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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l 04. 2024

탈서울 시그널

#09. 경기 남부로 걸어 나가다.

아버지의 말이 곧 명령이다.

명령 불복종은 상상하기도 싫다.

꾸물거렸다가는 심장을 쓸어내릴 각오쯤은 해야 했다.


까라면 까야했던 분위기였다.

불가항력에 의해 아버지의 명령을 실행하지 못할 시에는 흙먼지가 나뒹구는 마당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기도 하고 교복이 불타 없어지는 일쯤은 추억으로 넘길 정도는 되어야 했다.


까라면 까야했지만, 엄마는 순순히 까는 스타일은 아니셨다. 불만을 소심하게 찍소리로 표현하셨다. 그런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자식들이라 그럴까?

우리 형제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까라면 깠지, 기란다고 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뭔가 마음을 먹으면 꾸물대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덤비고 보는 스타일로 자랐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결혼은 다른 성향끼리의 만남이었나 보다. 우리 딸들의 남편들은 잘 웃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다른 모습이 좋았나 본데 살다 보니 공통된 단점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부족했다. 식사 메뉴 외에는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도 않았다. 뭐 하나 말을 해도 빠르게 추진되는 일이 없었다. 뭔가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들이 없는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노인처럼' 행동했다. 답답해서 안달복달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매들이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해결해 내고 성취감에 취해있는 쪽도 우리들이었다.


“내가 안 나서면 일이 안 되는군.”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 집에 오래 있으면 잡념이 많아진다. 또, 고질병이 도졌나 보다. 살던 곳이 질리기 시작했다. 뭔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도 그랬고 지하로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이슈도 걱정이었다. 6년을 전월세로 그 안에서 이사를 다녔던 나는 아예 동네를 바꿔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또 이사할 핑계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애들도 이제 고학년인데 교육적으로 여기가 최선인가?'

'대출을 해서라도 정착할 내 집이 필요해.'

'부동산은 계속 오르기만 하네. 내린다는 말에 이제 안 속아.'


소위 말하는 서울 학군지 중에서 내 수준에 맞는 지역을 골라보았다.

'이 돈으로 서울 학군지는 너무 무리야...'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서울이었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날 타이밍인 것 같았다. 그래서 알아본 동네가 경기 남부의 학원가가 몰려있는 곳이었다.


'바로 여기야!'


제2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가서 동네를 구경했다. 일단 학생들이 많다는 자체가 큰 장점이었다. 젊음이 숨 쉬고 활기가 넘쳤다. 맛있는 음식점들도 즐비했다. 내 경제적 사정에 맞는 아파트를 몇 군데 둘러보고는 만족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에 남편을 데리고 그 동네로 다시 구경을 갔다. 부동산 가격이 날 뛰던 시기라 그 며칠 사이에도 몇 백이 올라 있었다. 남편은 가격에 비해 집 상태가 별로라며 부정적이었다.

"나 여기 전세 말고 집 살 거야."

"미쳤어? 이런 오래된 구축을 왜 사?"


"동네가 좋아. 애들 공부시키기도 좋고 서울도 이 정도면 가깝고."

"이제 집값 쭉 떨어질 거야. 지금 집 사면 바보야."


"맨날 내려간다는데 안 내려갔잖아. 이제 안 속아."

"아니야, 이거 진짜 마지막 거품이야."


"상관없어. 그 거품이 나를 위한 거품이야."

"미쳤구나. 이 동네에 그 돈을 내고 집을 사게."


"미쳤대도 어쩔 수 없어."


이미 내 눈에 하트가 된 동네라 오래된 것도, 좁은 것도, 주차장 복잡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물이 부족하고 가격이 정말 미쳐 날뛸 때였다. 매물이 있다고 전화를 받고 가도 허탕 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남편은 2년만 전세를 더 살고 움직이자며 설득했다. 귀에 안 들어왔다. 심지어 나에게 물건을 보여주는 부동산 공인중개사조차 살던 곳에서 2년 더 살다 오라고 할 정도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부동산 가격은 꼭대기였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엄마뻘 되는 중개사 할머니는 돌아 돌아 다시 자신의 중개소로 돌아오는 내가 마음이 쓰였나 보다. 아니, 더 그녀 다운 생각은 이것이었겠지?


'정신 나간 호구를 딴 집에 놓칠 수는 없지.'


다른 동네 알아보라던 중개사 할머니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장님, 지금 집이에요?"


중개사 할머니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아파트 단지의 어느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바로 그 아파트 단지로 갔다. 기다리지도 않은 손님의 방문인 듯 집주인 할아버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사장님은 이제 애들 다 키웠잖아. 가격 잘 나갈 때 팔고 조용한 동네로 가서 살아.”

“뭐 그래도 되지만…….”


“아기엄마, 이 사장님은 집 담보도 없어. 내가 신용은 보장하지.”


그다지 팔 생각이 없는 집주인을 꼬여서 이사를 보내고 나를 거기에 살게 할 모양이었다. 검소함 그 자체로 보이는 집주인 할아버지께 이런저런 멘트로 작업을 하셨다. 결정을 못 하신 할아버지께 봐달라는 의미로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밤새 그 집이 아른거렸다. 꼭 내 집이 될 것 같았다.


다음날 031로 시작하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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