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가해자에게 쓰는 편지

제주에서 벼락 맞다.

by 백수광부

작년 7월 장마철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된 이후 처음 가지게 된 나만의 2박 3일이었다.

떠나기 전날 가족들의 2박 3일을 미리 챙겨놓느라, 새벽에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긴장에, 드디어 탈출이라는 설렘에 잠을 1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자유, 그것은 피로회복제였다.



같은 나라지만 공기부터 다른 제주 아일랜드!


언어가 같다는 이유로 무계획으로 제주에 도착했다. 숙소도, 렌터카도, 맛집 리스트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P형 인간이 아닌데 말이다. 무계획이었지만 아주 편안했다. 나에겐 만능 치트키가 있었다.


공항에 내려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했다.


“김 기사, 어디로 가면 돼?”


나는 캐리어 하나 가뿐히 버스에 싣고 서귀포 감귤 농장 근처에 하차했다. 그곳에는 연식이 좀 된 기사의 검은색 싼타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지금은 제주 현지인이 된 나의 유년기 친구, 김현진(가명) 나를 반겼다. 내가 제주 미니밤호박이 굴러 다니는 조수석에 올라타자 현진이는 차시동을 걸었고 그렇게 제주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어디 가보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생각을 못 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래도 인스타 명소 같은데 보고 왔을 거잖아.”

아니야. 아니야. 그것조차 번거롭다. 그냥 네가 나 끌고 다녀줘.”


천지연 폭포도 돌하르방도 안 보고 싶고 그저 자유가 그리웠다고 말했다.


“너 무슨 일 있언?”

“아니, 왜?”


혼자 훌쩍 온 것도 그렇고 뭔가 억눌린 사람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도 그렇고 조금 위험해 보였었던 모양이다.

혼자 배낭 하나 메고 극기 훈련하듯 제주 올레길을 걷는 여인들이 보일 때마다 내게 자꾸 물었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건?”

“없다고요.”


현진이는 조금 안심을 한 듯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고 그곳은 쌍 따봉이 절로 나는 제주의 숨은 명소이자 고품격 맛집들이었다.


쇼핑을 권하긴커녕 말리는 현지인 가이드를 대동한 1인 고객 맞춤형 패키지여행 그 자체였다.




현진이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고 중학교 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옆집에 살던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부터 오갔다.


“민철 오빠(가명), 현정 언니(가명) 다 잘 지내지? 엄마도 잘 계시고?”

“어. 얼마 전에 육지 가서 보고완.”


현진이는 이른 나이에 제주도 남자와 결혼해 제주에 정착해서인지 육지 사투리보다 제주 사투리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현진이가 제주 사투리를 쓸 때마다 머릿속에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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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투리 너무 재밌어. 무사 야이를 욕 햄시니, 너가!!!"


나는 현진이 앞에서 김혜자 배우처럼 '무사'를 10번이나 연기했다. 친구는 나의 연기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전혀 같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멋쩍게 내가 물었다.


"근데 ‘무사’는 정확히 무슨 뜻이야?”

“‘왜’라는 의미지.”

"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현진이는 친오빠의 근황을 얘기해 주었다.


“민철 오빠는 완전 애처가.”


민철 오빠는 우리보다 5살 정도 많았는데 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던 오빠였다.


"예전에 엄청 무서웠는데, 애처가 됐어?"

“응, 나랑 현정 언니는 민철 오빠의 샌드백이자 인간 리모콘이어신디.”


“무사? ㅋㅋㅋ”


내가 현진의 말에 제주말로 받아쳤다.


“사춘기 화를 우리에게 풀언. 화나면 때리고, 누워서 TV 채널 돌리라고 시키고 했언. 지금은 애들이랑 부인한테 엄청 잘핸.”


그 이글거리는 민철 오빠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니라니 웃음이 났다. 피해자 현진의 민철 오빠에 대한 증언이 더 이어졌다.


“민철 오빠 지금은 OO경찰서 경감. 옛날에 언니랑 나 때린 거 얘기하면 전혀 기억 못 핸.”

“하하하. 원래 가해자는 기억 안 하려는 습성이 있지.”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인양 친구의 과거 가정폭력사건 얘기를 듣고 있다가 불현듯!


내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제주에서 벼락을 맞다니!


벼락에 이어 '우르르 쾅쾅' 천둥도 쳤다!


내 귓가에 민철 오빠가 나를 부르던 호칭이 아주 크게 들렸다.



어이, OO이



“야! 피해자 여기 한 명 추가다!”

“무사?”


다음에 민철 오빠 만나면 꼭 전해라.”

“왜?”



“너희 오빠가 나를, 글쎄 나를 ‘뚱식이’라고 불렀어.”



친구는 기억이 난 듯 배꼽을 잡고 깔깔거렸다.



“야, 내가 우리 삼촌한테 ‘뚱순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뚱식이’라는 말은 너희 오빠한테 처음 들었어. 너무 심하지 않냐?”


그랬다. 당시 난 통통한 체격이었다. 절대 뚱뚱하진 않았다. 또 엄마표 숏커트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민철 오빠는 나를 ‘뚱식이’라고 불렀다.

그것도 개구쟁이들이 놀리는 그런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아니라 깡패 두목이 졸개 부르듯 진지하게 '어이, 뚱식이'라고 불렀다.


무사!!!

나를 뚱식이라고!!!

무사!!!


마음을 가다듬고,

당시 무서워 한 마디도 못 했던 다섯 살 위였던 민철 오빠(가해자)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To. OO 경찰서, 김민철 경감님


안녕하세요. 저는 김 경감님의 여동생 김현진의 고향 친구 OOO입니다.

옆집에 살았으니 기억은 하시지요?

잘 지내신다는 말은 현진을 통해 들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3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증거도 딱히 없지만 말입니다.


어릴 적에 저에게 '뚱식이'라고 부른 것!

사과하십시오.

오빠의 그 말 한마디에 초등 내내 기죽어 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제가 그리 불릴 정도의 몸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아무리 제가 그러한 몸 상태였다고 해도

자라나는 새싹한테,

그것도 동생의 절친인 여자 동생한테

뚱식이가 뭡니까?


뚱순이도!

뚱이도 아니고

뚱식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심했습니다.

사춘기면 다 용서가 됩니까?

시대를 잘 타고나셨지요.

지금은 '뚱식이?' 학폭감입니다.


친동생들 때리고 동네 애들에게 공포감 조성하던 오빠가 개과천선하여 국민을 지키는 경찰이 되고 가정에 충실하시다니 참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신다면 어린 시절 잘못에 대해서 참회도 한 번 해주십사 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From. 34년 전 뚱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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