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나

네가 죽고 딱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by 강하라



경험하기 전엔 절대 모르는 사랑이 있다고 한다.


어제 새벽, 하나는 침대 위로 총총총총 강아지 계단을 올라왔다. 그리고는 뒷발로 앞을 박차고, 입에 물었던 무언가를 던졌다가 다시 받는 시늉을 했다. "막대기 잃어버렸어?" 하면 네 귀는 쫑긋 섰다. "찾으러 가자!"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후레시를 켜고 온 집안을 뒤졌다. 장식장 밑까지 엎드려 들여다봤지만, 막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너, 다 먹은 거 아냐?"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지만 하나는 가만히 있었다. 꼬리를 세게 흔들며.


점심쯤 눈을 뜬 내가 거실로 나가자 하나는 총총총 따라와서는 내 엉덩이에 자신의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았다. 금방 또아리를 틀고 새근새근 잠에 들어있었다. 평소와 똑같았는데 할아버지는 애가 뭐때문에 이렇게 시무룩하냐고 했다. “어제 막대기 잃어버렸대. 아직도 슬픈가봐." 그렇게 말하자 할아버지는 대번에 일어났다. "막대기? 당장 찾아야지!" 그리고는 온 마당을 헤매며 하나의 막대기를 찾아다녔다. 사실 담배 피우러 나가고 싶었는데 좋은 핑계를 댄 것 같다.


오후엔 강풍 예보가 불었다. 마당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다가 파라솔이 거세게 흔들리는 바람에 또 날아갈까봐 테이블로 올라가 끌어안았다. 한 손으론 기둥을 붙들고, 한 손으론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는데 하나는무심하게 의자에서 테이블로 훅 뛰어올라와 내 엉덩이에 자기 엉덩이를 붙이고 또아리를 틀었다. 나는 기껏해야 파라솔 하나 날려보낼 강풍이 무서워 이러고 있는데 파라솔보다 작은 너는 태연한 게 웃겼다. 플라스틱 컵이 날아가고, 온갖 소리가 하늘에서 와글와글 끓고있는데도 기개가 다른 너. 나를 보는 눈으로 ‘어차피 다 지나갈 건데 힘 빼지마’ 말하는 것만 같았다. 기특해죽겠는 하나의 머리를 박박 쓰다듬고 눈꼽을 슥 닦으면 하나는 몸을 뒤틀어 배를 깠다. 그냥 내 배나 긁어.


가족들은 하나 한정 어그로꾼이다. 할머니는 맨날 "언니 어디 있어? 어디 갔어?" 묻고 꼬리 흔들면 박수 치고 기뻐한다. 할아버지는 한술 더 떠 거짓말을 일삼는다. "언니 보러 가자, 엄마 왔대, 산책 갈까?" 그럴 때마다 하나는 다 알면서 속아주는 듯했다. 뒷발을 박차고 왕! 왕! 현관문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매번 방에 있다가도 잽싸게 튀어나가 “하나한테 거짓말 좀 하지마!”하면서 동네가 떠내려나가게 소리쳤다. 어쩌면 나의 반응을 즐거워하는 어른들의 장난일지도 몰랐다.


애가 얼마나 순수한데, 얼마나 순수하면 매번 속고 또 속아도 속아주는데. 어쩌면 강아지 사전에 거짓말이란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인간이 너무 미웠다. 하나가 태어난 게 불쌍하고, 하나를 데리고 나갈 때 목줄을 차야하는 게 불쌍하고, 하나가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울 때마다 불쌍했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은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하나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하나한테 팔자 한번 뒤지게 좋다고 말한다. 정말? 하나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어쩌다 너는 태어나게 된거니, 행복하니? 그러면 눈물이 맺힐 때도 있었다. 내 일에는 절대 안 우는데 이상하게 하나만 관련되면 눈물이 많아졌다.


