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재우고 올 테니까 딱 기다려.”
한참 남편과 싸울 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두 살 터울 어린 남매 육아로 고단했던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잠들기 일쑤였다. 남편에게 따져 물을 게 많았지만 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시댁에 얹혀살던 시기여서 더욱 그랬다. 어른들 계실 때는 자중해야 하니 밤의 전투를 기약했지만 늘 타이밍을 놓쳤다.
낮에 우연히 싸울 기회가 찾아와도 애들 앞이라 그러지 못했다. 애들에게 ‘사랑하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싸우지는 않는 부모'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게 당시 나에게 최선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싸울 때면 느껴야 했던 두려움과 불안을 내 아이에게는 물려주기 싫었다. 그것의 위력을 아는 나는 제법 감정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은영 박사님께 교육받은 세대기도 했다. 오은영 키즈맘으로 아이의 심리와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건물을 상속하지는 못할지언정 트라우마를 물려주지는 않아야 했다. 염치가 있어야 했다. 나는 점점 복화술과 연기의 달인이 되어야 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당시에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하는 감정교감까지는 사실 욕심이었다. 그저 바쁜 엄마의 뒷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차마 슬프고 지친 내 눈빛으로 교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립'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잔뜩 빌려와 바닥에 깔아주는 일과 '국립' 박물관, '국립' 과학관에 데려가 눈호강을 시켜주는 일이었다. 기분이 울적할 때면 장난감을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대형마트로 데려갔다. 알록달록한 색에 취할 수 있게 말이다. 조카들한테 물려받고 주변에서 선물 받은 장난감이 제법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마트에서 뭘 사달라고 떼쓰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고유한 기질 때문인지, 엄마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에 대한 기관의 피드백에는 사회성에 관한 얘기가 늘 빠지지 않았다. 말수가 없고 조용히 있는 편이라고 했다.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이 하원 후 친구들을 사귀려면 엄마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잽싸게 집으로 데려오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기관에서 억눌려 있던 만큼 집을 휘젓고 다녔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빼줘야 했다. 신나는 영어 동화나 음악 CD를 틀었다. 틀어놓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아래층 할머니께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올라오셨다. 아이들이 흥에 겨워 발을 구른 게 화근이었다. 매트도 효과가 없었다. 예민하신 할머니는 짜증을 많이 내셨고, 아이들은 더욱 주눅이 들어갔다.
혼자 사시는 아래층 할머니가 안 계시다는 게 감지되는 날이면 나는 화끈하게 그 CD를 틀었다. 둘째를 임신한 채 큰 아이를 데리고 첫 문화센터에 처음 갔을 때 받은 CD였다.
주말만 아이를 보던 워킹맘이 휴직 후 처음으로 평일 낮에 아이와 문화센터 수업을 들었을 때 그 설렘과 행복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추억의 CD였다. 놀이체육 ‘트니트니’ CD를 틀어놓고 아이 둘이 구르기에 심취하면 나도 운동 중이라며 매트 위에 누워 다리를 벽에 걸치고 잠시 쉬기도 했다.
트니트니 트니트니 트니트니
트니트니 친구들
만나서 반가워요 (선생님)
만나서 반가워요 (친구들)
내 이름은 (누구)
신나는 트니트니 (야)
'트니트니'가 귓가에 웅웅 거릴 때쯤 주섬주섬 2부 댄스 수업을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조절했던 내가 과감히 휴대폰을 꺼내 남매 눈앞에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가장 힘들 때 꺼내 쓰는 히든카드였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플레이되면 자기 오빠 본적이 강남(강남 스타일)인 걸 모르는 어린 둘째가 침대 위에서 발 하나를 구르며 손을 모으고 신나게 뒤뚱거렸다.
심지어 건조대에 널려있던 본인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심취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 웃기다며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잠시 쉬면서 눈물을 삼키곤 했다.
남매가 다닌 어린이집에서 부모초대 없는 발표회를 하곤 영상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화려하고 귀여운 의상을 하고 율동하는 아이들을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두 돌이 지난 3세 반 아이들이 올록볼록 엠보싱 복장을 하고 뒤뚱거리며 무대에 등장했다. 둘째 딸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음악이 흐르는데도 평소와는 다르게 팔을 꼬고 무심히 간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이어 5세였던 첫째 아들반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촤르르 떨어지는 초록색 화려한 의상을 입고 꽤나 점잖게 공연을 잘 마무리했다. 떨지 않고 듬직하게 해냈다.
5세 반 아이들 공연이 끝나자 아쉬웠는지 선생님들의 앙코르 요청이 있었다. 사전 협의 없던 음악은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큰 아이도, 친구들도 5초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걔 중에 그래도 활발한 남자아이는 막춤을 추었고 언니가 있는 여자아이는 웨이브도 시도하는 모습이었다. 쭈뼛쭈뼛하던 아들도 선 자리에서 콩콩 위로 뛰는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괜히 안쓰러워질 무렵 운명의 그 곡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지칠 때면 틀었던 바로 그 곡!
싸이의 ‘강남스타일’
PSY - GANGNAM STYLE (강남스타일) @ Seoul Plaza Live Concert
책과 블록을 하며 조용히 한 공간에 가만히 앉아있던 유순한 아이로 소문나 있던 평화주의자, 아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마구 방방 뛰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무슨 일이 났나 싶어 함께 뛰었다. 아들의 의외의 모습에 놀란 선생님들의 환호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아들이 한참을 흥에 겨워 뛰고 있는데 무대 위로 하늘색 오리가 뒤뚱거리며 난입했다.
선생님들이 말릴 새도 없었다.
뒤태가 딱 둘째였다.
뒤뚱거리며 무대로 올라가서 자기 오빠 옆에 서서 뒤를 도는 순간, 강남스타일 노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계산된 시간이었다.
무대체질이었던 것이다.
오빤 강남스타일
가장 흥에 겨운 노랫말이 나오자 말춤으로 보이는 춤을 추는 딸아이를 보고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환호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이미 그곳은 광란의 축제현장이 된 듯했다.
3세 둘째의 기세에 눌린 5세 언니오빠들의 뻘쭘함이 보이는가?
둘째 딸이 도저히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살까지 강남 오빠'였던 자기 오빠의 무대에 난입해서 화끈한 무대를 보여준 이 사건은 제법 이슈였다.
이 영상은 줄곧 나를 웃게 했다. 가족들도 이 영상으로 자주 웃었다.
아이들 덕분에 웃다 보니 힘든 시기도 그럭저럭 잘 보내온 것 같다.
지금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어릴 때 뭐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있어?"
"없는데?"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는 걸로 봐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했다. 당시 우리 집이 아주 힘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정도면 아주 꿀꿀했던 엄마의 아이들을 위한 '감정 다스리기'는 성공한 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