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매는 각자도생을 택했다. 둘이 함께 하면 재미는 있으나 효율이 떨어졌다. 배달은 우리에게 취미가 아니라 생계였기에 각자 움직여야 했다.
사실 오토바이가 탐이 났다. 배달을 하기엔 오토바이가 제격이었다. 특히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차를 끌고 배달하는 나를 보며 한심한 눈빛을 보낼 때 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남편을 차 사고로 잃고 나니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아마 서준이가 내가 배달 알바를 한다는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불안이 아이를 집어삼켜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비밀로 했다.
불편하지만 오래된 내 자동차 S와 배달을 했다. 동네에서는 배달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서준이 친구네로 배달을 갔다가는 예민한 사춘기 아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 마스크와 검은 패딩으로 무장하고 다른 동네를 주무대로 활동했다. 내가 지역을 고를 수 있고, 일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배달일은 나의 상황과 잘 맞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팔딱거리는 이 일에 매료되었다.
"느그 어무이 뭐 하시노?" "라이덥니더."
자동차 배달을 거듭할수록 나의 주행과 주차 실력은 늘었다. 내비게이션이 인도하지 않아도 빠른 길을 찾아가고, 좁은 골목길 주차, 상가 앞 눈치 주차까지도 가능해졌다. 또한,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아저씨가 차량진입을 막으면 넉살 좋게 웃으며 사정하기도 했다.
"배달 왔는데 바로 나오겠습니다."
그러면 아저씨들은 여자라서 짠했는지 살짝 찌푸린 얼굴을 펴시면서 차단기를 흔쾌히 열어주셨다.
자동차 라이더는 특히 콜을 잘 골라야 했다. 배달수익 몇 천 원과 주정차 과태료 몇 만 원을 맞바꾸는 일은 없어야 했다. 주차가 가능한 곳인지 눈치코치가 있어야 했다. 픽업시간은 다가오는데 차 댈 곳이 없어주위를 뱅뱅 도는 날이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차를 버리고 달려가고플 정도였다. 또한, 보안이 심한 고급 아파트나 지하 주차장만 있는 대형 아파트 단지들은 시간을 잡아먹는 기피대상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 경사가 가파른 고지대, 다음 콜을 기대하기 힘든 외딴 지역 등도 선호할 수 없다.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사실들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도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는 라이더 생활을 하다 보면 눈에 보였다. 라이더를 무시하는 매장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그런 매장주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라이더는 라이더이자 고객이다. 배달앱에서 라이더로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고객으로서 치킨에 맥주를 시켜 먹기도, 감자탕에 소주를시켜 먹을 수도 있다. 라이더들의 예리한 눈으로 본 매장의 위생상태와 매장주의 인격은 별점으로 생생히 증명될 수도 있었다.
나는최고의 라이더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간혹 피자를 배달하면서 차에 콜라를 두고 내릴 정도로 정신없이 달렸지만 고객이 알아차리지 못해도 다시 갖다 드렸다. 그리고 음식이 식지 않도록 차 안에서도 음식을 보냉가방에 고이 모시고 이동했다. 나는속도감과 꼼꼼함으로 매장주 및 고객에게 만족도가 최상이었다. 칭찬을 들으면 더욱 미쳐 날뛰는 활어가 되었다.
라이더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배달 플랫폼에서는 가끔 미션을 뿌렸다.
"1시간에 3건을 수행하면 3000원 추가 지급."
오토바이는 가능하지만 자동차는 위험할 수도 있는 미션이었다. 승부욕에 불탄 나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시간 내에 3건을 수행한 후 ‘배달 완료’ 버튼을 누를 때면 홈을 밟아 점수를 획득한 주자처럼 짜릿했다. 겨우 3000원에 이리 가슴이 뛸 수가 있을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날이었다.
'거 배달하기 딱 좋은 날씨네.'
고객들은 밖에 나갈 수 없어 배달앱으로 몰려든다. 주문이 폭주한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라이더들은 눈으로 인해 나갈 수 없으니 단가가 올라간다. 사랑스러운 콜들이 넘쳐났다. 물론 차량으로 하는 나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긴 마찬가지였다. 잘못하다가 도로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사고라도 나면 더욱 상황이 좋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배달앱을 꺼야 했다. 하지만, 배달앱도 중독이었다. 평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높은 단가의 콜들이 둥둥 떠다니면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마저도 배달할 사람이 없어 자꾸 금액이 높아졌다. 나에게 나오라고 계속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유혹을 뿌리치고 본능을 누르고 쉬어야만 했다. 다른 누군가가 그 콜을 가져가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하지만, 그때 내 눈에 하트가 날아왔다. 숙성 참치를 파는 횟집이었는데 단가가 무려 2만 원까지 올라 있었다.
‘회니까 조금 늦어도 괜찮겠지?’
무모한 욕심이 생겼다. 참치 집은 우리 집에서 200m, 고객집은 훌륭하게도 횟집에서 50m 거리였다. 무심결에 눌러버렸다. 차를 두고 우산을 챙겼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개선장군처럼 눈길을 걷고 있었다.
“으아악!”
참치집까지 가는 데만 3번을 꽈당하고 넘어졌다.
‘왜 기어 나온 거야? 네가 청춘인 줄 알아?’
자조적인 말을 무수히 나에게 뱉고 있었다. 한심함이 밀려왔지만, 가게에서 몇십 분째 나를 기다릴 가게 사장님을 생각하니 또 걸어가야만 했다.
'50m 앞 고객의 집에 가져다주지 못하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릴 사장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
엄홍길 대장이 된 듯 비장한 마음으로 설산을 등반하듯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다. 노심초사 기다리시던 젊은 횟집 사장님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들었다. 참치회가 얼지 않도록 보냉가방에 넣고 나는 다시 50m 앞 고지를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전진했다. 고객이 주문한 지 1시간 30분 만에 겨우 배달을 완료했다. 취소를 하지 않고 기다려준 고객에게 절로 감사의 절이 나올 정도였다.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최고의 생존게임이었다. 목숨을 걸고 2만 원을 움켜쥔 것이다.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나에게 숱한 콜들이 살려 달라고아우성이었다. 아른거리는 콜들을 뒤로한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겨우 배달앱을 껐다. 다시 기어가다시피 해서 집에 도착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혹사당한 허리와 엉덩이를 지졌다.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