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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Sep 03. 2024

#7.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소설입니다.



예상을 했지만 점심도 '각자 알아서'였다. 오전 내내 서서 내가 벌어들인 돈은 시간당 만원이었다. 차마 밥값으로 만원을 쓸 수 없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컵라면과 달달한 커피를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까지도 주변 편의점은 문을 열지 않았다. 24시간 365일 열려있어야 할 편의점이 닫혀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이쪽 편의점은 주 5일제인가 보다. 


식당도 편의점도 안 보이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다른 알바들이 가는 쪽을 일단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근처에서 유일하게 문이 열려있는 순대국밥집에 들어갔다. 나도 뒤따랐다. 서로 눈치를 좀 살피는가 싶더니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친구 사이이자 아이 키우는 엄마들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자 두 명과 5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명, 그리고 내가 그 테이블의 식사 멤버였다. 통성명은 할 필요가 없지만 분위기를 풀 대화는 필요했다. 친구 사이인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이세요?”

“네.”

“저희도 오늘 처음인데 너무 힘드네요.”


조용히 순대국밥에 다진 양념을 넣던 50대 여자가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편한 거예요.”


그녀는 자신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독신녀라고 했다. 돈이 필요하면 공장에 나와서 알바를 하고 돈이 좀 모이면 또 쉰다고 했다. 뭔가 해탈한 표정과 말투에서 그녀의 자유가 살짝씩 엿보였다. 순간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식이 아니었으면 나도 저리 살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전의 고된 육체노동으로 우리 넷은 순댓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추운 겨울 뜨끈한 국물로 몸을 녹이니 살 것 같았다. 입 안을 개운하게 해 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흔하디 흔한 커피숍 하나가 안 보였다.


'아, 오늘 커피 한 잔 마시기 왜 이렇게 힘들까?'


 편의점 역시  열려있는 곳이 없었다. 잠시 숨 돌릴 공간이 없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어색하게 뭉쳐진 사이였던 만큼 현장에 들어서자 어색하게 뿔뿔이 아까 일하던 그 자리로 흩어졌다.  


조선족 반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오후부터는 옆쪽 테이블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다. 앉아서 대화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그 테이블로 나를 보냈다.


'뭐야? 나 인정받은 거야?'   


매의 눈으로 오전의 작업을 지켜보던 반장은 나를 좀 더 편한 곳으로 보내주었다. 성실의 대가였는지 승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외면하고 나는 옆 테이블로 스멀스멀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하는 일은 약품을 저울로 정확하게 계량해서 용기에 담는 일이었다. 몰아치는 포장의 업무와는 다른 고상한 일이었다.


손과 다리가 편하니 뇌도 여유가 생겼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참으로 팔딱거리는 삶을 살았던 나를 떠올려보았다. 남편이 죽고 우울해져 있던 나 자신에게 연민이 생겨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갖 잡생각에 빠져 몇 시간을 보냈다. 역시 몸이 편하면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나 보다. 나는 아직 몸을 좀 더 힘들게 굴려야 할 때임이 분명했다.


어느덧 기다리고 기다리던 5시 30분.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알바들은 작업에서 손을 뗐다. 하던 것은 마무리하고자 했던 내 모습이  만큼 다들 작업을 멈췄다.


장기간이나 직원으로 근무하고 싶으신 분은 저나 김한수 씨한테 얘기하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반장의 마무리 인사에 다들 검은 패딩을 찾아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공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컴컴한 공장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점심을 함께 했던 30대 후반 여자 둘이 나에게 물어왔다.


“다음에 또 하실 거예요?”   

“글쎄요.”


반장에게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에 쉬이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녀들도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 하루 함께 일했지만, 동료애를 잠시 느끼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쉬게 해주는 버스가 참으로 고마웠다. 일터와 집 사이에 잠시라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이 공간의 고마움을 미처 예전에는 몰랐는데 말이다. 하루 사이에 깨달은 바가 컸다.     


몸이 천근만근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파김치가 된 몸뚱이를 질질 끌고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서 그래도 웃음소리가 들려 다행이었다. 동생 수진이가 와 있었다.


“늦었네.”


반기는 말투가 돈을 벌고 온 가장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확대해석했다. 집에서도 인정받은 느낌에 피로감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아이가 공부하고 있더라도 밖으로 나와 인사하게끔 시켰다. 그 인사는 식구들이 먹고 살 생활비를 벌어온 가장을 향한 예우였다. 근데 지금 서준이는 내게 눈인사는커녕 아무 말도 없이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씁쓸한 마음이 들 무렵 동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서준이는 먼저 밥 먹였어. 언니는 안 먹었지?”

“어.”


수진이가 급하게 된장찌개와 달걀 프라이를 해서 저녁밥을 차려주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한 공장 알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코로나 검사 키트를 얼마나 포장했는지, 그 작업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를 식사 예절도 잊을 만큼 흥분해서 얘기했다.


“예전 실력 안 죽었네.”

“예전 실력?”


“그걸 잊은 거야?”

“뭐지?”


“뇌는 잊어도 손은 못 잊지.”

“아~ 그러네.”


"훗. 생각났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네."


그제야 떠올랐다. 나는 참 손이 빠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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