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너를 사랑해
오후 12시. 막내 동생 체리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일곱 통이나 와 있었다. 다시 걸려고 폰을 집어드는 순간, 또다시 체리의 이름 세 글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잠결 같은 몽롱함 속에서 무슨 일이지? 하고 의문을 품던 찰나,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밀려들었다. “언니 언니! 지금 도덕시간인데 인터뷰 해야 해!” 체리는 한껏 흥분해 숨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첫번째 질문! 언니 휴대폰에 저장된 제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에 나는 대답했다. “구체리. 세 글자.” 내 대답에 실망한 듯, 체리는 투정 어린 말들을 토해냈다.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듯 선명했다. “원래 나는 그냥 사람 이름 다 세글자로 저장해.” 어쩐지 나는 변명하는 투로 대답하게 됐다. 그러자 체리는 한층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 뒤로 이어진 몇 가지 시시한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해주고, 옆에서 밥 언제 먹을 거냐고 눈치주는 엄마에게는 눈짓으로 ‘조금만 기다려’ 사인을 보냈다.
“저와 함께 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뭔가요?” 다음 질문은 그렇게 던져졌다. 망설일 틈도 없이,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언제나 거실 티비 앞이었다. 디즈니 채널에선 피니와 퍼브, 꼬마의사 맥스터핀스, 말랑말랑 도우랑 같은 유치하지만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 OST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체리가 시작하거나 내가 시작하면 우리는 하모니가 되어 2절 3절 듀엣으로 완창하게 되는, 그런 배경 음악을 시작으로 한국인들의 특징처럼 나는 소파 아래 등을 기댔고, 다리를 접어 그 위에 아기 체리를 뒤집어 올려두었다. 그것은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진화하는 것처럼, 동시에 티비를 볼 수 있고 어딘가 서로의 체온이 맞닿을 수 있게 고안된 새로운 방식의 합체였다.
쿵짝쿵짝, 둥가둥가. 그렇게 우리는 몇 해의 시간을 설탕처럼 녹여먹었다. 그러니까 이미 혀 끝에서 다 녹아버렸는지도 몰라. 지금의 나에겐 그 시절이 하루 종일 티비만 봤던 장면으로 정의된다. 정말로 우리는 맨 종일 티비만 봤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상황 극에 액션 배우처럼 합을 맞추거나, 함께 훌라춤을 추거나, 탱고를 췄다. 총 놀이를 하고, 철인 삼종 경기를 하고, 하나 꽂히는 단어가 있으면 그걸로 작사 작곡 내내 하고, 목욕탕에 둘이 들어가 인어 공주의 새 이야기를 짓고, 심심한 내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누워서 부르르 떨다가 눈을 뒤집고 일어서면 경기를 치고 도망가는 체리. “언니!! 무서워!! 진짜야??” 똑같은 레파토리의 반복이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정신 없이 뛰어놀다 지치면 드러누워 또 티비를 보고.
한 세기가 낮아진 정신 연령에 현실 자각 타임을 가진 내가 침대에 엎드려 휴대폰을 보면, 체리는 곧장 내 등 위를 올라타 엉금엉금 기어오곤 했다. 나는 셀카 모드로 그 장면을 여럿 찍어두었고, 가끔 갤러리에서 그런 동영상이 발굴될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나는 체리가 얼마나 귀찮았던가. 또 얼마나 귀여웠던가. 터닝메카드가 유행하던 시절, 우리는 각각의 개체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합체 로봇이었다. 쫀득한 젤리 같은 손과 통통한 발, 체리의 체온은 쿠션보다 따뜻했고, 나는 그것을 느끼며 자꾸만 노곤해져 선잠에 빠져들었다. 현실로 뛰어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락한 품. 내가 가야할 길은 한참 멀었고, 집은 여기 있었다. 나의 큰 손을 가져다 대면 곧이어 손가락을 말아 쥐는 작은 손가락, 그건 어떠한 약속같았다. 영원을 맹세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에겐 영원히 도태될 것 같은 불안함과 그것을 이기는 사랑스러움이 있었으니까.
