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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l 11. 2024

집수리 프로젝트

#11. 셀프 인테리어

 집을 덜컥 계약한 후 모든 것이 다 잘 되는 느낌이었다. 당장 팔 집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집값이 올라가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주변에서도 그때 잘 샀다며, 너의 선택이 옳았다며 추켜세워 주었다. 이삿날까지 한두 달의 시간이 괴로울 만큼 빨리 이사 가고 싶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시간이 넘쳐나던 때라 나는 정보란 정보는 다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사 갈 지역의 부동산 카페,  교육 카페 및 오픈 채팅방에 가입해 두었다. 그 와중에 중개사 할머니가 전화가 왔고 나에게 물었다.


“올수리 할 거지?"

"올수리요?"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집주인이 며칠 전에 짐을 빼줄 수 있다니 수리 싹 해서 살아. 집주인이 깨끗하게 살아서 그렇지 인테리어 한 지 15년은 됐을걸."

“그런데, 잔금은 계약일에 드릴 수 있어요. 여기 전세도 빼야 하고 대출도 그렇고.”


“돈은 계약일에 줘도 돼. 여기 주인들 전세로 가는 거고 중도금으로도 충분히 되니까. 아기엄마가 돈 떼어먹을 사람도 아니고”

아기가 아닌 큰 애들을 키우는데 자꾸 아기엄마라 불렀다. 첫 집 계약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아기 엄마 취급이 마냥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죄송한데 집 한 번만 더 보러 가도 될까요?”

“또?”

그렇게 나는 또 한 달 뒤 내 집을 방문했다. 집주인 할아버지께서는 계약 후 더 오르는 집값 때문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눈치를 봐가며 집 내부를 눈에 담고,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업자들이 오면 다 치수 재고 할 건데... 뭘.”

주인 할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저 체리색 몰딩, 체리색 붙박이장, 체리색 신발장, 꽃무늬 핑크 벽지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90년대 스타일의 타일은 왜 이리 멀쩡한지 미안해서 깨부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마루는 때가 낀 원목인지 원목무늬 장판인지 알 수 없었다. 인테리어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나조차도 정이 안 갈 만큼 내부는 유행이 한참 지나 있었다. 하지만 중개사가 다음 건수를 위해 기대한 올수리는 몇천만 원이라는 견적으로 나와 선을 확실히 그어주었다.  


 어릴 때 종종 도배공으로 변신하시는 엄마를 봐온지라 도배는 일반인도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벽지가 더러울 때면 엄마는 부엌에서 풀을 쑤셨다. 시장에서 사 오신 벽지를 접어 부엌칼로 주욱 자르시고는 식힌 풀을 쓱 쓱 바르셨다. 어른인 아버지가 아닌 애들에게 붙잡게 하고는 깨끗한 빗자루로 도배지를 쓸어내리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목 근육이 벌써 뻐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배는 전문가에게!


장판을 까는 엄마의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장판 밑에 지폐를 보관했던 기억이 솔솔 났다. 싫다.

장판도 당연히 전문가에게!


도배와 장판, 이삿짐을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결정하니 최소 몇백만 원은 필요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했다.


 유튜브는 고급 정보의 보고였다. 알고리즘은 알아서 나를 여기저기로 끌고 다녀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도 하지 않는 나에게 맨손의 목수, 페인트공, 수리공, 타일공들은 참으로 친절했다.


‘덤벼 봐’

‘할 수 있어’

‘알려줄게’

‘나만 믿어’


그리 속삭였다.

 

“그래! 그까짓 거 그거~ 대충 하면 되지. 어차피 망해도 내 집인데.”

또다시 나의 무모함은 상승기류를 타고 승천할 준비를 마쳤다.


집주인이 미리 짐을 빼주는 시점부터 내가 이사할 날까지 4박 5일의 시간이 생겼다. 그 안에 모든 인테리어를 끝내야 했다. 벽지를 먼저 하고 장판을 해야 하는 순서라 벽지는 둘째 날, 장판은 붙을 시간 고려해서 이사 전전날로 세팅했다. 중간 1일과 뒤로 1일, 사이사이 자투리 시간이 내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였다. 처음에는 그냥 몰딩의 체리색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려고만 했다. 붙박이장을 원하는 컬러로 칠하는 데에 만족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튜버 목수 아저씨는 나에게 걸레받이를 해볼 것을 권하였고 길을 알려주었다.


도착지로 가기 위한 엔진은 준비되었다.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이게 도와줄 윤활유가 필요했다.

한다면 하고야 마는 ‘에메랄드빛 유전자’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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