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소녀 스킬엔 쿨타임이 필요해!

진짜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고,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

by 강하라




택배 상자를 열자마자 당근마켓에 반값으로 올려야 하는 옷들. 단 한 번 입어도 사진을 찍고 나면 곧장 질려버리는 옷들. 옷장을 열어보면 그런 것들로 가득한 대학생 시절,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화장품을 부수고, 치마와 원피스를 죄다 내버렸다. 그걸 입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다. 예쁜 아이, 인기가 많은 아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 나는 매번 어딘가의 틀에 갇혀있었고, 그때의 내가 받은 사랑은 전부 ‘조건부 사랑’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봤다. 아주아주 꼬인 마음으로, 아주아주 배배 꼬여서. 아닌 척 환하게 웃었다. 나에게는 ‘사랑만 받고 자란 티’가 난다고 했다. 자신감과 자부심은 매번 하늘을 찔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은 빈약했다.


나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사랑을 시험하려 들었다.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채우면 채울 수록 빠르게 흘러넘치는 것처럼 친구들이 내 이기적인 변덕을 받아주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또래 집단에서 ‘동경’이나 ‘소유욕’ 그 비스름한 것 때문일 거라 단정 지었다.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나를 아낌 없이 지지하며 키우는 것이 일종의 투자라고 믿었다. 그들의 기대치에 충족하지 않으면 언젠가 나는 버려질 것만 같았다.

매번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애처럼,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외롭고 공허했다. 누구로부터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는 짓도 반복했다. 더 예뻐지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거나, 전 재산을 모아 피부과나 경락 샵에 바치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다. 허벅지 살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잔인한 상상도 서슴없이 했다.


나는 나를 이해하는 척하며,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해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런 불안과 불쾌함은 상대방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의 정반대 편으로 부추겼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어딘가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애써 만나자는 말을 거절하고 나서도 미움받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면서도 내가 그를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닐지 생각했고,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찾아 읽으면서 내가 그런 부류가 아닌지 끝없이 검열했다.


이론적으로는 나에게 유해하다는 것을 알지만, 겉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칭찬을 들으면서 ‘여전히 내가 가치가 있구나’ 안심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멋대로 나를 판단하고 저 위로 띄워줄 때마다 내가 그들을 속인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금수저’ 소리를 들으면 왜 우리 집은 그렇게 부자이지 못할지 생각했고, ‘아이돌 같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내가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다 납득했던 것들도, 가치관 때문에 자의로 벗어났던 환경도,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그런 칭찬들 역시 거리낌 없이 내 것이었을 텐데… 나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혐오하는 짓은 습관이 되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상세하게 기재된 내 감정의 영수증을 읽지 못했고.


온통 남의 것이었던 나의 스무살, 그다음의 나는 비로소 ‘한 살’이 되었다. 칭찬에 춤을 추는 고래 vs 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금붕어 되기. 여기서 후자를 선택하는 미친 사람이 있다고? 싶지만 스물 한살의 나는 내가 금붕어라도 나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다운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구성하던 것들, 내가 자부심을 가지던 것들, 인생을 편하게 해준 것들, 그것들은 벗어난 나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외적인 포장 없이도 사랑받고 싶다고 외치는 스무살의 치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잠깐의 방황이었다 치고, 금방 남들처럼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도전은 꽤 길게 이어졌다.


옷차림부터 처음엔 정말 '나답게' 입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답게’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기존의 반대로 행하면 대충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싹둑 자르고, 펑퍼짐하고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고,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을 하고, 목 위로 헤드폰을 얹었다. 햇빛이 강렬한 여름이면 선캡을 눌러썼다. 보통 타이다이 나염 티셔츠 같은 관념적 엔프피룩을 입거나, 무신사 골드 회원다운 스트릿 패션을 구사했다. 격식을 차릴 땐 셔츠에 버뮤다 팬츠 같은 톰보이 차림새가 제격이었다. 전부 성적 대상화의 틀에서 벗어난, 어딘가 소년 같은, 그러니까 이 역시 남다운 옷이긴 했다.