하나의 혈통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따지자면 믹스견이다. 대외적으로는 말티즈와 시츄가 섞인 모습이고. 그렇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것은 하나의 귀가 아래로 축 쳐져있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하나의 귀는 자주 통풍을 시켜주지 않으면 아프다. 매번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고 발라줘도 빨갛게 부어오르고 각질이 생긴다. 털도 엄청 얇고 꼬불거려서 자주 뭉친다. 빗질하는 걸 싫어해서 배를 만져주다가 손이 아닌 빗이 자신의 몸을 터치하는 순간 앙! 무는 척을 한다. 무는 것도 아니고 무는 척을 하는 것이 웃긴다.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손을 타야하는 네가 행복할까?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길강아지들이 행복할까? 언젠가 동물들의 인터뷰를 하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는 친척 모임에서 예기치 않게 생긴 아기 강아지였다. 사촌 이모들이 각자 시츄랑 말티즈를 키웠는데, 그 두마리를 한 차에 넣고 밥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 그럼 애들이 중성화수술을 안했던건가… 이모들이 다시 보였다. 강아지를 생각하지 않는 경솔한 어른들이라고 혀를 차고싶지만 강아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수술 역시나 강아지를 위한 건 아니지. 그러려니 했다.


하나의 형제자매들이 태어났을 땐 전부 흰둥이들이었다. 귀와 꼬리가 갈색인 우리 하나만 빼고. 큰 상자 안에 손바닥만한 애들이 서로 엉켜있다가 뺙뺙 거렸다. 그러니까 아주 아기인 강아지들은 고도의 병아리와 구분할 수 없다. 애들은 서로를 마구 먹고 있었다. 정말 먹고 있다는 표현 말고 다른 표현을 쓸 수 없었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옆에 애 머리를 먹고, 또 옆에 애가 애 머리를 먹고… 이래도 되는 걸까? 너무 작고 소중해서 만지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몰래 한 아이를 들고 수면잠옷을 입은 배 위로 올려놨다. 낑낑 거리면서 몸을 타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다 똑같이 생긴 아기들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유독 그 점박이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할아버지는 "애들 손 타니까 만지지 마라"며 단단히 경고했지만, 강아지들끼리 엉키고 물어뜯는 소란 속에서 나는 몰래 손을 뻗어 그 점박이를 품에 안았다.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조심스레 기대했지만 나는 알았다. 누군가의 평생이 내 손에 달렸다는 건, 한낱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일이란 걸.


막내 동생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며 울고불고 떼를 쓸 때, 나는 끝까지 반대했다. 그냥 애 소원 좀 들어주자는 가족들에게 화가 났다. "평생 걔 책임질 수 있어?." 매일 산책 시키고, 밥주고, 물주고, 머리 깎아주고, 아플 땐 병원 데려가고. 나이 많아지면 병원비 몇천만원은 든대. 그거 다 감당할 수 있어? 그런데 제일 어려운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언젠가 얘가 나를 원망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어?” 그건 내가 엄마 아빠에게 묻고 싶던 말이었다. 그냥 잘 먹고, 잘 자게 키우는 것만이 키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키우는 것의 무게를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평생이 다 가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내가 하나를 다시 만났을 땐 그로부터 일년 뒤였다. 어른 강아지의 모습을 한 하나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얼굴을 핥았다. 엄청 그리웠던 사람을 다음 생에 만난 것처럼. 하나는 매번 처음 본 사람들에게 거칠게 짖는데 어떻게 나에겐 그렇게 다정할 수 있었나 싶다. 하나는 처음부터 이미 나의 가족이었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가족같은 존재.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던 내가 횡단보도 앞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 대신 내가 치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든, 나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매일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우리는 산책을 나갔다. 비나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부나. 어느정도 되니까 우리 사이에도 신뢰가 쌓인 건지 배변패드가 매번 깨끗했다. “언니는 이 시간만 되면 나를 데리고 나가. 그러니까 나는 꾹 참고 기다릴래.”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인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냐, 개 냄새가 하나도 안난다는 건 어른들의 자랑이었다. 비가 내리면 우리는 우비를 맞춰 입었다. 모자를 쓰면 끙 하고 움직이지 않는 하나를 위해 나는 우산을 뒤집어 하나 몸 위로 씌웠다. 이 광경을 본 동네 사람들이 신기한 광경을 본다며 멈춰 설 때도 있었다. 나는 아프면 잠깐 앓고 말면 되지만 하나는 죽을 수도 있잖아. 하나는 추우면 말도 못하잖아. 이 모든 계산보다 몸이 더 빨랐다. 중간에 걷기 싫다는 하나를 위해 하나를 들춰 안고오면 겨울 철 붕어빵 봉지를 품에 안은 기분이었다.


