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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Aug 31. 2024

#6. 사회와의 단절을 끊어내다

*소설입니다.


아침 7시다. 팬데믹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필수템인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색 패딩으로 찬바람에 맞서며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묵직하고 설레는 발걸음이다.


아직 어둑한데 주말 아침부터 다들 어디로 향하는 걸까? 버스를 탔을 뿐인데 이제야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다. 버스 종착역에 내려 목적지로 향했다.


낯선 풍경이다. 집들도 없고 불빛도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적막한 산 냄새는 아니다.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저기요.”

“악!”


정녕 놀랐다. 뒤돌아보니 여자였다. 그나마 안도했다.


“미안해요. 놀라셨나 봐요.”

“아니에요. 휴.”

“혹시 킵스텍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 해서요.”  


둘은 목적지가 같았다.


우리는 공장들만 즐비한 건물들 사이에서 이내 킵스텍을 찾을 수 있었다. 검은 패딩의 일개미 군단이 향하는 곳이 거기임을 직감했다. 주변 공장들은 가동을 멈췄는지 조용했다. 심지어 편의점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킵스텍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김한수 씨라고 추정되는 젊은이가 등장했다. 그는 서류 명단을 들고 와 인적 사항, 계좌번호를 쓰라고 했고 주민등록등본을 거둬갔다. 그런 후, 남자와 여자로 따로 줄을 세운 후 공장 내부로 따라오라고 하더니 이내 떠났다.


이미 작업이 한창인 공장 직원들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구원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보아하니 여자는 포장이고 남자는 물류가 오늘의 할 일로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공장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도 어리둥절한 모양새여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반장은 알바들을 마주 보게 두 줄로 세웠다. 그러고는 중간에 알 박기식으로 노련해 보이는 직원을 배치했다.


반장이 입을 열자 나는 그녀가 조선족임을 눈치챘다. 편견이 확 사라졌다. 조선족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한국인 사장에만 익숙했지, 조선족 리더의 작업 지시를 받는 한국인 알바들을 상상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시작되었다. 작업물이 기다란 테이블 위에 모습을 보이자, 내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되는 장사는 마스크 장사, 코로나 검사 키트 장사, 코로나 백신 장사였을 것이다. 그중 코로나 검사 키트 포장 일에 내가 투입된 것이었다. 일손이 부족하고 공장을 온전히 가동해도 생산량을 맞추기 힘들다는 반장의 말이 이해되었다. 허나, 코로나 검사 키트 포장하러 왔다가 알바 밀집도로 인해 코로나에 걸릴 것만 같았다.


시계가 8시 30분을 가리키자마자 인간 컨베이어 벨트에 불이 들어왔다. 굿모닝 인사도 없었다. 모닝커피도 없었다. 그냥 바로 업무가 시작되었다. 작업 지시 및 시범은 1분 안에 끝났다. 바로 실전이었다. 허둥지둥하면 내 자리에 작업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내 뒷사람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인간 컨베이어 벨트가 버벅거리면 바로 손이 빠른 직원들이 투입되었다. 반장은 병목현상이 생기는 곳이 어딘지를 매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막힘이 없도록 적재적소에 직원들을 꽂아 넣었다. 판단은 예리했고 실행은 거침없었다.  


테이블 주위로 몇십 명이나 있었지만 숨소리만 들렸다. 말 한마디 할 여유가 없었다. 눈앞의 것을 처리해서 옆으로 넘겨야 했다. 기계 같은 직원들이 5개를 포장할 때 알바들은 겨우 3개를 하는 정도였다. 한 시간을 꼬박 서서 미친 속도에 몸을 맡기니 탈진할 지경이었다.


쫓기는 환경에서 단순 무한 반복업무를 하다 보니 잡생각이 사라졌다. 생각자체가 사치다. 뇌는 오로지 손에게만 명령을 내렸다.


'더 빨리. 더 빨리.'


딴 길로 생각이 새어나갈 수 없다. 편안히 여유를 즐기던 그동안의 손이 너무 놀라 후들거리고 그 여파로 다리도 제대로 제 역할을 하기 힘들 즈음, 꿀맛 같은 5분의 휴식이 주어졌다. 알바들은 모두 지쳐 철퍼덕 바닥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믹스커피. 제발.’


벽에 기대어 흔하디 흔한 믹스커피 한잔을 간절히 원했다. 한잔 후루룩 마시고 종이컵을 구겨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흔한 것조차 알바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본인 가방에서 인스턴트커피 스틱 한 봉지를 꺼내서 정수기 앞으로 갔다. 탕비실 따위는 없는 듯 보였다. 천 원을 주고서라도 한 모금 얻어먹고 싶었지만, 물 한 컵으로 당이 채워지길 바랐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수혈받은 직원들이 다시 라텍스 장갑을 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일당을 받아야 하는 알바들은 일어나야 했다. 또 서서 그렇게 인간 컨베이어 벨트를 돌렸다.


작업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나가니 속도가 붙었다. 맞은편 테이블을 쳐다볼 여유가 생겼다. 서서 미친 듯이 일하는 우리 쪽 테이블과 달리 반대편 테이블 사람들은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밀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저울에 계량하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 부럽다.’


그동안 소파에 앉아 쉬었던, 침대에 누워 있었던 숱한 날들에 감사함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3시간 내리 서 있었더니 정말 앉고 싶었다. 무척추동물처럼 누워서 지내는 날이 많았던 나는 갑자기 척추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셈이 빠른 알바 중 일부는 일부러 천천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5시 30분까지만 버티면 되지 굳이 작업량을 늘릴 필요는 없다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반장은 그런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의 첫 순서나 마지막 순서로 자리를 이동시켰다.


2인 3각 달리기에서 나로 인해 전체가 늦어지지 않길 바라며 협심했던 학창 시절과는 달랐다. 오늘 처음 만난 20인이 본인의 목표가 아닌 공장의 목표 수량 달성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달리기를 바라는 건 반장의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느려지는 건 마음이 불편한 일이었기에 나는 아주 성실하고 묵묵하게 속도를 높이려 애썼다.


꿈에 그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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