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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May 09. 2024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1981년 아일랜드 시골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 동안 찬척 집에 맡겨지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 다섯째 아이을 임신한 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과 밭일까지 신경 쓰느라 지친 어머니,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던 주인공 소녀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만 아이가 없는 먼 친척 집에 맡겨지면서 처음으로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는다. 아주 살갑게 대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첫날 밤 침대에 오줌을 싸도 모르는 척 습한 방에 재운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아주머니나 바깥일을 하고 들어와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를 같이 하고 아이에게 매일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며 시간을 재주는 아저씨는 떨어진 루바브 줄기 하나 주울 줄 모르는 아버지와 무척 다르다. 아이는 킨셀라 부부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제대로 대답하는 법을 배우고 책 읽는 법도 배우며 따뜻한 계절을 보낸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단식 투쟁 소식을 통해 얼핏 알 수 있듯이 1981년의 아일랜드는 무척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찬란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킨셀라 부부의 집에 있던 남자애 옷만 입다가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서 제대로 된 옷을 산 날, 아이는 동네 초상집에 갔다가 킨셀라 부부의 비밀스러운 아픔을 알게 된다. 곧이어 건강한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찬란한 여름은 끝난다.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갔던 아름다운 밤에 킨셀라 아저씨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킨셀라 씨가 이웃에게 주인공 소녀에 대해서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는 아이라고 칭찬하거나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전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생각 등,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클레이 키건 소설 자체에 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함축적이고 여백이 많은 글로 분위기나 감정을 오히려 정확하게 전달하는 클레이 키건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며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 암시에서 그치는 이 소설의 아름 다움은 맨 마직막 장면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의 말은 뒤가 보이지 않는 아저씨에게 자기 아빠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 처럼 아름답다.


https://youtu.be/0LT_NeHia6I

말없는 소녀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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