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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n 23. 2024

그중에 강남

#6. 우리들만의 강남

강남에 살고 싶다.

이름만 들어도 웅장해지는 강남에

나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범만리 촌년들이 과연 강남에 살 수 있을까?  



부모님이 주신 보증금은 4천만 원이었다. 여기에 직장인 2명이니 월세를 조금 보태도 된다. 하지만,


'술값은 아깝지 않아도 월세는 버리는 돈이다.'


이 논리에 우리 자매 셋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 주신 돈에서 방을 알아보는 데에 합의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남을 중심으로 이 조건을 충족할 곳이 있나 찾아다녔다. 겁 없이 강남구, 서초구에 갔다가 놀라 소스라치고는 점점 북동쪽으로 반경을 넓혀갔다. 세부전략도 수정을 했다.


'강남으로 이사 가자'는 말은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았다.   

<조건 1> 강남 근처 지하철 2호선, 7호선 인근이면 소원이 없겠다.

<조건 2> 3명이서 생활할 최소 방 2칸은 됐으면 좋겠다.


강남에서 강을 건너 강북으로 가보았다. 일부 고지대 지역을 탐방한 후 바로 접고 내려왔다. 등산은커녕 운동도 싫어하는 우리가 그곳에 정착하는 것은 고행이었다. 그럴 바에야 화곡에 살면서 지하철 자리를 잘 잡는 운에 기대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서였다. 모든 걸 포기하고 살던 곳에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우리는 숨겨진 보석을 발견했다.

그곳은 성수동이었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이 개발되기 전의 성수동은 다소 음침한 동네였다.  


갤러리아포레가 지어지기 전의 성수동은

찐 서민들의 주거지였다.


카페거리가 조성되기 전의 성수동은

신발공장거리였다.


성수역 5분 거리에 우리는 다가구 방 2칸짜리 집을 계약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승급도 했다는 사실이다. 찬란한 햇빛을 맞이할 수 있었다. 사실 해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해를 쳐다볼 정도로 한가한 청춘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 버느라, 학교 다니느라, 술 마시느라 바빴다. 그래서 성수동 집은 교통편의성 딱 그거 하나를 보고 골랐다. 안방 창문을 열어 점프를 하면 반대편 집에 건너갈 수도 있는 다닥거림도 참을 수 있었다. 창문을 열지 않고 살면 되었다. 채광, 환기? 어차피 그런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잘 때 빼고는 집에 머무는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열광했던 부분은 성수역이 2호선이라는 것이었다. 2호선의 위엄을 아는가?? 성수역에서 강남과 종로로 편안하게 지하철로 이동하니 살 것 같았다. 순환선이라 혹여 지하철에서 잠들어도 기다리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호선 지하철역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이사였다. 젊은 청춘들은 강남이나 건대입구에서 편안하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도 가까워 고향집을 비롯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좋았다. 그리고 퇴근이 이른 날에는 2호선의 일몰을 보는 것도 아주 좋았다. 힐링 그 자체였다.


'아, 다들 이래서 한강뷰에 살려고 하나?'


성수에는 값싼 맛집도 제법 많았다. 퇴근을 해서 성수역 3번 출구 쪽으로 나오려고 걷다 보면 마중을 나오는 냄새가 있었다. 3번 출구 사인 쪽 포장마차의 떡볶이와 튀김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았다. 검은 봉지에 그걸 사들고 가면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 피처 2개를 사들고 퇴근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동생들과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직장 스트레스도 저 멀리 날릴 수 있었다. 그래서 성수동의 추억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


'왜 그때 대출을 받아 성수에 집을 살 생각을 안 했을까?'


자매들은 성수동 핫플레이스가 TV에 나올 때마다 후회를 하고 있다. 그때 성수동의 가치를 알아보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이후 이사를 안 하고 쭈욱 살았을 수도 있을 텐데...

가끔 달라진 성수동의 위상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머물다 떠나갔던 자리들은 죄다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  


얼마 전, 아울렛의 유명 구두 브랜드 신발매대 앞에서 손님과 판매원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성수동이 다시 그리워졌다. 손님이 구두의 퀄리티를 의심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거 중국산 아니에요?"

"에이~ 이거 Made in Seongsu(메이드 인 성수)."


하하하. 웃음이 난다. 지금은 유명 카페들이 즐비한 그곳은 2000년도 중반만 해도 특유의 가죽냄새가 났던 신발공장들이 즐비했던 동네였다.  


하지만, 성수동은

우리들만의 강남이었다.




"This stop is Seongsu, Seongsu.

The doors are on your right."



방송이 들리면

"벌써?"

하고 놀라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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