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
휴게 공간에서 뭔가 끄적이고 있는데 누가 들어왔다. 공간에 나만 있었고 눈이 마주치기도 해서 눈인사 겸 목인사를 했다. 나보다 5~6살 정도 많아 보이는 그녀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바로 행동개시했다.
"아야!"
아팠다. 잠시잠깐의 몸의 통증보다 마음의 통증 쪽이었다. 얼굴이 절로 찌그러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칭찬을 바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예상한 그것을 마주하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녀가 내민 것은 나의 새치였다. 새치를 함부로 뽑았다가 한 자리에 열 개씩 나서 스트레스인 상태라 방금 전 상황은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그녀의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류애인가?
하지만 나에겐 지나치게 선을 넘은 오지랖, 그 자체였다.
그깟 일(?!)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깟 일로(?!)로 고마워할 수도 없어 소심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일부러 안 뽑고 있었던 건데, 그걸...... 뽑으면 열 개씩 나서요."
그녀는 사과는커녕 아무 말 없이 자기 볼일을 보고 있었다. 내 기준에서 그녀의 행동은 불쾌, 그 자체였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집에서 또 '굳이'와 마주했다. 안 해도 되는 행동을 하는 딸아이를 발견했다.
"뭐 하고 있어?"
"쿠키(반려 도마뱀) 탈피 중이라 껍질 벗겨주는 거야."
"그냥 내버려 두면 스스로 벗기던데, 굳이?"
"혼자 잘 못 벗기는 것 같아서."
"결국엔 다 하던데 뭘. 근데 엄마가 쿠키라면 지금 너무 싫을 것 같아."
"아니야. 깨끗하게 벗겨줄 거야."
"제발 그냥 내버려 둬."
사춘기 아이에게 내 말이 먹힐 리 없었다. 쿠키의 탈피를 돕겠다며 핀셋을 들고 껍질을 꼼꼼히 뜯어내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애써 외면했다.
'쿠키야, 구해주지 못해 미안해.'
누군가에게 쏟는 애정 '굳이'의 기준을 누가 정해줬으면 싶다. 상대의 도 넘는 '굳이'로 불쾌하고 피곤해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이미 선행은 아니겠지?
나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한 적은 없을까?
사실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라 '굳이' 번거로운 무언가를 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는 '굳이' 무언가를 벌려놓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주 설레는 긴장감이다.
문득 세바시 강연 등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저기 선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
'내 얘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일까?'
'대본 없이 술술 말할 콘텐츠가 내겐 있을까?'
꿈틀대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의지는 별다른 목적도 무대도 없어 쉽게 사그라들 위기였다.
그때 번쩍!
무대가 없으면 무대를 만들면 되지!
꼭 성공한 유명인들만 강연하나?
그럴 필요는 없지!암요!암요!
함께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구인모집을 했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을 정리해 소박한 나의 SNS에 올렸다. 나의 SNS는 글쓰기&책 읽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웃이기에 그들과 함께라면 더욱 기분 좋은 강연이 될 것 같았다. 타인에게 귀 기울여 줄 공감능력이 있는 자들이라면 미약해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도 뭔가 내면에 말할 거리를 품고 있을 것 같았다. 글이 아닌 말로 꺼내보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스며들듯 건전하고 진취적인 분위기'도 기대했다.
보통 사람들의 스피치 무대
- 10인 이내 소규모
- 강연자 = 청중
- 15분 이내 자유주제 강연
- 말하기 연습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 모집
[강연주제]
나의 OO도전기, 인문학 산책, 나의 문화산출물 소개, 인생철학, 장기자랑 등 멤버가 정해지면 청중을 고려한 주제 선정을 권함. 강연을 기회 삼아 새로운 챌린지를 해보는 것도 추천함.
소심했던 모집 홍보에도 유명한 브런치 작가이자 나의 독자(댓글러) 두 분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강연을 함께 하기로 결심해 주었다. 첫 무대로 아주 좋은 조건이다. 우리의 강연은 청중이 강연자이다. 강연자가 곧 청중이다. 순번을 정해서 강연을 하고 따뜻한 후기도 정성스레 손글씨로 남겨주기로 계획하고 있다. 발표 + 피드백 포함 30분씩 잡으면 얼추 3시간이 걸린다. 뒤풀이까지 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하루가 될 것 같다.
계획한 강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긴장감이 올라온다. 원고를 뒤엎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우, 주제가 식상해.'
'아, 이거 누가 궁금해하겠어?'
'아, 이건 내가 말하면서도 질려.'
'아!!!!!!!!!!!!! 왜 이렇게 버벅대는 거야!'
하지만, 절대 '굳이? 왜 이런 걸 기획했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굳이'는 인생의 큰 추억이자 선물이 될 것 같다. 이 글을 보게 될 브런치 글친구이자 나와 함께 하기로 한 그녀들에게 미리 말해놔야겠다. 이번 '굳이'는 '삶과 사람에 대한 찐 애정에 기반한 굳이'라는 걸 말이다.
p.s) 브런치로 알게 된, 감히 글친구라 말씀드리고 싶은 '도란도란', '안개별'님께서 이 글 보실 것 같아 미리 전합니다. 어떤 위험요소가 있을지 모르는 저와 '굳이' 함께 하기로 한 날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리 감사드리고 서로 잘해봅시다. 허락 없이 닉네임 노출해서 죄송하고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