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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l 14. 2024

에메랄드빛 유전자의 힘

#12. 한다면 한다

에메랄드빛 유전자를 가진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얘도 한다면 하는 애이다.

“방학 때 일 없지?”

“왜? 뭐 하게?”

“나랑 작업 좀 하지?”

그렇게 미친 추진력과 최고의 가성비를 얻게 되었다.


인테리어의 특성상 마르고 굳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란 게 있기에 빼곡한 타임라인과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아주 중요했다. 네이버 카페와 유튜브를 뒤져가며 공부했다. 역시 공부는 벼락치기 공부가 최고다. 처음에는 페인트 칠만 하면 되는 회화 숙제가 점점 골조까지 신경 쓰는 조소 숙제로 바뀌고 있었다.


전세를 살 때는 내장이나 본판이 어떻든 겉만 번지르르하면 좋았다. 2년만 버티면 된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평생 바꾸지 않을 건축물을 시공하듯 본질에 다가서고 싶었다. 점, 선, 면만 생각하던 2D에서 높이, 깊이, 부피, 두께 등을 생각하는 3D 스케일로 내 포부는 커졌다. 걸레받이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도 몰랐던 내가 목수가 담당해야 할 걸레받이에 욕심을 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쉽게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들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페인트공이 해야 할 가구와 문짝 색 입히기를 시작으로  전기에서 담당해야 할 조명, 문고리 교체나 타카 작업, 전동드릴 작업까지 모두 욕심을 냈다. 시트지 작업이나 싱크대 상판 제작주문, 커튼, 가구, 베란다 연출 등은 사사로운 작업으로 느낄 만큼 말이다.


구(舊) 집에서 신(新) 집까지는 자동차로 달리면 30분 거리였다. 구 집에 초등생 2명과 7살 조카를 두고 나와 마이 시스터는 신집으로 와서 노동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더 이상의 소음조차 용납되지 않을 깜깜한 밤이면 다시 구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정으로 3일을 살았다. 개구쟁이 조카가 4층 창문의 방충망을 밀어 길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전화에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초등 3학년이었던 딸이 조카와 놀다가 웃겨서 오줌을 쌌다는 얘기를 듣고는 뒷감당을 한 초5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돈 몇 푼 아끼자고 여럿 고생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미안하고 눈치가 조금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미 시작된 작업을 중간에 엎어버릴 수도 없었다.


장판 작업을 하기 전에 바닥상태를 보기 위해서 장판 귀퉁이를 들춰보았다. 그런데 장판 밑에 또 장판이 있었다. 그 장판은 뜯기지도 않았다.

 “이게 그 덧방이라는 건가?”

여자 둘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급하게 검색을 해서 철거하는 사람을 불렀다. 그 사람은 나보다 동생뻘로 되어 보였다. 센 가격을 불렀지만 급한 마음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저씨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형님을 데리고 와서 일을 했다. 본인은 일을 물어오는 마케팅 담당이고 그 형님은 막일 담당이라는 말을 했다. 하는 말이나 하는 짓이 양아치 같았다. 블로그에 글 올릴 정도의 인터넷 능력이 무슨 커다란 역량인양 형님을 무시했다. 본인은 사장 노릇하고 그 우직한 형님은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모습에 배알이 꼴렸다.


‘뭐 자기도 일 없어서 자다가, 갑자기 내 전화를 받고 나왔으면서 뭐 큰 일 만들어 온 것처럼 잘난 척이야?’


그들이 와서 장판 철거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처럼 장판은 바닥에 두 겹, 그 위에 데코타일 이렇게 총 세 겹이 눌어붙어 있었다. 그 모습에 경악하며 물었더니 장판 시공자들이 장판철거가 귀찮으니까 그 위에 덧방을 해버린 것이라고 했다. 단단히 눌어붙었다며 투덜투덜거렸다. 일단 투덜거림은 기본 옵션인 것 같았다. 빠루를 써야 한다며 연장을 더 챙기러 가는 모습에 도저히 돈을 깎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들도 그럴까 봐 먼저 불평불만으로 입막음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시간이 촉박한 것은 내쪽이었다. 이 철거 작업을 장판작업 전에 하지 않으면 아마 당일에 네 겹째 장판을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보일러를 켜는 날에는 포름알데히드가 모락모락 피어나 와 나와 내 가족의 콧구멍을 지나 폐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억울한 느낌의 돈을 지불했지만 잘한 일이라며 내 불만을 눌러 담았다. 나와 다르게 사람 구슬리는 데 귀신인 여동생은 그 능구렁이 아저씨들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드리면서 이것저것 인테리어 팁들을 물어댔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순진한 얼굴과 띄워주기 권법으로 그들이 노하우를 풀도록 하였다. 그 노하우에 엄지 척을 날려주었더니 아저씨들이 그들의 연장으로 우리가 원한 일을 대신해 주었다. 툭 올라온 방문턱을 없애는 작업을 해주고 갔다.  