탈코르셋은 세상이 말하듯 전혀 불편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마음껏 편안하고, 거침없이 당당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꾸밈이 빠진 나를 더 사랑해 줬고, 나는 “이런 모습 또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경험들은 내 안의 구멍 난 틈을 조금씩 메워줬다. 마치 ‘아기’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기분. 어쩌면 이것이 인생 그래프에서 바닥을 칠 때의 안정감이나 누군가의 기대가 사라졌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비슷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 이후로 내 인생은 한 차원 위로 업그레이드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은 잔뜩 꾸미고 왔는데, 운동복 바람에 맨얼굴이었던 나를 보면, 정말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또한 케이팝 업계에서 이곳저곳 데려가 나를 소개해 주고 싶었던 B 언니는, 그런 내 모습을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남자 동료들은 후드 뒤집어쓰고 밤새 술 마시면 그게 비즈니스가 되는데, 여자들은 그러면 안 되나 싶었지만, 언니가 말한 게 무엇인지는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옆자리에 놓이는 전형적인 ‘여자’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상상하게 된다. 그때 나의 고민을 들은 남자 선배 프로듀서는 ‘누가 그래? 일만 잘하면 됐지.”라고 말해줬다. 그 말은 내게 위로가 되었지만, 반대로 거대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런 외부적인 요소들에 점점 신경을 덜 쓰게 됐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기대하는 외형에 돈을 쓰기보다, 내가 매일 마주치는 것들 집, 방, 침대, 컵, 그릇, 사소하지만 가장 일상적인 것들에 돈을 투자했다. 초록색이나 파란색 스트라이프 디자인의 뽀송한 잠옷을 입고, 호텔 침구 속에서 뒹굴뒹굴하는 하루 끝은 너무나 행복했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싶었고, 이렇게 평생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내가 한곳에 오래 고여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건 나 스스로 편안한 위치에 나를 놓아뒀기 때문이었다. 영혼이 고이다 못해 썩지 않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섰고, 치앙마이에서 나는 제3번째 나를 발견하게 된다.


2025년이 된 나는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독립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도시는 치앙마이였다. 나는 새로운 삶을 마주하러, 누군가는 휴일을 아껴 마음껏 즐기러 가는 곳. 재즈바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나는 유수 풀에 온 듯 튜브를 끼고 둥둥 흘러가다가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국적도 다양했다. 처음엔 한국인 일행들이 나를 보고 신기한 듯 말을 걸어 시작된 인연이었다면, 친구의 친구, 거주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친구, 태국, 중국, 일본, 런던, 프랑스, 호주, 이렇게 세계적으로 친구 지도가 뻗어나갔다. 그중에는 우연히 동선이 열 번 겹쳐 마음을 열게 된 사람도 있었고, 단번에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된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라는 변수의 연속이었다. 캐리어에 짐을 쌀 때만 해도 한국에서처럼 내가 이렇게 사람을 많이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MBTI 불변의 E라는 내 캐릭터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대충 입고 나가서 혼자 밥 먹고, 운동하고, 책 읽다 와야지, 하는 상상 속에서 요가 레깅스와 운동복만 담았는데… 막상 일상을 살아보니 운동복은 그냥 돌려 입으면 됐고, 정작 내가 필요한 건 외출복이었다.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는 날이 오면 그때와 같은 옷이 아닐까 하는 고민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런 게 거기서 유난히 많이 마주친 언니들이 있었는데, 그 언니들과 마주치는 날마다 내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민망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날도 있었다. "아, 옷 좀 주라고!" 면박을 듣기 전에 먼저 소리치는 날도 있었다. 언니들은 “오늘도 똑같은 옷이네!” 하면서 깔깔깔 웃었다. 검은색 스컬프트 쉬어 티. 그건 내가 가져간 옷 중에 유일하게 외출복 같은 옷이었다. 나는 한국에 가면 우선 이것부터 쓰레기통에 갖다버려야지 생각했다. 이상하게 이 옷을 입는 날이면 부끄러운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날처럼…


