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사람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 박상수

by 야옹이

그곳을 나오며 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절대 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떠나면 모든 것이 실패인 걸까, 추억도 기대도 마음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너, 너는 가진게 별로 없지만 아무것도 안 가진 것을 끝내 인정받아야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었다 네가 너를 더 바닥으로 끌어 내려야 머리를 쓰다듬는 사람이 편리할 거라고 믿었다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나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나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채는 사람은 언제나 더 약한 사람,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한 줌의 사람, 너는 한 줌의 사람으로서 간청한다 너는 한 줌의 사람으로서 쓸개를 내놓고 애원한다 너는 한 줌의 사람으로서 네가 얼마나 불행한 한 줌인지 증명하려다가 알게 된다 네가 마침내 뼛속까지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두가 너를 부른다 안된 사람, 참으로 안된 사람, 이제 아무도 네가 머무는 방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무도 네가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하루가 짧고, 너의 일그러진 표정을 잠깐 생각했다가 이내 내일 아침의 메뉴를 떠올릴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슬픔이 있단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목소리가 너를 위로한다 너는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주문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외우고 있으면 평화가 찾아오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너는 웃는다 너는 바보처럼 웃는다 너는 다 알겠다는 듯이 웃는다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지옥,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실패, 너는 실패의 지옥에서도 지키려고 애를 쓴다 부서져도 전부 부서지지는 않으려고 어딘가 안쓰럽게 애를 쓴다 다시 붙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끝까지 완전하게 웃지는 않고 버틴다 어느날 네가 머무는 방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어떻게 오셨지요? 반갑습니다 저는 한 줌도 안되는 사람입니다만, 네가 머무는 방에 한 명이 더 추가된다 제1의 한 줌도 안 되는 사람과 제2의 한 줌도 안되는 사람, 그리고 제3과 또 제4의 사람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되비춰 본다 눈이 마주치면 금세 다른 곳을 바라본다 햇빛이 들지 않는 환기창을 바라보며 너는 지키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로 끝나지 않는 끝을, 오직 그렇게만 끝나지 않는 마지막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