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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Sep 12. 2024

#11. 운수 좋은 날

*소설입니다.


배달 플랫폼 회사에서는 단가가 10만 원이 넘는 배달 건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었다. 보통 10만 원이 넘는 콜은 거의 없다. 콜을 보고 있는데 눈에 무언가 섬광처럼 번쩍했다.


‘V*PS 23만 원.’


“웬일이니?”


다행히 내가 콜을 낚아챘다. 10분 거리를 곧장 달려갔다. 매장에 도착하니 모두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혼자 오셨어요?"


돈에 눈이 멀어 23만 원의 무게를 예상하지 못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괜찮지 않아 보이는 나를 도와 직원들은 다섯 꾸러미나 되는 음식들을 내 차에 실어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배달지는 회사였다. 사무실에서 조촐하게 성과 축하 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검은색 베일에 싸인 여성 라이더는 그들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으며 음식을 날랐다. 엘리베이터를 세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말이다.


"맛있게 드세요."


그들이 20만 원 이상을 주문했으니 나 역시 2번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잘 풀리는 날이었다. 분위기가 좋아 조금 더 배달을 하고 집으로 가려고 다음 콜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구 올라오는 치킨과 피자, 떡볶이 순대 등을 물리치고 내 눈을 사로잡는 상호가 있었다.   


‘어서오게'


촉이 발동했다. 주차하기 힘든 지역이었지만 콜을 낚아챘다. 오늘, 나에게 이 콜이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알겠네. 내 바로 가지."






‘어서오게‘ 매장 앞에서 나는 씨익 웃었다. 나의 직감이 맞았다.


'오늘 진짜 감이 좋아.'


대게는 몸값이 비싸다. 인센티브를 받기 최고의 조건이었다. 부피가 크지도, 무겁지도 않으면서 비싼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 고객은 술까지 추가로 주문해서 총 25만 원어치였다. 나는 게를 받아서 15분 거리의 타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들이 쉽사리 채가지 못한 조건의 콜이었던 것이다. 국도로 가면 오래 걸리지만 고속도로로 가면 금방인 지역들, 그곳은 자동차 배달이 제격이다.


제주도 여행 갔을 때 느꼈던 시원한 바람이 차 안에도 부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 고객님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조심스레 주차를 했다. 왼쪽 뒷좌석의 게를 꺼내기 좋게 오른쪽으로 붙여서 주차를 하였다. 그러고는 게가 상할까 조심조심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객집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내가 여자라 살짝 놀란 듯했다.


“주류가 포함되어 있어서 신분증 확인이 필요합니다.”

“후훗. 제 얼굴이 신분증이죠.”


“그래도 절차상 확인을 해야 해서요.”

“잠시만요.”


그녀는 거실의 소파 위에 있던 가방 속을 뒤적이더니 이내 안에 있는 누군가를 불렀다.


“자기야, 신분증 어디 있어?”

안방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식탁 위.”

여자는 식탁 위 지갑 안에서 신분증을 꺼내서 나에게 가져왔다. 사진과 이름을 대충 가리고 나에게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2자리와 성씨만 보여주었다. 개인정보관리에 철저한 사람 같았다.  


“맛있게 드세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너무 운이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며 주차장에 있는 내 차 쪽으로 걸어갔다.


"나 오늘 완전 대박이야."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급하게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스크를 꼈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큰 키에 엉성하게 뛰는 모습이 그 아이 같았다. 일단 놀란 마음에 전화를 끊고 고개를 숙였다. 가끔 그 아이가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런 모습으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똑똑"


그 남자가 내 차의 조수석 창문을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핸들에 엎드렸다. 검은색 마스크와 검은색 패딩모자, 차의 썬텐이 나의 보호막이었다. 그 남자는 다시 노크는 하지는 않고 내 오른쪽 차의 조수석에 타는 듯했다. 그러고는 운전석으로 넘어와 시동을 걸었다. 찌익~ 급한 바퀴회전소리와 함께 딥 블루색의 미니 쿠페 차량은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나는 그때야 고개를 들었다. 차량의 뒷모습에 붙여진 반쪽짜리 하트 모양의 'Shining star'라는 글자만 내 눈 안에 들어왔다.  


방금 본 그 남자가 진짜 그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연예인들처럼 반짝이는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내가 남편 죽고 칙칙한 모습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부끄러워 숨어버린 내가 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과거 그 아이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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