하루는 와리 온 센 이라는 예쁜 노천 온천에 가는 날이었다. 치앙마이 여성 단톡방에서 동행을 모집한다기에 “이참에 가보지, 뭐.”하고 함께하기로 했다. 머릿속엔 오직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는 생각뿐이었다. 호화로운 생각이라면 포카리스웨트 팔았으면 좋겠다… 과일 잔뜩 사 가야지… 정도? 회색 운동복 바지와 검은색 쉬어 티셔츠. 나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까 매번 입던 그 차림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 사람들,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여고 수학여행에 온 것 같다며 방방 뛰었다. 차 안에선 쉴 새 없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고, 처음 계획과 다르게 여러 코스를 추가하게 되었다. 세 사람과 통성명을 하는데 한명은 같은 여대를 나온 동창이었고, 한명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동갑 친구, 한명은 전에도 언급된 미래의 절친 구름 언니였다. 얼떨결에 그들에게 인스타와 신상을 까게 되었는데, 한 친구는 내가 작업한 곡의 엄청난 팬이었다. “그 노래를 누가 몰라!” 하면서 나도 기억나지 않는 가사를 줄줄이 따라 불렀다.


인스타 감성으로 유명한 카페와 거대한 유적지, 큰 나무들, 흘러내리는 빛이 교차하는 관광지들에서 우리는 DSLR과 아이폰을 들고 서로를 찍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은 사진을 찍기로 작정하고 왔는지 공주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선글라스 같은 각종 소품이며 화장 도구까지 챙겨와 촬영에 임했다. 그들은 내게 “너 키 크고 마르고 얼굴도 예뻐서 모델 일 하는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응당 여자들끼리 만나면 그러하듯 칭찬의 폭죽을 쏘아댔다. 그러고는 선글라스를 내 손에 쥐어준 뒤, 카메라를 양손에 들고, 무릎을 굽히고, 거의 눕다시피 하며 돌잔치처럼 열심히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푸른 나무, 분홍빛 벽, 바람 따라 찰랑이는 커튼 사이에서 각자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지고 있을 때, 뷰파인더 속 내 사진을 보면 자연과 어우러지지 못한 채 혼자만 칙칙하고 거무튀튀했다. 그들은 너무 아쉽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치마라도 빌려줄까?” 하면서 레이스 치마를 벗어 건넸다. 그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나만 이토록 무채색이지?’ 누구의 잘못도 없는데 괜히 원망하고 싶어지는 상황. 무심코 검은색 옷 입은 게 이렇게 서러울 일인가. 이건 마치 핼러윈 파티에서 모두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 나만 감자튀김이나 미니언즈의 코스튬을복장을 하고 뒤뚱뒤뚱 걸어가 초인종을 누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사진 안 찍어도 돼!” 손사래를 쳐도 “너무 예쁘다!” 하며 더 열심히 나를 찍어주는 모습에 민망해졌고, 좋은 모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그리고 문득 아쉬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할 걸. '꾸밈 노동을 완전히 내려놓은 줄 알았지만, 나는 이렇게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며칠 후엔 샴발라 페스티벌에 갔다. 샴발라 페스티벌은 각국의 히피들이 매년 모여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고, 음악 축제를 즐기는 치앙라이의 페스티벌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사는 히피를 꿈꿨고, 진짜 히피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히피는 자유로워 보이는 외양이 아니라 정말 자유로운 마음가짐에 가까웠다.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하며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채식 생활을 하고, 만물에 감사하고, 크리스털을 사랑하며, 요가를 즐기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짜 히피가 아니었고, 내가 정말 나답게 입고 가면 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히피들과 어울릴 수 있게 마야 몰에서 '히피 느낌 나는' 옷을 사고, 형형색색인 ‘히피 느낌의’ 장신구를 걸쳤다.


