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지 않으면 하루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어

청춘은 낭만과 불안의 동의어다.

by 강하라





우리 집은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집의 경제권을 쥔 사람이 열렬한 별다방 예찬론자이다. 아빠는 자칭 ‘아메리카노계의 큐레이터’다. 어느 카페를 가도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먹으려고 가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책 좀 사겠다고 용돈을 달라 하면, 그는 ”책은 도서관에서 읽는 거지"라는 말로 단칼에 거절했다. 책 이야기만 들어도 질색하는 아주 인색한 사람. 그래도 스타벅스 골드 카드는 지갑에 넣어주더라. 5만 원 미만이 되면 자동충전이 되는,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돼지저금통. 어딜 가나 스타벅스는 있으니까 길거리에서 방황하지는 말라는 큰 뜻일까? 분명 아니다. 그냥 아빠는 어릴 적 미제 물건을 사랑했던 것처럼, 명품의 로고가 대놓고 드러난 티셔츠를 입는 것처럼,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거였다.


나는 그런 스타벅스가 너무 싫었다. 싫어도 계속 가게 된다는 점에서 더 싫었다. 무슨 날만 되면 기프트콘이니 텀블러 쿠폰이니 무한 리스폰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자본주의의 늪.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블랙티 레모네이드 (변경된 닉네임: 블랙 티 레모네이드 피지오)도 단종되고, 슈크림라테도 안 나오는 판에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울며 신메뉴 먹기로 스타벅스에 갔다. 내 골드카드에 새겨진 문장은 ‘우리 가족 항상 행복해’였다. 아빠는 멋진 명언을 붙여주고 싶었는데 아마 할 말이 없으니까 엄마의 닉네임을 딴 것 같다. 항상 행복해. 확신하는 문장이 아니라 일종의 마법주문 같은 문장으로.


그러는 엄마는 이벤트의 왕이다. 온갖 기념되는 말은 다 가져다 붙인 새로운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그게 상술임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람이다. 시즌 음료, 별 더블 적립, VIP 특별 프리퀀시 같은 것들이 모두 엄마의 스케줄러에 체크되어 있다. 엄마는 이벤트로 받은 무료 음료 쿠폰을 쓰러 나를 데려가면서 자신이 얼마나 현명하고 똑 부러진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열변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를 쪼르륵 마신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맞다. 이 고물가 시대에 스타벅스는 가성비 있는 카페 중 하나였으니까. 얼마나 적은 돈으로, 얼마나 많은 별 쿠폰을 얻어내는가가 이 브랜드의 핵심이었다.


특히 다이어리나 조명 같은 굿즈를 주는 프리퀀시 이벤트가 열리는 연말에는 얼마나 손과 입이 바빠지는지 모른다. 가히 온 집안이 들썩인다. 매일 출석체크하듯 별다방에 드나들면서 과연 이번엔 얼마나 빠르게 미션을 돌파할 수 있을까, 몇 개의 사은품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챌린지를 한다. 집 창고에는 그렇게 입지도 않는 콜라보 우비와 돗자리와 레디백과 각종 인어 로고의 굿즈들이 쌓여있다. 환경 보호를 위한다는 텀블러는 다들 집에 몇 개씩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스타벅스에서 가끔 환경 보호 슬로건을 건 기념 굿즈들이 신제품으로 등장할 때마다 말문이 막히지만, 내가 말한다고 전 세계가 바뀔 것도 아니고, 이젠 다만 그 열풍을 환영하게 됐다. 이번 연도엔 무슨 다이어리를 사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하늘에서 초록빛 몰스킨 다이어리가 내 손에 똑떨어지니까. "다이어리를 뭐 살지"에 대해 쏟아부을 열정과 시간이 없는 나에겐 이득인 셈이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일기를 쓰는 사람은 나였다. 중학생 때는 스튜디오 1321에서 나오는 앨리스 하드커버 다이어리를 썼다. 표지엔 고전 동화 삽화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고, 왠지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앤틱 한 보물 상자를 꺼내면 들어있을 것같이 생겼다. 앨리스가 나무 앞에 서 있는 장면, 빨간 여왕을 만나러 가는 장면, 체셔 고양이와 조우하는 장면, 뭐 시리즈 별로 다 있었던 것 같다. 그땐 내가 평생 이 다이어리 시리즈만 쓰게 될 줄 알았다. 그만큼 감성 충만하고 예쁜 디자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그 안에 일기다운 일기는 아주 간혹 가다 있었다. 페이지를 촤르륵 넘기면 텅 빈 사이에 큼직큼직한 글씨들이 슬쩍 봐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일러주었다. 그만큼 그 일기장은 불태워 마땅했다. 그건 사춘기 시절 둘째 동생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잔뜩 응축되어있는 감정 쓰레기통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말만 가득했다. To. 먼 미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야, 너는 진짜 너무 착해서 탈이야. 나중에 구과거(가명: 둘째 동생 이름)가 네 앞에서 착한 척하면서 굽실대도, 절대! 용서하지 마. 알겠지?” “기억해. 걔는 악마다.” 혹은 “짜증 나” “죽여버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거대한 세 글자, 네 글자.


