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저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미술관 전시 관람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겐지라는 사람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수단이 미술관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시라토리 씨뿐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지금의 자신'을 확인하고 있다. 일기를 쓰거나 SNS에 사진을 올리거나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갑자기 시라토리 씨가 사진을 찍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역시 '지금'이라는 시간에 책갈피를 끼워넣은 것이다. 볼탕스키의 전시회를 감상하고 간 뒤풀이 자리에서 시라토리 씨는 느닷없이 "과거도 미래도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지금만으로 충분해." 라고 했다. 그 말은 괜히 폼 잡으려는 게 아니라 그가 거의 진심으로 확실한 건 '지금' 여기 있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철학자는 세계가 겨우 5분 전에 만들어졌다는 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되었고 시간은 항상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철석같이 믿는 나도 당신도 알고 보면 끝없이 반복되는 5분간의 삶을 사는 것일 수 있다. 아니, 그런건 SF소설에나 나오는 예기라고? 응,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터무니없게 들리는 이 설을 이론으로 무너뜨리기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 외에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뚱딴지 같은 소리였는데, 간단히 말해 과거의 사건에는 나중에 의미가 부여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지도 알 것도 같다. 괴로웠던 일이 시간이 흐르며 좋은 추억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때 그 일이 있었기 떄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나중에 덧붙인 해석이 과거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그 순간 우리의 인식은 빙글 회전하고,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기 시작한다.
방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덧없을 뿐이다.
허구와 현실, 미래와 과거는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외려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았다고 믿는 것, 일어났다고 믿는 과거의 기억은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할까.
나 자신의 기억 역시...
우연히 집어들고 단숨에 읽은 이 책은 앞이 보이지 않는 20년차 프로 전시 관람러와 동행하며 우리가 가진 인식과 예술에 대한 관점, 가치관 등 많은 부분에 대한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을 공유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여주는 예술과 삶의 자세를 배워보자. 띵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