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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n 27. 2024

서초구 주민

#7. 출세했네.

'서울특별시 서초구'


나의 주민등록초본에서 가장 번쩍번쩍 빛나는 주소가 '서울특별시 서초구'였다. 강남 3 구라 하면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를 일컫으니 강남에 진출한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주말부부였기에 혼자 살았다. 혼자라고 해서 신혼집을 자췻집 수준으로 구할 수는 없으니 멀지만 집 같은 집을 구했다. 신랑이 모아놓은 돈으로 경기도 광명의 아파트에 신혼집을 얻었다. 마을버스를 한번 타고 철산역으로 나와서 7호선을 타고 회사를 갔다. 이 역시 한 시간 거리였다. 성수역에서 가깝게 다니다가 또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2년 만에 이사를 했다. 전세자금대출을 조금 받았더니 회사 근처 잠원동에 깨끗한 6년 안팎의 빌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와~ 촌년이 많이 발전했네. 강남에도 다 살아보고.'


특히 그 건물은 1층에 맛있고 멋있는 호프집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잔을 하고 헤어진 후 나는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 호프집이 있는 빌딩 6층 내 집으로 올라갔다. 직장 동료들에게 차마 집이 이 건물 6층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시달려야 할 그들이 짠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낭만의 거리, 가로수길이 나온다.

그 집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전국으로 갈 수 있는 고속터미널이 있다.

그 집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쇼핑천국이 나온다.

그 집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한강이 있다.

그 집에서는 남산 N타워의 멋진 야경이 보였다.

그 집에서는 회사가 5분 거리였다.


나는 그 집과 사랑에 빠졌다. 대출이자? 그까짓 거 그냥 내면 되지. 이렇게나 편한데...


마음이 편해진 나는 그 집에서 첫 아이를 임신했다. 회사는 야근이 잦았고 임산부라고 열외는 없었다. 내 성격상 만삭 임산부일지라도 할 일은 하고 퇴근을 했다. 단, 월요일과 화요일은 미친 속도로 일을 해서 늦어도 밤 9시 40분에는 회사에서 나와야 했다. 배불뚝이였던 나는 뛰지도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집에 7분 만에 도착했다. 후다닥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휴식을 취할 시간이 다가왔다. 당시 나에게 꿀 같은 휴식은 드라마 '선덕여왕'이었다. 사극을 별로 좋아하지도, 역사에 관심도 없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나를 나의 고향 경주와 만날 수 있게 해 주던 시간이었다. (태교를 선덕여왕으로 해서인지 아이는 지금도 한국사를 좋아한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집에서 가까웠다. 연인들의 거리, 낭만의 거리를 배불뚝이 임산부도 자주 걸었다. 산부인과가 가로수길에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 10일을 앞두고 출산휴가를 내었다. 금요일까지 회사를 다니고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산부인과로 향했다. 여유롭게 가로수길에서 임부복도 고르고 차도 마시며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여유로운 나와는 달리 의사 선생님께서는 조금 초조한 듯했다.


"예정일이 10일이나 남았는데, 아이 머리가 너무 크네요."


머리가 계속 자랄 것 같은 10일의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머리가 자꾸 커지는 아이를 어떻게 나을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음날도 산모교육이 있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가진통과 진진통에 대해서 배웠다. 둘의 차이를 알 듯 모를 듯 그런 상태로 직장인의 로망인 평일 오전을 즐겼다. 임산부가 저녁으로 소식을 하기 위해 케밥 하나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슬슬 출산이 걱정되었다. 출산 10일 전에 이미 3.5kg을 넘은 아들이 출산일에는 엄마인 나처럼 4.2kg으로 나올 것 같아 불안했다.


'안 되겠다. 나오게 해야 했다.'


나올 기미가 없는 천하태평인 아들은 성질 급한 어미를 잘못 만났다. 출산예정일을 내 마음대로 앞 당길 참이었다. 그동안 미뤄왔던 집안 대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걸레를 빨아 소파 아래도 청소하고 바닥도 밀면서 준비운동을 시켰다. 1시간을 서서 냉장고 청소도 해냈다. 뱃속에 있던 아이가 중력방향으로 조금씩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 그리 진을 빼고는 저녁으로 케밥 하나를 물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화요일의 '선덕여왕'이 하기를 기다렸다. 배가 조금씩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선덕여왕' 할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아닐 거야. 이게 진짜 진통은 아닐 거야.'


그렇게 아파오는 진통의 느낌을 무시하며 '선덕여왕'을 시청했다. 미실이 죽어가는 그 중요한 회차, 드라마 명대사들로 진통을 이겨내며 독하게도 끝까지 봤다. 드라마의 여운과 함께 진통은 더 세게 오는 듯했다. 규칙적으로 쏴한 느낌의 진통이 전해질 때쯤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다.


"산모님, 어차피 오늘 밤 그 상태로 못 견디실 것 같으니 지금 병원으로 오세요."


나는 부랴부랴 미리 싸둔 산모가방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지방에 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회식 중이란다.


"아이 진짜. 하필 지금 술이야? 애 나올 것 같아."


술 먹은 남편이 바로 오지는 못할 것이니 자매 4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용"

"너도 술이냐?"


건대입구에서 친구들과 술을 흥건히 마신 대학생을 어쩔 수 없이 불러들였다. 밤 11시 30분이었다. 못 미더운 동생이었지만 진통을 하는 임산부가 기댈 곳은 거기뿐이었다. 겨우 택시를 타고 산부인과에 갔다. 술 취했는데 안 취한 척하는 대학생 보호자의 모습에 간호사들이 어이없어했다. 사실 나도 조금 부끄러웠다. (^^)


겨우 케밥 하나를 먹고 머리 큰 첫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까지 출산을 기다리며 빈 속으로 버텼지만 아이는 나올 기미가 없었다. 기력이 다 떨어져 갈 무렵, 유도분만주사를 맞고 출산하기로 했다. 분만실에 들어가서 몇 번의 힘을 주어도 아이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본인도 본인이 나올 날을 계산하고 놀고 있었는데 억지로 나오라고 하니 심통이 났나 보다. 그 사이 산모는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산모님, 힘을 주세요. 안 그러면 아이가 위험합니다!"


아이의 머리가 나오다 내가 힘이 빠지면 다시 들어간다며 나에게 막 뭐라고 했다.


"마지막입니다. 젖 먹던 힘까지 한 번에 길게 쭈욱 힘을 주세요."

"끄으~~ 응"


내 안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힘을 줬다. 나를 믿지 못했던 간호사는 내가 힘을 줄 때 배 위로 날아올라 내 배를 힘껏 눌렀다. 돌아갈 곳이 없던 아이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쑥 나왔다. 그 아이가 벌써 중3이니 세월이 많이도 지났나 보다.


돈이 모이는 강남.

서초구 잠원동 집은 나에게 여러 가지 복을 많이 가져다준 곳이었다. 첫째 임신과 출산을 이루어졌고 둘째도 잠원동 집에서 잉태되었다. 둘째가 임신됨을 알고 휴직 후 남편이 있는 곳으로 잠시 내려가게 되었다.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쉽지 않다.'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꾸역꾸역 큰 아이 7살에 다시 서울로 복귀를 했다.
(그 사이 긴 역사는 기회가 되면 다른 브런치 북으로 만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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