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끝에. w/Trevari
어쩌면,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끝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나는 정확히 이 책에 두 번 낚였다.
하나는 예쁜 표지였는데, 이상한 나라로 간 엘리스와 토끼가 튀어 나올 듯한 분홍색 파스텔 톤의 그림이라 뭔가 서정적으로 그린 미래 세계 배경의 감성 소설일 줄 알았다.
또 하나는 원피스 입은 20대 여성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그냥 상상력이 풍부한 공대녀인가보다”, "젊은 여성 작가 활용해서 이제 아이돌 컨셉트 넣는구나."...
책을 다 읽었을 때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닌
배경은 과학이 발달한 미래 과학 도시이지만,
2019년을 사는 우리 삶에서도 벌어지는 차별, 미혼모, 성공주의, 주류 ,비주류와 같은
사회적 담론과 이에 대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맞다 그녀는 20대 여학생이다."
그런데 풍부한 상상력은 최소 박사후 과정까지 밟고 세상을 깊게 살아 본 아이도 있고, 인생경험도 풍부한 어떤 중년여성을 떠올리게 된다.
단순히 과학적 소재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 글이 돋보이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우리 일상의 감정들을 미래사회에 투영 했기에 독특하고 새로웠다.
예를들어 감성의 물성 편에서 나오는 물체는 슬라임, ASMR 등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정신적 결핍, 위로에 대한 열망을 그려 냈다고 생각한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편에서는 우주를 탐구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을 준비하던 주인공의 이모가 실제 프로젝트 당일에는 이탈하여 바다속으로 도망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꼈을 것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 에서 세상 물욕 명예를 쫓다가 자연에 귀의 하여 해뜨면 부지런히 씨부리고, 약초를 캐먹고 밤이 되면, 모닥불 피우고 기타를 연주하는 자연인의 모습 같았다.
나는 넷플릭스 마니아이다. 그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해당하는 SF 물은 많은 통찰을 주는데 특히 미래 과학이 발달한 사회에서 인간소외를 그린 블랙미러,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를 떠돌아 다니며 정착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며 외계생명체와 우정을 나누고 가족을 지키는 윌 위험해 등은 다소 진지한 SF물의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빠르게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들이다.
그 중 돌아올게(Be Right Back) 라는 작품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관내소실의 ‘마인드’와 비슷한 개념으로 서로 너무 사랑했지만 남편을 사별한 한 여성이 생전 남편 데이터가 모두 축적된 제품과 사랑에 빠지면서 겪게되는 혼란들..처음에는 단순히 AI음성 대화처럼 단순히 정신적 메소드를 통한 대화에서 시작하여, 단백질 실리콘 신체에 데이터를 이식 한 후 정신적 육체적 만족까지 채우지만, 원래 남편과 다르게 항상 자상하기만 남편의 복제물이 되려 무섭게 느껴져... 결국 가상 인격은 실제 살아있는 본래 인간의 감성 및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주요 시놉시스이다.
낙태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대두될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언제부터 나의 감정과 DNA를 공유하는 생명으로 치는가, 자궁에서 착상이 일어나서 아기의 형체를 가지면 그때부터 인가? 인간(더 나아가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 할 때,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시작점/종료점을 지정할 수 있는가 안락사에서도 그렇다. 정상적인 호흡을 하고 있지만, 신체적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신체부자유의 환우들은 생명이 아닌가?
배경은 미래사회지만, 담고 있는 주제들은 하나같이 오늘날 벌어지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이 행간에서 깊이 느껴졌다.
"마을에서 그들이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재 하지 않았던 것 처럼"
"그림을 그리는데에 삶의 모든시간을 쏟기에는 루이의 수명은 너무 짧았기에 그림은 일생을 다 바칠 정도로 의미가 있던 것 처럼"
"그 할머니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처럼"
인간 본연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면서 타자와 나의 관계,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의미,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철학을 정립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것. 그것이 가장 멋지고 중요하고 훌륭한 삶이 아닐까?
작가는 미래공상과학소설이라는 프레임 아래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일상의 가치를 찾으라는 화두를 던졌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행복에 이르는 길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생각, 사고, 철학, 비전을 실현하는 것만이 진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그렇기에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도착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