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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l 07. 2024

진짜 나의 집

#10. 경기 남부, 사람 살기 좋은 곳

"여보세요?"

"여기 H부동산인데 어제 봤던 그 집주인이 이사 나간다네. 애기 엄마가  할 거지?"


집주인 할아버지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하루 만에 집을 판다고 하니 조금 의아했다.


"할아버지가 이사 가신대요?"

"조용한 곳에 부부가 살 전셋집 봐두고 오는 길이야."


"벌써요?"

중개사 할머니는 반말로 나한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제 내가 돌아간 이후에 중개사는 집주인 할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근처를 몇 바퀴 돌았단다. 집 값 잘 나갈 때 팔고 현금은 쥐고 있고 사는 건 전세로 살라며 옆 동네에 집을 구해놨다고 했다.


'아, 이 중개사 추진력 보소. 나보다 더 하네.'


“아기엄마 사정이 딱해서... 내가 그 집 계약하게 해 줄게. 그러니 가계약금 빨리 부쳐."

"지금이요? 아직 남편이랑 상의도 안 했는데..."


"한다 만다 얘기가 있어야 여기도 가계약이라도 거니까... 주인 마음 바뀌기 전에 해."

사기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일처리에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주인 할아버지 인상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부동산 중개사도 그 자리에서 30년을 했으니 믿음이 간다고 믿었다. 내 마음에 결심이 섰다.


"그런데, 가격을 5백만 원 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대출을 해도 돈이 좀 모자라서요."

"아... 어디 빌릴 데 없어? 안 판다는 거 팔라고 한 거라 더 깎으면 엎어버릴 수도 있어."

"그렇긴 한데..."


"알았어. 일단 내가 다시 말해 볼 테니 가계약금부터 부쳐놔."

“아... 그래도 확실해져야 부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깎아주면 내가 빌려줄게.”

“예?”


그렇게 화끈한 중개사에 의해  그 집의 주인이 바뀔 판이었다.


집주인 할아버지와 나,


둘을 선택인?

둘 중 하나를 하나의 희생인?

둘 다 물에 빠지는 건가?


자세한 건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건 그 중개사배는 두둑해질 것이다. 하루아침에 몇백을 벌었으니 말이다.


호탕한 중개사가 드디어 집주인과 나, 둘의 눈치를 봐가며 줄다리기에 성공했다. 내가 원한 -500만 원, 집주인이 원한 -0원의 줄다리기에서 집주인이 섭섭하지 않을 -3백만 원에 깃발을 꽂았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염치가 있었기에 남편의 허락도 없이 뭔가 홀린 듯이 가계약금을 훅 보내버렸다.  


선지름후통보!


남편에게 지금까지 상황을 설명했다. 가계약금을 물라고 소리를 높였다. 평소 이렇게까지 내 결정에 반대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했다. 그래서 겁이 났다.


남편에게 겁이 난 것이 아니라,

부동산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집값이 폭락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대출이자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게 더 불길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중개사에게 물린다는 말은 더욱더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기로 했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한 후에 카톡을 보냈다.


"이따 2시에 계약서 쓰게 반쓰고 부동산으로 와."


남편이 바로 전화했다. 남편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내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는데 결국 당신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야?"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부동산으로 가지 말고 딱 기다려!


이렇게 무섭게 나온 적이 없던 사람이 이러니 무서워졌다.


이 긴장감 뭐지?


나는 일이 어그러질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그래서 남편 위의 그분, 시어머님께 SOS를 쳤다. 어머님은 나에게 힘을 실어주셨다.


“내가 얼마 전에 점을 봤는데 곧 문서운이 있다더라.”

“문서운이요?”


“내가 이 나이에 문서운 있을 게 뭐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거였나 보다.”

근데 애들 아빠가 너무 반대해요.”


“내가 전화해 볼게.”

“지금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알았다. 무조건 해라. 내 집은 하나 있어야지.”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는지 남편은 일단 수그러든 모양이었다. 공원으로 걸어오는 모습에서 화난 기색은  없었다. 그럼에도 계약한 집을 보러 가기 전까지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풍겼다. 경계심을 감추지 않은 채 H부동산사무실에 들어갔다. 노련한 공인중개사 할머니는 남편의 얼굴빛으로 이 모든 상황을 눈치채는 듯했다. 쌓아온 영업 내공으로 남편의 마음을 녹였다.


“아기 아빠가 흰 바지가 참 잘 어울리네. 어지간한 사람 아니면 못 입는데 말이야.”


참고로 남편은 뱃살이 없는 늘씬한 표준 몸매에 멋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 명의의 집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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