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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Jul 18. 2024

삽질의 미학

#13. 비효율의 극치

날카로운 톱날 앞에 참으로 겸손해졌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계 앞에 앉았다. 피로 누적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기에 두려움도 밀려왔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푼 아끼자고 손가락이 날아간 사연은 싫었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집중'을 외쳐보아도 집중이 되지 않을 정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거기다가 급하게 먹은 아침이 아직 소화가 안 된 탓에 속도 쓰렸다. 폐기물에서 나오는 안 좋은 냄새로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였다. 그 사이 아이들에게서는 배고프다, 언제 오냐는 전화가 몇 번이나 왔다. 급기야는 퇴근한 남편에게서 도대체 뭐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나도 내가 지금 뭐 하는지 모른다고요.'

 '아! 진짜 울고 싶다.'

 '눕고 싶다.’

 '자고 싶다.'

 '안 보고 싶다.'


돈을 주고 부리는 인부였으면 이미 퇴근을 했을 것이다. 아니, 아마 벌써 도망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 시스터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 대책 없는 '노빠구 직진' 스타일 언니의 작업이 반응이 일어나도록 촉매역할을 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건 나에 대한 존경심이라기보다 언니가 싼 똥을 치워오면서 생긴 노련한 처세술이었을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나는 동생에게 유튜브에서 전동톱으로 몰딩을 커팅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몰딩 커팅 기술 중 제일 어렵다는 비스듬히 45도 각도로 커팅하는 영상이었다. 몰딩 2개의 단면이 코너에서 예쁘게 만나야 하는 그 부분이었다. 목수들의 노파심과는 달리 쉬워 보였다.

 “여기 45도에 눈금 맞추고 1초면 된다. 잘 잡아.”

플러그를 꽂고 기계를 작동시키는 순간, 휑한 회색 콘크리트 바닥 위에 울려 퍼지는 '윙'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자기 장르가 누아르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순간 범죄 영화가 떠오른 건 왜였을까?

잘게 갈린 톱밥 가루는 내 눈과 콧속으로 들어왔다. 졸음이 싹 가시고 온몸의 털들이 기립했다.


 “스응~ (댕강)”

 “와! 잘렸다.”

 “오!! 된다. 된다. 진작 빌릴걸”

우리는 환호했다. 단면은 아주 깔끔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렇게 두 동강이 난 몰딩을 연결해 보았다.


 “엥? 이거 뭐야?

 “우리 바보야?”

둘을 합치면 90도가 나와야 하는데 자꾸 화살표 모양이 되었다. 측면에서 봤을 때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내려가야 하는데 위에서 전동톱의 각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을 또다시 돌려보며 혼잣말을 했다.

 "알겠어요. 알겠는데 적용이 안 돼요. 아니 알고 싶지 않아요."


무엇이 내 머리를 카오스로 만드는지는 몰라도 이미 혼수상태였다. 아주 단순한 논리가 기계 앞에서는 풀리지 않는 비밀 같았다. 연습한답시고 몰딩 로스 분을 만들면 이 공간을 오늘 내로 다 채울 수 없기에 실전 말고 머릿속 삽질이 필요했다. 시간의 압박과 피로의 누적 때문인지 뇌를 0.0001%도 쓰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실실거리며 미쳐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전공선택 과목으로 수학을 공부했던 내가 풀지 못한 45도 각도의 비밀을 대학에서 조리과를 나온 여동생이 해결해 주었다. 머릿속에서 오이의 어슷 썰기로 시뮬레이션 하는 눈치였다. 똑똑하다. 어릴 때부터 눈치코치 잔머리로 다져진 생활의 지혜는 늘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우리는 그날 밤 치수를 재어 몰딩 하나 자른 후, 실리콘 짜서 붙이고를 반복하면서 비효율의 극치를 달렸다. 비효율인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몰딩이 모자라는 대참사를 막을 수는 있었다. 걸레받이를 다 끝내고 뻗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긴긴밤 이 공간을 그냥 놀릴 수는 없었다. 내일의 도배를 하기 전에 천장 몰딩, 기둥 몰딩 등에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흰색으로 한번 덮는다고 묻힐 색이 아니었다. 강력한 체리 색은 우리의 팔다리를 후들거리게 했다. 2차 덧칠을 해야 했고 의자를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며 목이 빠져라 페인트칠을 해나가야 했다. 제대로 된 긴 의자도 없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화가 이중섭 님의 ‘황소’에서의 터치와 비슷한 칠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림 속 황소의 강렬한 전투적 이미지와 설움이 교차한 서글픈 감정이 밀려오고 있었다. 뭔가를 완성해 놓고 가야 한다는 마음과 배고픔의 설움이 교차한다고 해야 하나? 이중섭 님은 이런 말을 남겼단다.


 “나의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

결국 우리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신집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구집으로 퇴근했다.


‘내일까지 신선한 공기가 꽉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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