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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n 30. 2024

그래도 서울이 좋냐?

#8. 100m 걸어가면 경기도

겨우겨우 돌아왔다.

내려갔다가 돌아오긴 쉽지 않았다.

지방으로 내려간 시점부터 인생에 풍파가 닥쳤다. 서울로 돌아오기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하지만 또 무언가 나의 머리채를 북쪽으로 잡아당겼다. 허당인 내가 치밀하게 서울행을 준비했다.


4인 식구였다. 미취학 아동이 둘이었다.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했다. 학교도 곧 보내야 했다. 신중한 이사여야 했다. 가진 게 별로 없었지만 없이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돈은 차차 벌 수도 있지만 아이들 자존감 떨어트리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조용한 동네를 찾았다. 경기권이 가성비가 좋았다. 그럼에도 서울을 고집했다. 촌년다웠다. 겨우 홈에 안착한 3루의 주자처럼 서울 귀퉁이에 발을 갖다 댔다.




서울시 구로구와 경기도 부천시의 접경지역.

서울행 지하철의 시작점이자 부천, 인천행의 시작점.

출발점이자 도착점. 도착점이자 출발점.

1, 7호선 온수역.

주소지는 서울이지만 생활권은 부천인 동네.


온수역에서 수목의 향을 따라 좀 들어가면 아담한 동네가 나온다. 거기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 작은 동네에서만 2년에 1번씩 3번을 이사했다. 당시 그 동네는 돈 없는 우리에게는 최적의 인프라를 갖춘 곳이었다.  


첫째, 다들 사는 게 비슷한 편이었다.

둘째, 3만 평에 이르는 서울시 최초의 시립수목원이 애들 놀이터였다.  

셋째, 술집이나 PC방 같은 청소년 유해시설이 거의 없었다.   

넷째, 공부학원이 거의 없었다.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다섯째, 대학교가 근처에 있다. 대학 내 커피 전문점이 저렴했다.    


첫 집은 30년이 훌쩍 넘은 붉은색 벽돌의 빌라단지였다. 봄이면 목련이 2층 창가에 닿아 희망이 되어준 집이었다. 우리는 작은 평수에 살았다. 짐이 많은 4인 식구가 13평에 살기란 많이 좁았다. 하지만 우리처럼 사는 가족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밝아 보이는 엄마들이 참 좋았다.  


주말이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국가 땅인 수목원을 내 땅인양 누비고 다녔다. 때 묻지 않은, 그러나 정돈된 깔끔한 자연환경을 누렸다. 아이들은 꽃씨를 모으거나 나뭇잎 스탬프를 찍는 미션에 열을 올렸다. 커피숍 테라스 앞에서 사방치기 놀이도 했다. LTE급으로 빨리 달리는 다른 지역 사람들과 동떨어졌지만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느낌이었다.   


<푸른수목원 : 업체제공>
<푸른수목원 : 업체제공>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조용히 살고팠던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단톡방 인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만 생각하면 '굳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찌그러져 살고 싶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적극성은 필요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지환이가 방학이니까 자기 집에 와서 수영하자던데?"

 

지환이는 근거리에 살았지만 감히 다가가기 힘든 언덕 위의 유럽형 타운하우스에 사는 아이였다. 지환이는 내 아들과 취향이 비슷했다. 그래서 친했지만 오래 놀지 못해 늘 아쉬워했다. 지환이 엄마는 그 동네 엄마들과 쉬이 어울리는 분은 아니었다.

아들 윤이가 지환이랑 놀고 싶다 말을 했지만 내가 불편해 모른 척하다가 는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이에게 수영복을 입히고 초대받은 집으로 갔다.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만 아주 많이 그곳이 신경이 쓰였다. 우리 집과 그 집은 나이가 비슷했지만 몸값이 아주 많이 달랐다. 아마 그 간극만큼이나 불편했던 것 같다.

"윤아, 어서 와!"

"어! 수영장이다."


"풍덩"


지환이는 잡지에서 본 듯한 야외 수영장 속에 있었다. 거기에는 3명의 아이들이 여유롭게 수영을 하며 놀고 있었다. 아들이 수영장으로 '풍덩'하는 순간 내 가슴에도 돌이 날아와 풍덩했다. 큰 파장을 한 겹 두 겹 만들고 있었다.


"윤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큰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책을 덮으며 지환이 엄마가 말을 건넸다. 인사만 했을 뿐인데 교양이 풍겼다.   


"지환이가 초대했다면서 너무 오고 싶어 해서요."

"잘 오셨어요. 여름 내내 개방하는 곳이라 와서 같이 놀면 좋죠."


"아~"

"윤이는 수영 잘하네요. 지환이는 수영을 여기서 놀면서 배워서 개헤엄이에요."


그래도 아들의 수영실력이 내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개헤엄을 치던 지환이 곁으로 한 여자가 다가갔다. 그녀는 아이들의 자세를 봐주고 놀아주었다. 단지에서 고용한 대학생 알바 수영강사라고 했다.


"수영강사가 외부인 들어오면 눈치 주는데 한 두 번은 괜찮을 거예요."


그 말이 콱 박혔다. 괜히 이방인이 와서 물을 흐리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집 평수 차이가, 집 값 차이가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었다. 지환이 엄마가 아무리 친근하게 말을 붙여도, 우리 아들을 추켜세워주어도, 괜한 자존심이 나를 도저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다른 곳으로 향하는 느낌이었다. 주제도 소재도 등장인물의 삶도 말이다.


'젊은 나이에 어찌 이리 비싼 집에 사는 걸까?'


동네 아저씨 복장의 수입이 빤한 공무원 남편,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아내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기 힘든 집 같았다. 얘기 들어보니 부잣집 태생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시댁이 잠실이라는 말에 남편이 18K 금수저 정도는 물었나 싶었다.  


"윤아, 동생 올 시간이야. 오늘은 그만 놀자."


끝내고 싶지 않은 아이의 즐거움을 억지로 끊어야 했다. 내가 힘들어서였다. 아쉬워하는 아이와 투덜거리는 지환이를 뒤로한 채 바쁘게 인사를 시키고 뒤돌아섰다. 힐스를 내려오면서 자괴감이 밀려왔다. 젊은 날 이력서에 지하방 주소인 'B103호'를 당당히 썼던 나였는데, 그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괜한 자격지심이 아이에게 투영될까 걱정되었다.

유치원에 있던 동생을 데리고 터벅터벅 좁아터진 내 집으로 들어갔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래층 70대 할아버지가 벨을 눌렀다.


"애들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 죄송합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숨만 쉬었을 뿐인데도 죄송할 일이 생기는 집이었다. 90대 노모를 모시고 사는 70대 할아버지는 무음으로 계시다가 우리가 오면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못 견디셨다.




윤아, 너는 오늘 보고야 말았지?


우당탕탕 거리며 숨바꼭질을 해도 웃어주던 친구 엄마.

술래가 숨어버리면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든 내부가 복잡한 3층짜리 집.
수많은 책을 표지가 보이게 좌우로 정렬할 수 있는 넓은 거실 책장.

3인 식구에 냉장고만 3대, 8인 식탁을 놓아도 여유가 있는 주방.

물총놀이도 칼싸움도 가능한 넓은 앞마당과 뒷마당.


윤이 머릿속에 부러움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



그래서 나는 또 이사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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