그들이 떠난 이후 우리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공구상가에 가서 시멘트 한 포를 사 왔다. 그러고는 어릴 때 본가의 장독대를 만들 때 시멘트 작업을 하시던 시멘크공 아저씨를 떠올렸다. 그 손 스냅을 떠올리며 함몰된 방문턱 아래에 시멘트를 채웠다. 이래저래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완성도 되었다. 전혀 할 거라고 예상치 못한 작업을 완벽히 수행하고는 우리는 자이도취에 빠졌다.  

“벌 거 아니군.”


인테리어를 한 지 15년이 된 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뜯으니 잘 뜯겼다. 보기 싫은 체리 색 걸레받이 시트지는 유튜버의 예상과는 달리 그냥 좌아악 뜯겨나갔고 누리끼리해진 MDF 몰딩은 다시 윙하고 갈린 다음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 살고 싶다고 속삭였다. 그래서 나도 자유를 주려고 다 뜯어버렸다. 하나 뜯다 보니 신이 나서 이쪽저쪽 잡히는 대로 다 뜯어버렸다. 천장 몰딩도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왠지 천장이 무너질 것만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것만은 꾹 참았다. 다 뜯고 보니 작업량이 어마어마했다. 나를 구해달라며 검색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찌 안 되겠냐는 나의 질문에 이번에는 하나같이 입을 맞췄다.


걸레받이 몰딩은 벽지를 하기 전에 해야 벽지 끝을 걸레받이에 태울 수 있다고 했다. 또 벽지와 걸레받이가 되어있는 곳에 장판 작업을 해야 실리콘 접착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사이에 나는 뭘 어쩔 참인가??’

 ‘너!! 왜 대책 없이 다 뜯어버린 거야?’

 ‘왜! 왜! 왜!’


자책할 시간도 후회할 여가도 없었다. 몰딩이 택배로도 주문이 되지만 당장 사야 할 판이었다. 승용차에 실어야 하는데 길이가 2.5미터란다. 인테리어 카페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승용차에 안 실린다며 용달차 링크를 남겨주었다. 그 와중에 단 한 사람만이 소나타에 몰딩을 싣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친절한 사람이 남긴 사진을 보고는 바로 목재소로 달려갔다. 목재소 사모님에게 나의 비전문가적 무식한 발언을 몇 번 들키고 말았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소나타 앞 좌석에서 뒷좌석으로 사선으로 겨우 싣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목재를 자를 톱을 쿠팡에서 사놨기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공간을 쭉 돌면서 줄자로 길이를 재고 길이별 걸레받이를 자르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한 번 두 번 잘라봤다. 셀프 작업자들을 위한 톱으로는 이미 전문가의 눈이 되어버린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단면이 깔끔하지 않고 거지 같았다. 그리고 고난도인 모서리 부분에서 자꾸 실수가 생겨 로스분이 생겼다. 나는 또 휴대폰에 의지했다. 그 거지 같은 단면은 다 잊고 깨끗하게 커팅을 해주는 것을 소개해주었다.

전문가만 쓴다는 전동 각도톱!


나는 그걸 대여해 주는 곳을 찾았고 동생과 함께 거기로 달려갔다. 사장님은 상당히 의아해하셨다. 도대체 뭘 하려고 빌려 가는지 물으셨다. 우리는 미소로 응답했다. 사장님은 말하셨다.


“이 기계 쓰는 사람한테 꼭 말해요. 잘못하면 손가락 날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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