하나는 졸릴 때면 미간이 넓어져서 포차코를 닮았고, 눈이 또렷해지면 여우 같았다. 때로는 도비 같기도 했다. 매번 볼 때마다 얼굴이 달라진다. 털을 밀고 오면 성격까지 달라진다. 우리끼리 신생아 분만실에서 애가 바뀌어 온 것 같다는 농담도 했다. 하나의 인성은 털에 비례한다. 하나가 좋아하는 것은 드라이브하는 것. 내 몸을 타고 올라와서 창문을 열어달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차창 아래 손으로 딱 바치고, 바람을 맞으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햇빛이 드는 자리가 지정석. 해가 모습을 달리 할 때마다 슬그머니 일어서 다시 자리를 잡는다.빛 속에서 잠든 천사 사진. 일촌공개.


하나는 뼈다귀 막대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애견용품 가게 맨 아래, 어린이들을 위해 계산대 옆에 사탕이 비치된 것처럼 하나의 눈높이에 떡하니 놓여있는 막대기를 발견하면, 코로 툭 가리키고는 한번 발을 끌어 찼다. 그러고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이거 사주기 전까진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처럼.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시위였다. 큰 뼈다귀를 실컷 뜯어먹다가 맨 끄트머리만 남겨두고는, 며칠 동안 혼자 던졌다 받았다 놀이를 반복했다.


하나에게 엠비티아이가 있다면, 단연코 INTJ였다. 지극히 내향적임. I. 꿈에서 어떤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인지가끔 잠꼬대까지 하는 모습은 N. 내가 분에 못 이겨 울고 있을 때마다 “넌 언니가 우는데 아무렇지 않아?” 말해도 본체만체하는 건 T. 특히 마지못해 눈물을 닦아주러 왔다가 아무리 그래도 눈물을 핥아주는 것까진 그런지 고개를 조용히 돌리는 너의 모습은 참 웃겼다. 그리고 5시만 되면 잠에 푹 빠져있다가도 화들짝 일어나 “나가는 시간 아니야?”하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규칙성. J. 우리집에 처음 등장한 인티제 강아지.


하나는 다른 강아지들을 싫어했다. 사실은 겁이 많아서였다. 산책 중 다른 강아지와 마주치면, 나는 일부러 다른 강아지를 예쁘다 쓰다듬으면서 너에게 눈짓했다. 꼬리 냄새 맡기의 주도권을 뺏어주기 위해서. 하지만 눈치도 없이 내가 마냥 다른 강아지와 사랑에 빠진 줄 알고 질투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언니가 이럴 수 있어?” 억울했지만 매번 해명이 먹히지 않았다.


동네 단골 카페에 데려가면, 사람들은 항상 "어쩜 이렇게 순하냐"고 감탄했다. 하지만 누군가 조금만 관심을 주면, 금세 "너 이름 뭐야!!" 하고 짖었다. 친구들이 와도 그랬다. 그러나 안아주고 냄새 맡게 해주고 몇 분만 지나면 하나는 금세 친해졌고, 심지어는 그 언니랑 자겠다고 쫄랑쫄랑 다른 방에 따라가기도 했다. 너무나 쉬운 강아지…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가끔 하나는 텔레파시처럼 나에게만 들리는 초음파로 울었다. 청각이 예민한 나는 매번 끙끙거리는 소리도 아니고, 끙, 소리 한번에도 말벌아저씨처럼 하나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제는 소리도 내지않고 나를 부른다. 저~ 먼 곳에서도 하나의 소리는 유독 크게 들렸다. 한번은 할머니 방에 하나를 두고 “샤워하고 데리러 올게.” 약속했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지자 초음파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내가 후다닥 문을 여니까 캄캄한 방에서 빨간 눈을 하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이런 예민하고 이기적이고 단순하고 복잡한 강아지.


나는 왜 이 강아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인간은 어쩌면 내가 온 사랑을 다 바쳐도 떠나가지 않을 존재를 갈구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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