그러던 내가 정말 ‘일기다운 일기'를 쓰게 된 것은 2021년부터였다. 그 해 겨울, 나는 갑작스럽게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떠났다. 해가 바뀌는 순간,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를 짓고 싶었고, 마침 비슷한 뜻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어? 그 문장 하나가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사실 혹독한 서울의 겨울을 피하고 싶었던 거였다. 관념적 제주는 아주 따뜻하고 정겨운, 오렌지빛 햇살의 도시였으니까. 그보다 더 혹독한 제주의 겨울바람을 맞이하게 될 거란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청춘과 낭만뽕이 차오른 우리에게 고난과 역경은 에피소드가 될 뿐이었다. 계획도 차도 하나 없이 출발한,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하는 얼레벌레 여행.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주의 왼쪽을 반 바퀴 돌고 온 제주의 시간은 얼레벌레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지켜야지, 지켜야지" 말만 하던 하루일과 속의 수많은 자기 계발 루틴을 매일같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이때의 신묘한 기운 덕분인 것 같으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하루 자유시간을 가진 나는 손에 입김을 후후 불며 제주시의 어느 왁자지껄한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모은 프리퀀시 쿠폰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초록색 다이어리를 받은 뒤 자리를 잡고 초콜릿케이크와 캐러멜마끼아또, 다이어리를 나란히 한 프레임에 넣은 뒤 찰칵, 엄마에게 보낼 인증숏을 찍었다. 원래 처음 쓰는 글씨가 그 다이어리 전체를 좌우한다고 하지 않나. 어떤 문체로, 어떤 글씨체로, 어떤 말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번 여행을 시작한 마음과 일 년의 회고를 적어나갔다. 올해의 어워드 템플릿도 만들었다. "올해의 영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만남, 올해의 도전…” 나는 떠오른 온갖 질문들에 답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나는 이 다이어리를 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채워나가기 위해 갖가지 계획을 세웠다. 캠프파이어, 일출 보기... etc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에 적힐 법한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올해 이룬 것, 내년에 바라는 것" 인터뷰하기. 정말 뜬금없지 않은가? 나는 불쑥 떠오른 이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숙소에 돌아가 캐리어 속 핑크색 JVC 카메라를 꺼내 들고 친구와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듣고 싶어. 현실적인 이야기 말고, 마음속 깊이 품고 있었던, 어디 꺼내보기 부끄러웠던 것들을. 그리고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어. 나는 그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가능하다고 믿으니까." 어쩌면 이것은 내가 품고 있던 가장 진한 욕망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남의 꿈과 희망을 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겐 평범함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오마카세와 한남동 유엔빌리지 말고, 음반 판매량과 팬들의 사랑을 숫자로 환원시키는 그래프 말고, 그럼에도 눈을 떠 일어나고, 그럼에도 은은하게 미소 짓게 되는 이유. 내 삶에서 그게 무엇일지 찾아보고 싶었다. 로또처럼 아주 랜덤 한 운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정성에 따른 소소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한때 내가 먹어도 먹어도 허기졌던 건 내가 꿈꿔온 화려한 세계가 실은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잔뜩 시멘트칠을 했을 뿐인, 폐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몇십 년 산 양주들이 호텔 바닥에 뿌려지는 풍경들이 내 눈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누군가 "굳이,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낭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그런 낭만을 쫓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소소한 이야기 속.


나는 한 달 동안 제주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잔뜩 수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모르는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운전석의 체취와 목소리로 그가 살아온 세월을 가늠했다. 짙푸른 공기와 어딘가 들뜬 오고 가는 목소리들. 내 세계와 그의 세계에 발자국이 여럿 찍히고, 나는 한 사람에게 얼마나 문이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평범한 소방관. 그는 한때 사막과 남미를 맨 몸으로 여행했던 세계의 방랑자였다. 팔 한쪽에 이레이즈 문신이 잔뜩 새겨져 있는 남자는 어머니와 함께 작은 식당을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내 또래 친구들은 직업도 꿈도 정말 다양했다. 전 세계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니며 스태프로 여행하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보험사의 서류 처리 일을 하거나, 카센터에서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언젠가 짱구 생일 카페를 만들고 싶다던 언니도 기억에 남는다.


뜬금없이 푸핫 하고 터진 웃음들. 돌려받을 수 없는 호의를 잔뜩 나눠준 사람들. 나는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싶다는 신념이 있었지만, 때때로 누군가의 지인이 되기도 했다. 번호를 교환해서 후회한 적도, 그랬기에 인연이 이어져 감사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행 이후의 일. 비바람이 잔뜩 불고, 태풍 경보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우산이 뒤집히고, 흙탕물을 뒤집어쓴 순간도 비슷한 공기와 바람이 불 때마다 그날의 기억들로 웃음이 난다면, 모든 순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새해의 일출은 특별했다. 자발적으로 새벽에 깨어있는 건 밤샘 작업을 하지 않는 한 인생에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바다 앞에 선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해가 뜨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모르는 가족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어릴 적 함께 여행 갔을 때가 떠올랐다. 엄마에게 갑자기 전화해서 "그때 엄청 구불구불거려서 간 거기, 도로 엄청 높~고 갑자기 확 떨어지고 완전 롤러코스터탄 것처럼. 그게 어디였지?" 횡설수설 묻고 싶었다. 대신 가족 단톡방에 동영상을 하나 보냈다. 낯선 침묵 속에서 조금씩 환해지는 풍경. 내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꿈틀거렸다.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되는 시간들. 찰나의 반짝임, 이대로 놔도도 될까? 어쩌면 다시 마주하디 못할 수도 있는데? 그때부터 나는 ‘오늘을 적지 않으면 오늘에 갇혀 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내일은 상상도 못 한 멋진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오늘과 예쁘게 이별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잘 가." 인사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일기를 쓰는 것은 쉬우니까.


