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와? 글쎄. 어디 가? 몰라.
“엄마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밥 먹고 있어.”
“언제 와?”
“글쎄.”
“어디 가?”
“몰라.”
"?!!?."
2021년 겨울, 이른 저녁을 차려놓고 나는 자주 나갔다. 외출하는 날은 대중없었다. 하지만, 선호하는 날은 분명 있었다.
남들은 집에 있고 싶어 하는 궂은날을 좋아했다. 불금, 불토도 나가기 좋았다. 차림은 올블랙. 검은 마스크에,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패딩차림이었다.
현관을 나서면서 나는 휴대폰 앱을 열었다. 불특정 다수와 조건만남을 할 수 있는 앱이다. 많은 젊은 남녀가 좋아하는 앱이다. 아줌마들도 제법 그 앱을 좋아했다. 나는 그녀들과 달리 특별했기에 다른 루트로 그 앱에 들어갔다. 비밀의 문이 열렸다.
조건을 따져가며 설레는 만남을 기대했다. 언제나 신중해야 했다. 몸뚱이는 하나고 허락된 시간은 2시간 정도였기에 늘 시간에 쫓겼다. 신데렐라라도 된 것 같았다. 짧은 만남을 하고 빨리 귀가해야 했다.
그럼 상대를 잘 골라볼까?
잠시의 망설임은 아쉬움을 남기고, 성급한 판단은 고달픔을 안겨준다. 좋은 만남이 성사되려면 민첩해야 했고, 공간지각력도 좋아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우아한 청년이었다.
나 콜에 살고 죽고
콜 때문에 살고
콜 때문에 죽고
나 콜 하나에 죽고 살고
라이더가 가는 오 그 길에 길에
눈물 따윈 없어 못써 콜생콜사야.
- 젝스키스 '폼생폼사' 짝퉁, 콜생콜사 -
배달의 민*(우아한 청년들)에서 간헐적 라이더 생활을 한 경험, 그 얘기를 해야겠다.
'비도 오고 그래서 옛 생각이 나서~~'
직업으로 하는 분, 체력이 되는 분, 오토바이 라이더들은 콜을 고르기보다 AI콜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민하는 시간이 오히려 로스(loss)기에 그냥 무념무상으로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더 이익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콜 선택을 잘해야 했다.
이 콜은 이래서 곤란, 저 콜은 저래서 보류. 고민하는 찰나에 좋은 콜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에게 매력적인 콜은 남에게도 매력적인 콜이다. 손대고 싶어도 손대지 못하는 콜들도 많았다. 중형차로 배달했던 나에게 주차하기 힘든 매장이나 좁은 골목길이 즐비한 동네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 오토바이 한 대 있었으면···.’
콜 선택을 잘못해서 진입도 후진도 못할 지경에 놓일 때면, 슉 들어갔다가 슉 나오는 오토바이가 그리 부러울 수 없었다. 속마음을 들킬 때면 친구 S에게 참 미안했다.
내가 욕심낼수록 너만 힘들어진다는 걸 알면서
애써 모른 체했어.
미안해.
하지만 그때 우리 신났었지?
그 추억만은 어디에 있든 잊지 말아 줘.
친구 S는 결국 나를 떠났다. 미안했지만 어쩌면 S에게는 잘된 일인지도...
White Sonata, S여.
너의 영혼은 사라졌지만,
너의 육신은 고귀하게 다시 피어나리.
S가 어느 폐차장에서 다시 태어나 화려한 부활을 꿈꿀 수 있기를...
S와 허술해 보이는 내가 음식 꾸러미를 가져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면 옆에 있던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차로 배달해요? 기름값은 나와요?”
물론 승용차로는 오토바이의 기동력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기름값에 차량 마모 등을 고려하면 수익이 나는 일인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당시에 2~3시간 정도의 배달은 나에게 활력을 주었다.
배달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다. 콜사(콜이 없다.), 유배지(돌아올 길이 막막한 배달지) 등의 재미있는 표현 등을 접하고 '짬에서 나오는 팁'에 광분했다. 또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투잡으로 배달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자극을 받기도 했다. 활어 같은 캐릭터들이 넘쳤다. 인생은 역시 경험이고 배워야 했다.
내가 유독 좋아한 콜은 빵집 콜이었다. 일단 가볍고 쇼핑백 포장은 우아했다. 케이크를 제외하면 흔들림도 녹는 것도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 외 밀봉된 캔 커피, 샐러드 종류도 고마웠고, 무겁지만 빠른 포장이 가능한 감자탕, 순댓국, 밀키트 등도 S와 함께라면 괜찮았다.
