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 w/Trevari

by 야옹이

실용서를 제외한 소설, 문학, 에세이 장르를 읽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던 나는 이 산문집이 가볍게 읽기가 좋아서 아침 출근길을 통해 완독했다.


한권의 독서가 주는 여러가지 효용이 있겠지만, 정신없이 일만하다가 어느덧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있는 나에게 작가가 속삭이듯 전해주는 일상의 기록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고즈넉한 까페에 앉아 이야기 해주는 삶의 에피소드 같았다. 불필요한 수사나, 현학적인 주제는 배제하고, 자신의 추억과 단상으로 지나간 시간들을 담백하게 이야기 할 때 마치 나도 거기 있었던 것 같은 몰입감을 주어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나를 부른 이름


손칼국수 집 딸로 태어나 좁쌀 여드름이 난 모습으로 듀스의 여름안에서를 흥얼거리는 어린시절 모습은 동시대를 살았던 나의 경험과 너무나 닮았다. 무더위 속에 계약한 집에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작가의 상상력, 시상식날 한껏 멋을 부리고 절뚝거리며 수상을 하던 모습. 시골 동네 어른들의 순박한 리액션, 문학상 수상 현수막에 회차 오타 등의 소소한 기억들은 한층 더 시간의 의미를 완성해 주는 양념같은 이야기이다.


한 여름밤의 라디오


들국화 노래를 들으며 1년 내내 크리스마스이브를 맞고 있는 즐거운 사람들과, 축제의 변두리에서 맨손으로 이들의 즐거움을 떠받치고 있을 많은 이들, 도시의 안녕을 떠올리는 작가의 배려심, 이타적인 마음, 따뜻한 시선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연말에 뭔가 즐겁게 축제를 즐기는 그룹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즐거움을 떠받치는 역할에 있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 속으로 흘리는 알 수 없는 눈물이라고 할까? 눈물은 너무 간것 같고 그냥 외로음 정도는 다들 있을것이다.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기에..


작가님은 이런 작은것들에 대한 연민과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싸구려 동정이 아닌, 진심에서 나오는 이해와 공감은, 각박한 세상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인생의 지리멸렬한 터널을 통과중인 우리에게 멀리서 점등하는 등대의 불빛 같이 희망과 위로가 된다.




여름의 속셈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안에 살다오는 것"


청춘의 문장들은, 자신이 읽은 문장이 아닌 산 문장. 누군가 오래 쓴 문장을 알아보고 그 문장의 바깥을 짐작한다. 그리고 그 둘레에 자기 이야기를 입혀 설명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때,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때 만나게 된다."


이 문장이 깊은 공감갔던 이유는 예전에 어머니께서 내 나이 스물 일곱이 되었을때


“내가 지금 딱 아들 나이 때 너를 가졌었던거네..”


라고 지나가는 말로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 나이에 나를 낳으셨던 어머니는 어떤 감정이셨을까?

기쁨이 컸을까? 번듯하게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 겠다는 부담이 더 컸을까?

세월이 지나고, 지금의 나를 낳으셨을 때와 같은 나이에 다 커버린 자식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셨을까.?


이러한 물음이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감정이 다시 올라오면서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정말 단순한 말들을 어렵게 이해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참으로 그러하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


“꽃잎이 떨어진다. 봄이 깎인다.”


“부사는 말의 약점을 떠올리며 종종보다 잘 번식하기 위해 보다 불완전해지기로 결심한 어떤 종처럼 보인다”


모두가 똑같이 보고 경험할 수 있지만..

그 세계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렌즈를 깊게 드리우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삶의 고랑사이에서 의미를 찾고 밀도있게 음미하는 삶은 확실히 보다 풍성할 것이다.


이 정도의 감상을 문장으로 뱉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글을 읽고 써봐야 할까?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약한 접착력을 가진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듯이."


약한 접착력을 가진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듯이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끊임 없는 노력과 편견없는 시각, 이를 통해 좀 더 교류가 풍성해지고,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관계 확장 될 것 같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

나도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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