그 이후 나는 일기에 중독되었다. 하루라도 일기를 빼먹으면 그날로 돌아가 강박적으로 회고하거나, 아무 말 대잔치를 써서라도, 미래 계획을 장황하게 펼쳐서라도 빈 페이지를 메워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다이어리 자체도 많아졌지만 안에 읽을 콘텐츠가 무수했다. 책장 한편이 다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서랍을 열어 각기 다른 해, 다른 계절, 추억 여행을 해보려 몇 장 넘기다가도 글씨가 너무 빽빽해서 눈이 아팠다. 먼 미래에 할머니가 되면 내 일기장이 가장 재밌어질까? 조금 더 써주지... 하면서 최애 작가를 기다리는 구독자의 마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까지 살지 못할 수도 있지. 불에 타 흔적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일기장은 집이기도, 애착 대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냥 루틴이 되었으니까. 일기는 나에게 일상의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중심 잡기 도구인 것이다.


나는 요즘 지금까지의 일기에서 '하이라이트'를 뽑아 정리해 보는 나만의 리추얼을 준비 중이다. 한 달의 마지막 날, 형광펜을 들고 이번 달의 일기 중에 가장 재미있는 부분에 밑줄을 칠 것이다. 색깔펜으로 댓글도 달아줄 거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음! ㅋㅋㅋ" 이렇게 방명록처럼. 언젠가 다른 날에 이 페이지를 방문하면 두께가 다른 색깔펜으로 또 다른 멘트를 적어주겠지. 미래와 과거의 나에게, 시간을 마구잡이로 건너뛰어서 닿고 싶다. 우리가 소통한 흔적은 언젠가 하나의 연대기가 되겠지. 마치 영화의 클립을 잘라내고 이어 붙여 쇼츠로 만드는 작업 같다. 구린 것을 쏙 빼고, 멋있는 부분만 남겨서 과거를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처럼. zine의 형태로 물성을 담아 남길 수도 있고, 노션에 아카이브 할 수도 있겠지. 역시나 혼자 볼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기장 속 어떤 문장은 잔뜩 흔들리지만 그 사이로 굳건한 신념이 엿보이고, 어떤 장면은 일화만으로도 나다운 나를 보여준다. 이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나 자신을 다시 껴안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나는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 이 수많은 일기들이 나의 결정적인 콘텐츠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이 책이 될지, 영화의 내레이션이 될지, 혹은 그저 늙은 내가 읽는 편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매일 나 자신과 만나는 이 루틴, 일종의 리듬 자체가 나의 일상을 구원해 왔다는 사실이다.


여행지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이 세계는 언제나 불균형 위에 서 있다. 타인의 노동과 환율의 장벽 너머에서 나는 가벼운 일탈을 누렸고, 그 감각은 잠시 기분 좋지만 어쩐지 공허했다. 때때로 일기를 쓰면서 나의 일상의 자유 역시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을 밟고 서있었다는 불편한 감각을 알아채기도 한다. 그런 감정은 늘 다이어리로 흘러 들어갔다. 일기는 내 궤적을 감추지 않는 기록이었고, 동시에 세상과 나 사이에 무게추를 맞추는 저울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매일 일기를 쓰지 않으면, 하루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 어지러운 감정과 뒤섞인 기억들이 아무 데나 흩뿌려져 나를 침식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나를 포박하지 않으면 내일로 넘어갈 수 없다. 쓰는 행위는 나에게 날마다 세계를 다시 정돈하고, 그 위에 내 마음의 무늬를 다시 새기는 의식이다. 그러니 나는 매일 쓰며 살 것이다. 그것이 나를 놓아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나에게 일기는 샤워와도 비슷한 같다. 바쁜 하루 밖에서 찌꺼기처럼 묻어온 것들을 털어내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거기서 예기치 못한 내 욕망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행해온 방어 기제나 행동 패턴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물론, 섣부른 말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 주었을 때, 일이 틀어졌을 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자각할 때, 후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일기는 그보다 더 나아가게 만든다. 후회에서 그치는 것은 쓰는 행위 없이도 가능한 일이니까. 내가 이렇게 자리에 앉아 시간과 품을 들인다는 것은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나는 나를 계속 정리하지 않으면 가냘픈 아기 민들레처럼 여기저기 휩쓸려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여기에 씨앗 하나 두고, 마음껏 내일로 모험을 떠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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