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 주제 : 똥(feat. 이런 서평 처음이지?)
아들과 폰 분리를 하면서 뒤늦게 SNS를 시작했다. 1~2년 된 것 같다. 관심사를 책, 독서, 글쓰기로 설정하니 매일 '책에 파묻히는 삶'을 산다. 알고리즘은 친절하다. 나를 옥죈다. 건전한 소식들만 쏙쏙 배달된다. 미루다 미루다 만든 계정은 글친구들과 소통이 목적이었기에 비공개 계정이었다. 글친구들과 SNS에 책과 글, 영감 기록을 올리고 서로 응원하고 칭찬하는 맛에 고래는 춤을 췄다. 더 좋은 책을 읽고 더 멋진 사유를 남기려 노력했다.
'책만 읽고 땡'이었던 독서습관은 타인의 SNS를 보면서 점점 진화했다. 독서 챌린지, 독서 인증, 필사 기록, 독서모임, 북토크 참여, 책 감상 쓰기 등으로 관심사가 넓어졌다.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SNS 악영향 중 하나는 타인의 화려한 삶을 보며 자신을 하찮게 여기게 되는 마음이라는데, 독서 앞에서는 하찮아져도 된다. 그래도 된다. 타인의 명품백과 내 에코백을 비교하지 말고, 타인의 리조트와 내 방구석을 비교하지 말자. 타인의 책장을 보고 내 뇌에 경종을 울리면 된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SNS 생활인가? SNS의 순기능이다. 때마침 소식이 날아들었다.
“2025 경기도 평생독서 응원단 모집 공고”
평생독서 프로젝트 정책 및 행사를 함께 홍보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2025 경기도 평생독서 응원단’을 모집하오니 도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나는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경기도민이다. 평생독서를 약속하냐 물으면 인감도장은 못 내줘도 구두로 오케이 할 수 있었다. 치어리더는 할 수 없는 몸이나, 입으로 글로는 응원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언니가 1,420만 경기도민의 독서장려를 위해 힘써준다!”
다소 거만한 마음으로 공적인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자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했다. 서류를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이 말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응원도 마음대로 못하는 더럽고 치사한 세상!”
지원자격과 선발방식을 보니 만만치 않았다. SNS 운영현황, SNS 마케팅 실적, 유사활동 경력(서포터즈, 홍보단, 기자단 등 활동 경력 우대)을 점수화하여 합격자를 선발한다고 나와있었다. 응원도 경력이 필요했다. 응원도 실적이 필요했다. SNS 활동지수가 포트폴리오인 세상이었다.
까다로운 포맷의 서류에 인적사항만 쓰다가 파일을 닫았다. '그러라 그래.'라는 마음에서였다.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그 서류를 채우고 있었다. 나도 내가 가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잘 자는 것은 신의 선물.'이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안 될 일도 되게 할 궁리를 찾고 있다.
하나라도 잘할걸!
찍먹만 하며 계정만 여기저기 만든 나의 SNS실적은 초라했다. 긁고 긁어 박박 긁어 겨우 서류칸을 채워 나갔다.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 난 것 2건, 소박한 SNS친구수(4개 플랫폼 합쳐서 180명, 그중 브런치 123명), 독서 관련 글 조회수(19회, 22회, 541회, 675회, 30회 등)를 적어 나갔다. 정량평가에서 밀릴 것 같아 정성평가에 신경 써야 했다. 자기소개서에는 매일 독서와 매일 글쓰기를 하며 '경기도 도서관은 내 집이다.'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진정성을 담았다. 백수광부야말로 경기도 평생독서 부흥에 힘쓸 훌륭한 인재임을 강조했다. 다행히 합격했다. 담당자 말이 조회수나 유명세보다는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을 뽑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뽑히는 게 당연했다. 하하하.
경기도 평생독서 응원단은 경기도서관 건립(2025년 11월 개관)과 경기도 독서진흥에 대한 정책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파주 출판단지에서 응원단 발대식을 했고,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들, 고도원 아침편지 재단 이사장, 출판업 종사자, 지역 작가 등이 참석 예정이었다. 주최 측에서 '나의 인생책'을 챙겨 오라는 미션을 주었고, 어떤 책을 선택할까 고르던 나는 책장에서 노란색 책 앞에 멈춰 섰다. 고도원의 '잠깐 멈춤'. 아꼈던 책이기도 하거니와 고도원 작가님이 연사로 참석하신다니 적합하다 생각했다. 책장을 넘기는데 메모지 하나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오! 글씨체 너무 멋스럽다! 누구지?'
3층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우편물(겉봉투 수취인 OOO)을 발견하고는 4층으로 가져왔답니다.
