리 동기방이 개설된 것이다. J가 말했다.
“살아들 있는 거야?”
다행히 다들 건강하게 살아있었다. J는 뒤이어 이 말을 덧붙였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울컥했다. 친구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먹고 사느라 다들 얼마나 힘을 썼을까? 20대 철없던 천진난만했던 우리가 제법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다. 전우애가 느껴졌다. 서로 간의 소식을 전하면서 훈훈하게 대화는 이어졌다.
친구 중에 직업군인이 있다. 계급이 중령이라 했다. 친구가 입을 열었다.
“자식들 군대 가면 연락해. 그래도 내가 군에 있을 때...”
아들이 있는 내가 되물었다.
“크크크. 연락하면? 뭐 해줄 수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더 큰 무언가를 기대한 나는 그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
“장난해?”
라고 웃어넘겼지만, 곱씹어보니 아주 든든하고 고마운 말이었다.
머릿속에 상황극을 꾸며보았다.
"박 소위, 자네 부대에 이 이병이라고 새로 들어왔지?"
"예, 그렇습니다."
"특별히 신경 좀 써 주게. 건빵도 몇 개 더 챙겨주고."
"예, 알겠습니다."
"이 이병 모친이 내 친구야. 무서운 애야.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충성!"
아하하하. 왜 이렇게 웃기지?
이런 인맥주의는 사라져야 하나?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만들어지고 옛 추억에 대한 얘기들이 오갈 때쯤 내 머릿속에 뭔가 번쩍하고 지나갔다. 급하게 아이방으로 달려가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렸다. 매트리스 아래 고이 모셔둔 그것을 끄집어내었다.
20년 된 것 같은 350페이지 소설책 두께의 외장하드.
접촉 불량으로 열리지 않아 버리려다가 '혹시 몰라'서 보관하고 있던 나의 보물창고.
외장하드 전원을 켜고 노트북에 케이블을 연결하며 기도했다.
깊은 잠을 깨워 그런지 버버벅 거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깨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
“드르륵, 드르륵.”
노트북 창에 외장하드 아이콘이 떴다.
“휴~ 고마워. 잠시만 버텨.”
외장하드에서 나는 소중한 옛 추억을 발견하고 혼자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혼자보기 아까웠다. 친구들에게 사전 공지했다.
“나 사진 올린다. 반대하는 사람 있으면 말해.”
어떤 사진일지 짐작하지 못한 친구들은 차마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나는 장난기 발동한 악동처럼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다. 사진을 카톡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100여 장이 넘어가는 사진에 친구들은 괴성을 질렀다.
“야, 이거 뭐야?"
"그만 올려!"
"왜 이래?"
“직장인 회식 같은 이 분위기는 뭐야?"
"내 얼굴 왜 저러냐?"
그러는 와중에도
“와 진짜 풋풋했다. ”
"정말 젊었다."
"사진 보니 다 기억난다."
내가 보낸 사진들은 여름 MT 가서 피구하는 사진, 점프하는 사진, MT때 여장한 남자들 사진, 술 먹고 뻗어 자는 사진, 폼 잡고 찍은 단체 사진 등 다양했다. 멈추지 않는 나의 테러 앞에 친구의 절규가 이어지고 나서야 나는 겨우 진정했다.
“외장하드 더 뒤지다가 뒤질 수도 있어. 크크크.”
결국 나의 자폭사진을 뿌리고 나서야 아이들도 함께 웃어넘겼다. 결국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났고 너무 좋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온 그들이 고마웠다.
청춘의 여름이 생각나는 사람들!
망설이지 말고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세요.
그들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요.
외장하드 속에서 내가 꿈을 향해 노력하던 그 시절 흔적을 발견했다.
구본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이 책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엽기토끼 인형.
롯데월드.
깔끔한 파일 정리.
&
뚱뚱이 모니터, 디지털카메라, 폴더폰
엽기토끼 마시마로
다소 산만한 책상
달력은 두 개, 기록한 쪼가리는 여기저기
뜨아!
재미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뭔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