크리스털 볼에 자석이라도 달린 듯 온 몸으로 이리저리 굴리는 사람과 칼 춤을 추는 사람, 흰색 긴 수염과 나무 아래 기타 치는 사람, 계곡에 풍덩 뛰어드는 낡은 천을 걸친 사람.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크리스털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람, 양 팔과 다리를 느낌 가는 대로 놔두는 서클… 나는 무리 속에서 춤을 추면서도, 그들과 돗자리 안에서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들과 나의 다름을 찾고 있었다. 와… 이 사람들은 진짜다… 나는 가짜고… 이들과 어우러지며 행복할 수록 마음 한구석에선 그런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다. 누가 봐도 이들은 히피로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반면 하루치의 히피력뿐인 나는 역시 히피 무리에 들어가기에도 애매한 사람이었다. 자본주의의 노예답게 나는 머리 속 한 구석에서 저 거적때기 같아 보이는 옷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비쌀지 생각했다. (실제로도 엄청 비쌌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내가 히피 페스티벌에서 여러 관심을 받았던 건 히피 스타일의 외양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난 사람들이 내게 단번에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이유가 어쩌면 ‘꾸밈’ 때문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는 정도의 TPO와 과도하게 정상성에 맞추기 위한 꾸밈의 경계, 그리고 사랑받으려는 나의 본능적인 몸부림” 그 사이 어디쯤이 내 위치일까 고민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기에 화장과 옷차림은 배우가 쓰는 배역이란 가면과 비슷한 것 같다. 제2의 페르소나. 바깥세상과 부딪히며 다치지 않도록 약한 자아를 보호해 주는 일종의 전투복. 나는 그 전투복을 입으면 조금 더 괜찮아진다. 그만큼 더 뻔뻔해지고 타인의 바다에 쉽게 쉽게 밀려 닿을 수 있다. 심지어는 거기서 받은 상처가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는 동시에 말끔히 사라질 것도 같다. 굉장한 매리트이지 않나? 하지만 거기서 받은 사랑 역시도 화장을 지우는 동시에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든다. 이것은 마법 소녀 스킬에 따른 부작용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묻게 되는 것이다. “네가 이 마법을 쓰는 이유는 뭐야?”


분명한 건 나는 꾸밀 수록 더욱 공허해질 것이다. 누군가 잔뜩 꾸며진 나를 좋아하게 될 때 그것을 그냥 납득하지 못하고 이유를 캐물을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도 조건부 사랑이라 번역하게 될 것이다. 때때로 나는 경멸하기도 할 것이다. 와글와글 사람들 틈에서 정신을 놓은 채로 내뱉는 말들,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광대 같은 내 모습을. 언젠가 삐- 소음이 달팽이관을 덮치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날이 오기도 할 것이다. 비행기에서 착륙할 때의 낙차 감처럼 도파민의 바닷속에서 헤엄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허무함 같은 들. 마치 연예인들이 투어를 끝내고 느끼는 것 같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의 고요함. 미래의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몽유병에 걸린 듯 또다시 바다로 지척지척 걸어가면 그 바다는 매몰차게 나를 뱉어낼 게 분명하다. 준비된 자에게 바다는 짜릿한 서핑의 장이 되지만, 어떤 장비도 없는 자에게 바다는 죽음으로 향하는 문이 되니까.


‘내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건 하루 끝에 그냥 침대에 눕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샤워하러 부스에 들어갈 때였다. 머리를 박박 감고, 샤워볼에 거품을 잔뜩 내어 온몸 구석구석 닦아줄 때 때었다. 그러니까 내가 고전 ‘박씨전’처럼 어느 한순간 조선 제일가는 미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없고, 아무리 박박 몸을 씻어내도 그저 나일 뿐이라는 것을 느낄 때였다. 그렇게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나인 걸 알게 될 때, 과거와 미래는 어디 가지 않고 여기에 있다는 것을 믿게 될 때, 그리고 그것을 긍정하게 될 때, 나는 내일 죽게 된대도 오늘 하루만큼은 최선으로 살고 싶어진다. 내일은 몰라도, 오늘 밤만큼은 오늘치의 일기를 쓰고 잠들고 싶어진다. 새벽 내 스크롤을 올리며 연예 기사에 눈이 붉어지라 온 관심을 쏟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를 바깥에 두고 책을 읽고 싶어진다. 아주 오래 미뤄뒀던,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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