'책' 한 권 권해달라던 말이 기억났고... 내 맘대로 겉봉을 뜯고 (편지가 아님이 분명해) 변변치 않으나
제목 '잠깐 멈춤'도 맘에 들고 하여 한 권 같이 보냅니다.
날씨 굉장한데 아가랑 잘 지내죠?
그저 몸도 맘도 '건강'이 최고니깐!
가끔 3층에 들르면 창가 쪽에서 미소로 '아는 체' 해주던 기억이 포근했었는데...
- 4층에서 OOO-
글을 읽는데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분이 떠올랐다. 그분은 내가 다녔던 회사 건물 4층 빈 사무실에 혼자 계셨던 젊은 할아버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년퇴직 후, 계실 곳이 변변치 않아 지인 소개로 잠시 그 사무실에 머문 것으로 추측한다. 소속감 없이 불편하게 그 장소를 무료로 사용 중이라 회사 사람들과 마주칠 때 어색해하셨는데, 그 분위기를 못 참는 내가 종종 말을 걸며 아는 체를 했다.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육아휴직 중간에 회사에 들러 우편물을 찾았을 때는 그분은 더는 거기 계시지 않아 감사인사조차 못 드린 기억이 났다. 잠깐 인연이었지만, 그분이 내게 준 이 책과 쪽지는 내게 멈춰있던 시간을 편하게 달래주었다. 책의 힘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분은 지금 80대 할아버지가 되셨겠지?
'잠깐 멈춤' 책을 품에 안고 2025년 2월에 파주로 갔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알찬 행사였다. 꾸역꾸역 서류를 메꿔 제출한 나를 칭찬했다. 그곳에서 들었던 강연이 퍽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땐 몰랐지만,
그렇게 읽었던 독서의 결과로 글쓰기를 아주 즐기게 되었고요.
그리고 마음속에 뭐 인성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지금의 저다운 자기다움이라고 할까요?
이것을 형성하는 데 독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생각수출국가로 만들고 싶습니다.
- 김동연(경기도지사)님 강연 중 -
똥통에 빠진 소년이 실어증에 걸렸을 때, 책을 읽었더니 뭐가 되었어요?
작가가 되었어요.
시인이 되었어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등장했어요.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스피치 라이터가 되었어요.
제가 그때 그림 그렸으면 지금 뭐 하고 있을까요?
답이 나오죠?
- 고도원(작가) 님 강연 중 -
경기도평생독서응원단을 하면서 '천권읽기'를 알리는데 내가 기여한 바는 미미하겠지만, 그 활동이 내게 기여한 바는 크다. 일 년 동안, 독서를 열심히 했고, 즐기게 되었다.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 글을 쓴다고 사진을 정리하다 그때 오셨던 경기도 히든작가로 선정된 작가님을 보니 누군가 떠올랐다. 브런치 작가이자 2025년 경기도 히든작가로 선정되어 책까지 내신 분. 마침 그분 책이 도서관에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알람이 왔다. 희망도서를 신청한 사람이 나니까 처음으로 그 책을 읽는 사람이 나다. 영광이다. 이 기막힌 타이밍을 놓치면 배신이다. 도서관 귀퉁이에 숨어들어 책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포도송이×인자 작가님의 '삶은 도서관'을 읽어보자. 재미있으면 '튀겨' 줄 것이고, 재미없으면 '묻어' 두련다.
(문재인 전 대통령님이 운영하는 평산책방 추천 도서라도 재미없으면 백수광부는 서평 못 쓴다. ㅋㅋㅋ)
이런 대쪽 같은 마음으로 쿠션을 등에 괴고 방바닥 드러누워 읽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갑자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찰나를 겨우 잡았다.
이런 서평은 처음이지?
들리는가? 웃음 터지는 소리!
ㅎㅎㅎㅎㅎㅎㅎ
한참 웃다가 이제 웃을 일 없겠지 했는데 또 웃음이 튀어나왔다.
오늘 글은 이러나저러나 똥얘기다. 누런색 '잠깐 멈춤'책, 똥통에 빠진 소년(고도원)의 성공 스토리, '삶은 도서관'에 나오는 똥 사연들까지 화려하다. 일급비밀인데, '삶은 도서관'을 빌린 저 도서관은 쾌변한 도서관이다. 저기만 가면 신기하게 항상 신호가 온다. 그리고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으로 화장실을 나온다.
혹시 인자 작가님이 글을 보신다면 불쾌해하시진 않겠지?
황금똥이다 생각해 주세요. *^^*
(아님 '똥 밟았네'도 좋고요! 제 200번 글입니다. 복권 사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