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내 좌우명은 ‘욕먹지 말자.’였다. 부모님은 욕을 하지 않으셨기에 집에서 욕먹을(들을) 일은 없었다. 학교나 사회생활도 무난하여 딱히 욕먹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욕과 친하지 않았고 욕설을 하는 이가 있으면 자리를 피했다.
작은 회사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경리 과장만이 상주해 있던 곳이었다.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 대부분은 ‘돈 언제 주냐?’였다. 당시 그 회사는 밀린 건보료와 국세체납건으로 현금 회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하청업체, 인부들, 함바집, 관리실 등에서 돈을 달라며 줄기차게 전화가 왔다. 그들의 합법적인 독촉이 이어지면 경리 과장은 사장과 통화하여 금액을 정한 후, 찔끔찔끔 나눠주곤 했다. 사실 알바를 쓸 정도의 재정상태가 아니었기에 나를 왜 채용했나 싶을 정도였다.
돈을 제때 못 받은 사람의 답답함은 때론 욕이 되어 수화기 너머로 튀어나왔다. 그걸 유연하게 받아치는 경리 과장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경리 과장은 아담한 사이즈의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아줌마였다.
“오늘 6시까지 입금할게요. 뚝.”
채권자들을 달래 놓고 나면 사무실 전화가 잠시 울리지 않았다. 그 무렵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선생님. 네.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는 듯했다.
그녀는 나의 뒤통수가 보이는 내 뒤편에 앉아있었기에 나는 눈이 아닌 귀로만 모든 상황을 추측해야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통수에서 욕이 들려 깜짝 놀랐다. 선생님 전화는 학원에 오지 않은 아들을 찾는 전화였고 집에서 게임 중이던 그녀의 중학생 아들은 욕폭탄을 맞았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욕의 향연 속에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성급히 엉덩이를 떼기는 힘들었다. 숨만 죽이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고 그녀는 조용해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도망가려 했다.
‘뭐? 쌍놈? 진짜 너무하네.'
자고로 우리 집은 양반 집안이었다고 들었기에 일단 상놈은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기에 더욱 화가 났다. 내가 그녀의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내 알바직을 걸고 뒤를 돌아봤다.
"저기, 아무리 화가..."
그녀의 시선은 휴대폰을 향해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수화기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종종 위치추적장치를 통해 아이들의 위치를 확인하곤 했는데 둘째 아들의 위치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첫째 아들한테 열받은 상태에서 불똥이 둘째한테까지 튄 것이었다. 한참 욕을 퍼붓더니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곤 탕비실로 개선장군처럼 걸어갔다. 아이스를 넣어 믹스커피를 한잔 말아 드시더니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두려웠다. 나는 열심히 엑셀에 코를 박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들 키우죠?”
“네. 남매요.”
하나지만 나도 아들을 키우니까 아들맘이라며 욕의 세계로 인도하려 했지만 내 아들이 '이 새끼, 저 새끼'까지 들을 행동을 당시에는 하지 않아 그 세계로 빠져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덧 자주 듣다 보니 내 안에 그것들이 스며들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작년 여름휴가철 친정집을 가면서 생긴 일이다. 여행 중이던 어머니 대신 친정아버지가 드실 밑반찬을 준비하는 일을 내가 맡았다. 그런 중차대한 일은 내겐 처음있는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와 인연이 없는 나는 메추리알 100알의 껍질을 까는 데 1시간 반이 걸렸다. 어찌나 들러붙는지 원... 각종 집안일과 밑반찬 등을 준비하다 보니 어깨가 빠질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장거리 밤운전이 걱정이었다.
우리 집에서 친정까지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 막히면 4시간 정도다. 다행히 중간에 시댁이 있고 남편이 마침 시댁 쪽으로 출장을 가 있어서 내가 시댁까지 간 다음 남편을 태워 친정으로 갈 계획이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일 언제 끝났어?”
“1시쯤.”
“좀 쉬었겠네. 밤에는 당신이 운전해.”
“알았어.”
모든 준비를 완벽히 마치고 저녁 7시에 아들을 태우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컨디션이 아주 별로였다. 그래도 2시간만 버티면 운전대를 넘길 수 있다는 그 목표 하나만 생각하고 볼륨을 높였다. DJ DOC가 내 마음을 대변했다.
