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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Sep 07. 2024

#9.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소설입니다.



'콜이 배정되었다? 무슨 콜?'


그녀는 음식배달 중이었으니 주문콜을 말하는 거겠지? 그 일이 궁금해졌다. 코로나 시국에 흥하는 업종 중 하나가 배달업이었다. '집 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다들 집안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빠져들었고 음식조차도 배달시켜 먹었다. 배달비를 내며 음식을 시키는 일은 사치라고 생각한 나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배달앱을 깔아보았다.


가입 쿠폰을 꼼꼼히 챙겨서 할인된 금액으로 간짜장 두 그릇을 시켜보았다. 주문 후 앱에 뜨는 메시지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앱은 아주 친절했고 재밌었다. 조리가 시작되면 된다고 표시가 되었다. 기사가 배정되면 되었다고, 기사가 음식을 가지고 출발하면 한다고, 어느 길로 오는지, 어떤 운송수단으로 오는지, 언제쯤 도착하는지 모두 표시되고 있었다.


'게임 같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야.'


앱에 빠져있는 사이에 배달 예상 시간에 현관문에서 정확히 노크 소리가 났다. 인터폰으로 현관 앞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빼꼼히 문을 열어보니 간짜장 꾸러미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모든 게 비대면이군.'


오히려 편했다. 누구와 마주하기 싫은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앱이었다. 주문에서 배달까지 말 한마디 없이도 가능했다. 배달기사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식당에서 음식 픽업 후 싣고 우리 집 앞에 내려놓고 벨을 누르고 돌아설 때까지 말을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

"살기 위해 뛰는 사람"


우리는 모두 생존게임 중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 뛰어야 하는 그런 게임판 위에 애처로운 캐릭터들이었다.


이상하게도 배달 기사가 '배달완료' 버튼을 눌렀을 그 순간의 기분이 힘듦이 아닌 희열로 나에게 다가왔다.


“서준아, 점심 먹자.”




2022년이 밝았다. 서준이는 겨울방학과 동시에 '청소년 힐링캠프'를 떠났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2주간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시에서 운영한다기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허락했다. 이제 놀 명분이 없었다. 남편이 없는 주부가 바깥일을 하지 않고 쉴 명분은 자식인데 자식이 없으니 일을 해야만 했다.


지난겨울부터 마음속에 할까 말까 갈등했던 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차마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용기를 준다면 당장 해보고 싶을 정도로 호기심이 생겼다. 동생 수진이에게 전화했다.


“운전할래? 달리기 할래?”

“무슨 소리야?”


“나 배달 알바를 해보고 싶은데 혼자서는 도저히 시작을 못하겠어."

“배달 알바?"


"응. 놀면 뭐 해."

"음. 그럼, 일단 나는 달리기를 할게.”


언제나 나보다 용기 있는 쪽은 수진이었다. 나는 자동차 운전석에, 수진이는 조수석에 앉았다. 미리 가입하고 익혀두었던 배달플랫폼을 켰다. 점심시간 30분 전이라 콜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보았다.


“콜이 배정되었습니다.”


이 웅장한 소리를 내 휴대폰에서 듣게 되었다. 이때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콜을 클릭하니 음식점 주소지로 내비게이션이 연결되었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나는 운전만 했다. 매장 앞에 차를 대니 수진이가 문을 열고 내 폰을 들고 뛰어갔다.


"휴~ 아 떨려."


한숨 돌리려는데 수진이는 1분 만에 후다닥 다시 나왔다. 그리고는 픽업 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니 이번에는 고객의 집으로 내비게이션이 연결되었다.


“뭐가 이리 금방이야? 메뉴가 뭐야?”

“순댓국. 순댓국은 퍼 담기만 하면 되니까 엄청 빠르네.”


뭔가 깨달음이 왔다.


"오~ 콜을 고를 때, 뭘 파는 음식점인지 체크하는 게 중요하겠네. 하하."


무슨 일이든 센스가 있어야 몸과 마음이 편하다. 수진이는 센스가 있는 편이었다. 한두 번 콜을 받아보더니 이내 메뉴를 보고 배달 시간을 예측하는 센스까지 보였다. 접수가 되어야 조리가 시작되는 메뉴인지 그냥 가면 당장에라도 포장해서 줄 수 있는 메뉴인지 말이다. 그 판단은 아주 중요했다. 콜 1개를 수행할 시간에 2개를 처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배달기사에게 시간은 금이다.


“101동 302호. 101동 302호.”


수진이는 동과 호수를 외우며 내릴 때를 기다렸다. 내가 고객집 근처에 내려주면 차문을 열고 냅다 달려 나갔다. 가끔은 3층 이내는 계단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후다닥 올라가기도 했다. 내가 차를 유턴해서 다시 그 자리에 오기도 전에 다시 돌아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작이 아주 빨랐다.


"그러다 도가니 나가."

엘베를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그러게. 성질이 좀 급해야지."

"유전이야. 히히. 여기로 가.”


수진이는 휴대폰을 거치대에 꽂았다.


“뭐? 벌써 콜을 잡았어?”

“음식 전달하고 바로 잡았지.”


“대단한데?”

“인형 눈알 붙이던 실력 어디 가나? 하하”


"남들 영어, 수학 선행학습할 때 우리도 선행한 보람이 있네. 엄마가 현명했네."


우리 둘은 배달하는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콜 하나를 완벽히 수행하면 오는 성취감은 제법 컸다.


우리 자매는 오랜만에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꼈다.


'심장이 뛰는 느낌이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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