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에세이
역사 속의 숱한 성공과 화려한 유산보다 닉슨의 실패와 몰락은 더 강력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 반면 실패는 악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패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직면한 실패가 자연스런 결과로서 실패인지, 혹은 의도에 의한 음모와 배신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나라는 인간의 형태는 눈앞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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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는 늘 자조와 비관이기 마련이다. 어느덧 나는 완전무결한 피해자라는 생각 안에 안도하며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구하기 위한 자력구제의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하든 늘 옳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 은 그렇게 타락한다. 니체가 말한 심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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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았다.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빨리 기를 수 있었다. 피해의식이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나는 닉슨을 떠올린다. 닉슨의 노력과 선량함을 떠올린다. 그런 훌륭한 가능성을 가졌던 사람을 완전히 망처버린 피해의식에 대해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경계한다.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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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걸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