엄마 아빠는 14살 차이가 나는 우리를 보고 ‘쌍둥이’라고 부르곤 했다. 물론, 어린 체리가 학교에 들어가고, 어눌했던 말투가 아주 또박또박한 의사표현으로 바뀌면서, 좋아한다던 노른자를 “나 원래 이거 싫어해.”라고 말 할 수 있게 되면서 그 말도 이내 무색해졌지만. 체리 상점과 체리 호텔, 체리 상점의 첫번 째 고객과 첫번 째 투자자, 기획 아이디어 협찬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그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체리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언니에게 나는?” 왠지 낯설게 진지하고 묵직한, 내심 떨리는 마음을 감춘 것 같은 톤이었다. 앞선 질문들은 이걸 묻기 위한 에피타이저였을지도 모른다. 뜻밖의 철학과 마주한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관 반대로 아주 심플하게 답했다. ‘내 사랑 체리쥬빌레’
어릴 적, 체리를 끔찍이도 사랑하던 나는 <내 사랑 체리쥬빌레>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팬이 사랑하는 아이돌을 ‘아기 주먹밥’ ‘아기 막국수’ 등의 음식이나 과일로 모에화하듯이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체리를 그냥 가져다 붙인 것이다. 하도 체리 체리 하니까 자신도 체리인 줄 알고, 네이버 아이디도 체리고, 학교에서의 별명도 체리가 됐다. 보통 “헤이~ 체리~” “체리야!” “췌리~~” 이런 식으로 부른다. 나는 방이 봐줄 수 없이 더러울 때, 겉옷을 옷걸이에 걸기 싫을 때, 청소요정 체리를 부른다. 체리는 내게 ‘시리’라는 단어와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첫째의 사악함과는 별개로 체리는 사춘기의 불퉁함을 잔뜩 품은 헤드폰 낀 무채색의 체리가 되었다. 여전히 청소는 잘 해준다. 숙제하기 싫어서…
“아니, 언니에게 나는…!” 어딘가 애매모호한 내 대답을 질책하는 체리에 나는 결국 너를 너무 사랑해서 쓴 시가 있다, 그 시의 제목이 그거다 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이 체리쥬빌레야…” 하며 흐지부지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밥 먹자” 하니 엄마가 물었다. “뭐야, 방금?” “체리 학교에서 인터뷰 요청. 라디오 전화 연결처럼.” 엄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언니 또 자랑했겠구만.”
그 말에 흐흐 웃고 넘긴 나는, 체리와의 인터뷰를 까맣게 잊은 채 엄마와 너구리를 끓여먹고, 4층 이모와 이모의 큰딸과 함께 2:2 동반 칼국수 데이트를 즐기고 돌아왔다. 그날 저녁,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 다이소에서 산 떡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내 아이패드의 케이스와 이북리더기의 스크린샷과 같은 컴포지션 노트 무늬에 ‘자세히 봐봐’라는 말이 까만 펜으로 적혀 있었다.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니, 메모지 안에 투명한 자국으로 ‘내가 많이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마 쑥스러움에, 눈에 잘 안 보이는 펜으로 새기듯 적은 것 같았다. 무심한 나는 그 메모를 읽으며 거실까지 들리게끔 장난스레 소리쳤다.
“내가 많이 사랑한데이~!”
그 순간조차도 별일 아니라고 넘겼던 나는, 그 귀엽고 조악한 메모지를 어디에 두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전시해야겠다 생각하고, 막상 쓰기엔 귀찮아 침대 아래 서랍에 넣어두었다. 집에 돌아온 체리는 내게 달려와 외쳤다. “언니, 언니! 나 언니 때문에 엄청 운 거 알아? 지인이는 쌉T야. 나보고 왜 우냐고 꼽줌!” “왜 울었는데?” “언니의 인터뷰가 너무 슬프고 감동적이었으니까!” 사춘기 소녀 체리는 방방 뛰며 말했다. 그 말이 민망하면서도 어딘가 짠해서, 마치 내 사랑 체리쥬빌레가 돌아온 것 같았다. 언제나 여기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 새벽녘. 내가 가장 아끼는 두 인간의 생일이 곧 다가온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6월 4일.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시를 주기로 마음 먹었다. 이 시가 제일 너답고, 나다운 선물이니까. 카카오톡 예약문자를 이용할 계획이다. 체리에게 줄 시는…
내 사랑 체리쥬빌레
처음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의 너를 생각해
‘꿈’에 대해 배웠을 때, 친구들은 모두 장래희망을 썼지만
너는 ‘백수’라고 썼지. 그 날 저녁 선생님께 전화가 왔지
어른들을 한참동안 깔깔거리며 웃어댔지만 나는 조금 울고 싶었지
‘언니는 나의 꿈이야’
아이들은 참 로맨틱해서 참 슬퍼
정의내리지 않고 사랑하는 거, 세상에 너말고 또 누가 있을까?
나는 그런 너를 담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었지
그래, 내 우주는 너로부터
언니는 채민이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정치자금을 대올거고
우주비행사가 되고싶다면 nasa에라도 전화해볼거야
그치만 공부가 제일 싫다는 너에게 카페라도 하나 지어주려면
언니는 서울에서 아주 아주 많이 공부해야 해
‘언니 세 밤만 자고 올거야?’
‘언니, 너무 너무 보고시퍼. 그래서 나 눈물이 나’
다시 만나려면 세 밤이 아니라 서른 밤도 넘게 보내야한다는 걸
차마 말하지 못해서 사랑해를 써
내 사랑 체리쥬빌레.
네가 나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너를 사랑해
-2020년 10월 4일,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