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by 야옹이

너는 노란색 비닐 숄더배게 굽 낮은 빨간색 샌들을 대충 쑤셔넣고 모래톱에서 모래톱으로, 나보다 조금 앞서 걸어갔다. 젖은 종아리에 젖은 풀잎이 달라붙어 근사한 초록색 구두점을 만들었다.


너는 여름풀 위에 주저앉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은 새 두마리가 상공을 나란히 재빠르게 가로지른다. 네 옆에 앉자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을 촘촘히 엮어가는 것 같다.


그런 시간에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름이 없다. 열일곱 살과 열여섯 살의 여름 해질녘, 강가 풀밭 위의 선명한 기억 -오직 그것이 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 하나둘 별이 반짝일 테지만, 별에도 이름은 없다.


열일곱 살이고, 사랑에 빠져 있고, 그날은 5월의 청명한 일요일이니 당연히 내게 망설임 같은 건 없다.

너는 스커트 무릎 위에 놓인 작은 흰색 손수건을 집어들어 다시 한번 눈가를 닦는다. 새로 솟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게 보인다. 희미하게 눈물 냄새가 난다.


"네 것이 되고 싶어."


너는 속삭이듯 말한다.


"뭐든지 전부 네 것이 되고 싶어."


숨이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가슴속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급한 용건인지 주먹을 꽉 쥐고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소리가 텅 빈 방에 크고 또렷하게 울린다. 심장이 목까지 치고 올라온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 그것을 어떻게든 제자리로 되돌리려 애쓴다.




하루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니라, 청명한 일러스트로 가득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표현이 담백하면서도 흡입력 있다. 도쿄에서 재즈까페 운영하면서 책도 쓸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심지어 달리기에도 진심인 것으로로 유명하다.), 솜털이 아직 남아 있는 풋사랑이야기 부터, 농염하고 질퍽한 섹스 이야기까지. 이런 작가를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이번 소설에서는 10대 소년에서 시간이 흘러, 40대 중반이 된 주인공이 나오는데, 얼마전 읽었던 스토너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중년 남성의 고뇌라는 소재는 평생 욹어먹어도 소진되지 않을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단물 다빠진 질긴 육포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짧은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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