내가 원한다는 걸 넌 알고 있잖아.
I need you.
I want you.
I'll run to you.
Yeah Baby. Yeah Baby.
시댁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 신호대기 중에 신랑에게 톡을 보냈다. 일정에 없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인데 곧 시댁에 도착한다고 했다. 시댁 앞에 차를 대고 내렸더니 남편이 서있었다.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당신 혹시 술 마셨어?”
“어.”
기가 막혔다. 허무 그 자체였다.
“와! 진짜 양심 없다! 당신이 운전한다고 해놓고, 술을 마셔버려?”
평소 같으면 웃고 말 일이었지만 당시 나는 아주 피로한 상태로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가시질 않았다.
“아니, 왜 마신 거야? 어이없다.”
“친구들이 권하는데 어찌 안 마셔?”
“매번 말하잖아. 와이프가 운전면허 없다고 생각하라고.”
어차피 잔소리가 숙취해소제가 될 수 없음을 아니까 나는 꾸역꾸역 운전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뻐근한 어깨를 한번 돌리고는 또 밤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술을 마신 남편님께서는 옆에서 몰래몰래 자는 눈치고 차만 타면 자는 아들은 그날따라 안 졸린다며 말똥말똥 두 눈 뜨고 깨어있었다.
캄캄한 밤 12시가 다 되어갈 때쯤 휴게소 주유소에 들러야 했다.
“이번 휴게소에서 기름 넣을 거야.”
혼잣말을 했다. 휴게소 입구에 들어서자 주차장이 제법 한산했다. 굳이 휴게소 쪽으로 진입할 필요 없이 주차장을 통과해서 주유소 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너른 주차장을 빨리 통과하고 싶었는데 대형 트럭이 내 앞에서 느린 속도로 주행하고 있었다. 앞질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트럭 우측으로 붙어 앞지르기를 하려고 속도를 높이는데 트럭은 오히려 속도를 줄이고 우측으로 핸들을 천천히 꺾고 있었다. 우측 주차 공간에 차를 대려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직진을 했다가는 트럭과 충돌할 위기였다.
트럭이 차체가 높아 옆에 있는 우리 차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순간 나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급하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비어있는 우측 주차 공간을 잽싸게 통과하고 다시 좌측으로 유연한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찌이익~ 끼이익~”
정말 1~2초 안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온 나는 내 영혼사전에도 없던 말을 내뱉었다.
강한 발음 때문인지, 미친 S코스 묘기 때문인지 숙면하던 남편도 움찔했다. 남편은 상관없었지만 아들에게는 민망했다. 평소 지켜온 어미의 모습과는 다른 언행을 수습해야만 했다.
“너무 놀라니 된소리가 다 나오네. 하~ 죽을 뻔했다. ”
혼잣말 연기를 했다.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와, 이 순발력 봐라.”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고자, 한 스푼 내 자랑을 얹었다. 자다 깬 남편은 숨죽여 한숨을 쉬었다.
쌍시옷 발음을 시원하게 뱉고 나니 쌓인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했다. 장시간 운전으로 뭉친 어깨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히죽거리며 운전을 하는데 대학시절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인 ‘국어의 이해’를 들을 때 얘기다. 교수님께서 경상도 사람들은 쌍시옷 발음이 되지 않아서 ‘쌀’을 ‘살’이라고 발음한다고 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쌀’을 ‘살’과 ‘쌀’의 중간 정도로 발음하시긴 하셨다. 하지만 나는 경상도 젊은 피로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세대가 바뀌어 경상도인들도 쌍시옷 발음이 된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순간 뿌듯함과 짜릿함을 느꼈다.
아, 지나고 생각해 보니 왜 그랬을까 싶다. 살짝 민망함이 몰려온다. 아마 교수님은 그 이후로는 그런 말씀은 더 이상 하지 않으셨겠지?
아래 사진을 보시면, '살'과 '쌀'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경상도 분들 발음에 주의해 주세요. 그렇지만 '살'과 '쌀'은 아주 연관성이 높은 단어임은 확실합니다.
p.s > 신성한 브런치에 욕을 출몰시킨 점 사죄드립니다. 상쾌한 새벽부터 불쾌하셨다면 죄송하고 유쾌하셨다면 성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