촉이 좋아야 했다. 콜 단가만 보고 눌렀다가 유배지로 끌려가면 큰 일이다. 초보자들이 보통 하는 실수다. 콜을 고를 때는 아주 촉박하기에 대략적인 주소와 단가만 보고 눌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다 가끔 지뢰를 밟는다. 유배지인 외딴곳으로 가게 되면 돌아오는 콜이 없어서 기름값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급경사 지역,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빌라, 보안이 철저한 고급 아파트, 대단지 아파트, 20층이 넘어가는 집 등은 기피 대상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고객의 현관문 앞까지 가는 데 몇 단계 거쳐야 하는 그런 곳은 정말 질색이었다. 음식 식을까 걱정인데 도대체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기가 쪽쪽 빨리는 느낌이었다. 주차는 가능하되 보안에 취약한 빌라나 단독주택이 선호 대상이었다.
배달앱도 중독이었다.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심심하면 앱을 켜서 단가를 구경했다. 단가가 센데 아무도 안 가져가면 발을 동동 굴렀다. 꼭 나에게 나오라는 손짓 같았다.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들과 파티할 준비는 하지 않고 몰래 배달앱을 켰다.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단가가 10만 원이 넘는 배달 건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었기에 더욱 놓칠 수 없었다.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에 콜을 낚아채고 10분 거리를 곧장 운전해 갔다. 빕스에 도착하니, 혼자 왔냐는 표정이었다. 돈에 눈이 멀어 23만 원의 무게를 예상하지 못했다.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누르지 않은 이유가 있었구나.'
괜찮다고 긍정회로를 돌렸다. 직원들은 안 괜찮아 보이는 나를 도와 다섯 꾸러미를 내 차에 함께 실어주었다.
배달지는 회사였다. 사무실에서 정오에 조촐히 송년회를 하는 모양이었다. 의문의 여자 배달 기사는 세 번이나 왔다 갔다 어수선을 떨면서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배달해 드렸다. 10만 원에 5천 원이니 1만 원의 인센티브를 챙겼다. 무릎뼈마디 아픈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에게 행운의 날은 2번 더 있었다.
콜창에서 그 이름을 봤을 때 나는 이미 직감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서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이 센스 어찌할꼬? 짝짝짝'
대게 전문점 앞에서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대게는 가볍고 몸값은 비쌌다. 아주 훌륭한 품목이다. 게를 모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운전했다. 고객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곤 평소처럼 뛰지 않았다. 혹시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조심 품에 안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현관문 앞에서 배달완료 버튼을 누르고 평소처럼 냅다 도망치지도 않았다. 숨어서 고객이 들고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또, 기억에 남는 날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본능을 눌러야 했다.
앱을 켜고 콜 구경을 했다. 내 마음을 흔드는 콜들이 둥실둥실 떠돌아다녔다. 평소보다 2~3배 몸값의 콜들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다들 가로채 가지 않았다. 아니 가로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폭설과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수많은 오토바이 라이더의 발이 묶이는 날이라 콜이 넘칠 수밖에 없는 데, 또 나는 얼떨결에 콜을 눌렀다.
‘회니까 좀 늦어도 되겠지.’
숙성참치 집은 우리 집에서 200m, 배달지는 훌륭하게도 횟집에서 50m 거리였다. 요즘 말로 개꿀이었다. 얼떨결에 콜을 눌렀지만 책임을 회피할 순 없지 않은가? 우산을 들고 천천히 눈길을 걸었다.
가다가 3번이나 꽈당 넘어졌다.
한심함이 밀려왔지만, 가게에서 몇십 분째 내가 오기만을 기다릴 사장님을 생각하니 또 걸어야만 했다. 설산에 오르는 산악인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고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겨우 도착한 매장에서 회를 품에 안고 또 50m를 더 전진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미션을 수행한 나에게 서로 오라고 콜들이 난리를 쳤지만, 눈을 질끈 감고 앱을 껐다. 참아야만 했다. 자식이 둘이나 딸린 아줌마니까 눈밭에서 살아 돌아가야 했다.
하루는 집에서 먼 곳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주소를 보니 산 아래였다. 도착하니 진짜 산속이었다. 외딴집이었다. 현관도 입구도 없는 곳에 아무 데나 음식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메아리 치듯 외쳤다.
자장면 시키신 분?
산 아래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 중년 부부가 산으로 걸어 올라오셨다. 그들에게 자장면과 짬뽕 한 그릇씩 배달하고 오는데 기분이 상당히 상쾌했다. 돌아오는 길은 콜사(콜이 없다)였지만 뿌듯했다.
배달 알바는 여러 이유로 길게 하진 않았지만 코로나 시국에 나에게 도파민을 샘솟게 한 일이었다. 비 오는 날,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조건 만남을 위해 뛰쳐나갔던 그때의 설렘이 떠오른다.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올라가 음식을 내려놓고 배달 완료를 누르며 내려왔던 '우아한 청년'으로서의 나.
그때 팔딱거렸던 내 모습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