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지마 정신줄
주말부부로 살다가 둘째를 임신하고 배가 불러올 즈음, 휴직을 결정하고 시댁과 남편이 있는 쪽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떨어져 지내느라 신경을 못 쓴 사이 남편은 사기꾼 친구 꼬임에 넘어가 사이드 잡을 시작 했는데 그것이 삐거덕 거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파생되는 일들로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자꾸 싸우게 되었다.
곧 태어날 둘째도 있는데 감당하기 힘든 빚이 생긴 상황에서도 자존심만 세우고 혼자 처리하려고 했던 남편이 미웠다. 자신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면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는 이해해도 거짓은 참기 힘든 나에게 상황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남편은 당시 이해불가한 사람이었다.
둘째가 태어났고 아이 둘 육아에 빚걱정까지, 하루 버티기가 하루 일과가 돼버린 어느 날, 시아버지와 두터운 친분이 있던 지인이 나에게 제안했다. 그 지인은 남편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커온 과정을 잘 알고 계셨고 남편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분이셨다. 결혼 이후 나에게도 상당히 잘해주셨기에 지인 말씀을 늘 귀담아들었다.
“OO이(남편) 일이 자꾸 꼬이는 게 더는 안 되겠다. 어디 가서 한 번 물어보기나 하자.”
“어디 가서요?”
“용한 곳이 있다더라. 내가 주소 받아왔다.”
“점집이요?”
“나도 미신은 안 믿는데...”
“거기 쓸 돈 없어요.”
“2만 원이면 봐준다더라.”
2만 원도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인은 나에게 채비를 하라 하셨고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아기 띠로 채우고 따라나섰다. 택시를 타고 점집 앞에 내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림 속 동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콧방귀가 절로 났다.
'종교도, 남편도, 세상도 못 믿겠는데, 새파랗게 어린 쟤 말을 믿으라고?'
순간 자괴감도 밀려들었다.
‘아, 진짜 애 데리고 이런 곳에 왜 온 거야? 백수광부! 너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지만, 자괴감은 길지 않았고 호기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남편과 궁합은 맞는지, 내 팔자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애 둘을 키우며 밥은 먹고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누구에게라도 확답을 듣고 싶은 상태였다. 그 '누구에게'가 조금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고쳐먹고 동자신이 내려 보는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아기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워낙 목청이 크고 중간에 끊김 없이 한두 시간은 거뜬히 울어대는 아이라 아무리 해도 달래지지 않았다. 내가 아기로 인해 정신이 없으니 지인이 무당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당은 제법 캐주얼한 30대 초반 아줌마였다. 슬쩍슬쩍 마당으로 남편도 지나다니고 엄마도 지나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뭔가 미덥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서비스를 받으러 온 대상은 나였지만 엉덩이를 바닥에 대려고만 하면 아기가 울어 상담 자체가 불가했다. 내 사주와 가족관계 등을 겨우 말하고 남편의 사주를 말하려는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기에게 급하게 아기 과자를 입에 물리고 안이 궁금해서 다시 들어와 앉았다. 지인이 남편 사주를 알아내 말해줬는지 무당은 남편 점괘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슬슬 기어. 바닥에 엎어져 있네.”
“하이고. 보이나 보네. 지금 걔가 아주 힘들어요.”
지인은 그 한마디에 무당을 아주 신뢰하는 눈치였고 추가 질문을 했다.
“그럼 언제쯤 좀 좋아질까나? 애가 둘이나 있는데.”
“당분간은 계속 안 좋아. 60 정도 되면 좋아지네.”
당시 나와 남편은 30대 초중반이었는데 나이 60까지 슬슬 기라는 말인가?
남편의 사주팔자도, 무당의 궤변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인은 이 상황을 무척 안타까워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딱히 긍정적인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다 무당이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는 인복이 있네.”
“아 그래요?”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형제들도 잘 도와주고 사이도 괜찮아. 엄마가 잘해서 그래.”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더불어 엄마한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물운은 좀 어떤가요?”
“그냥저냥 먹고는 살아.”
“흠. 일은요?”
“계속 일을 하기는 해야 할 팔자야.”
“애들은요?”
2만 원에 점집 기둥뿌리까지 뽑아먹을 심산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가만히 둬도 잘 커. 편안히 잘 크겠어. 손재주도 좋고.”
“추천 직업은요?”
“의사를 해도 좋고.”
무당이 의대지상주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기분을 맞춰주려는 듯 보였다.
“둘째는요?”
무당은 동자신도 도망갈 정도로 울어댄 둘째 딸의 얼굴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키우기 쉽지 않겠어.”
“왜요?”
‘이렇게 시끄럽게 우는 데 키우고 쉽지 않지 그럼.’
“얘는 뭐 하면 좋아요?”
“관운이 있네. 공무원도 좋고.”
‘대통령을 시켜야 하나?’
2만 원에 부부 사주팔자에 자녀 둘 진로적성검사까지 마쳤지만, 아직 궁금한 게 남아있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무당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남편과는 어때요?”
당시 이혼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이 잘 맞는 지가 궁금했다.
“남편이 당신 다리를 붙잡고 안 놔주고 있어.”
옆에서 듣고 있던 지인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남편은 당신 놓치면 폐인 돼. 그래서 꽉 쥐고 있어.”
역시 그랬다. 이 남자가 나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다는 직감이 사주에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그럼 저는요? 남편 놓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주 좋지. 더 잘 돼!”
갑자기 어디 보험이라도 미리 들어져 있는 인생인양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좋아. 지금보다 더 잘 살지.”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뭔가 뒤가 든든한 느낌이었다.
이미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지인이 나의 옆얼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두고 가도 되고 데려가도 되고. 다 괜찮아.”
무당의 그 말 한마디에 이미 난 재혼가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내 남편보다 잘 생긴 한 남자와 그의 자녀, 지금의 나보다 화사해진 나와 나의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의 미래도 궁금해졌다.
“그럼 남편은 저랑 헤어지면 다른 여자 만나나요?”
“만나지. 근데 남편은 누굴 만나도 오래 못 가. 계속 헤어져. 그래서 남편은 당신 꽉 잡아야 해.”
나는 그를 버려야 잘 살고 그는 나를 잡아야 잘 산다니.
남편이 나랑 헤어지더라도 잘 산다고 해야 내가 홀가분하게 떠날 텐데.
내 새끼의 친부가 말년까지 이리저리 방황하며 사는 건 또 즐거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런 복잡 미묘한 상황전개에도 나는 얼굴에 미소를 감추기 힘들었다. 내 팔자는 나쁘지 않다는 것, 나를 붙잡고 안 놔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인은 표정이 점점 좋지 않았다. 지인은 결국 무당이 써준 부적을 하나 챙겨 밖으로 나갔고 나도 지인을 뒤따라 나섰다.
올 때보다 기분이 조금 좋아진 나는 경쾌함을 숨길 수 없었고, 지인은 제법 축 처졌고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온 거야?’
그제야 나는 잠시 망각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고, 그 진실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점집에 가서 힘들어하는 아들을 버리고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삶을 꿈꾸며 설레발치는 며느리를 본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다.
가끔 나는 이리 정신줄 놓고 산다.
어찌 되었든 나를 놓치면 아들이 평생 방황한다니 시어머님은 당시 이를 꽉 깨물고 나에게 잘해주신 것 같다.
To. 어머님
당시 철없던 며느리 때문에 속상하셨지요? 용서하세요. 그리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아들이 말년운은 좋답니다.
저도 버티고 있어요.
십 년 후에 부자 놀이 한번 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