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by 강하라

고흐는 생에 인정받지 못했다. 미술상이었던 동생만이 그의 그림을 알아보았다. 미래 인류들은 모두 고흐의 이름을 알지만 그 시대의 인류들은 고흐를 몰랐다. 그게 핵심이다. 0.0001% 천재 예술가의 삶. 랭보는 미래의 근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는 스스로를 천재로 명명하고 나서 ‘노동을 하며 돈을 번다’는 평범한 인간의 삶도, ‘인정 받는다’는 자아현실의 욕구도 버렸다. 그렇게 삶은 영화가 되었다. “하나를 얻고 싶다면 하나를 잃어야 해. 등가 교환의 법칙.” 시대에 발맞춰 부유하게 살았고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비교적 편하게 예술을 한 인물들은 우리에게 전부 어려운 이름으로 남았다. 다시 말해 기억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건 어쩌면 인류의 욕망이 단순히 생을 지탱하고 있는 육체의 기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의 정상성을 바탕으로 주변인들에게 인정 받고, 어엿한 자식을 몇 두고, 돈 걱정 없고 남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인간이 미쳐가는 이유는 뭘까. 끝없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단지 인간이라는 존재 혹은 원죄에 의해서일까? 인간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열망, 자아실현의 욕구 그 이상을 갈망하게 된다.


당신이 만약 천재라면 진작 그런 열망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종교인들, 가슴 한 구석에 어딘가 공허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 철학가, 끝없는 지식을 탐닉하는 지식인들, 밝혀지지 않는 영혼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싶어하는 탐험가들은 계속해서 우주선을 발사하고 물리적으로 정신 세계를 밝혀내려 한다.


정말 우리의 뇌는 우주와 같을까? 뉴런과 은하계의 구조가 닮은 이유는 뭘까? 인간이 지금 발 딛고 있는 집, 마당, 공원, 카페, 식당, 그 너머 현실에 있는 ‘지구’를 자각하게 된 건 정말 체험했기 때문일까? 한번도 동네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사람이 옆 나라에 일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우리도 시간이라는 비물리적 차원성을 깨닫게 된다면, 인간이기 전 계획한 삶의 목표, 가치를 문득 자각하게 된다면 돈은 돈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했던 것들이 허상이 된다. 계속 뒤집히고 꺾이는 혼란 속에서 분명한 빛 하나를 마음에 거리낌 없는 길 하나를 쫓아가다보면 진정한 내가 보인다.


나는 뭘 하고 싶은가?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진 인간이 되고 싶은 건가? 그저 살아내는 인간이 되기란 어려운 세상에서, 미친듯이 발광하며 촉진하는 삶이나 그런 삶을 관찰하며 사색하는 삶, 그런 삶들은 반짝이고 더 쉬울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미친 것이다. 그렇게 설계되어있다. 아무리 중심을 잘 잡아도 계속해서 흔들린다. 대중의 중심, 중산층, 가장 중간의 안정된 영역, ‘운’이라는 비합리적 비논리적인 이유로 한순간에 내몰릴 수 있는, 내던져질 수 있는 아슬함 속에서 기꺼이 악마가 되는 인간들. 실제로 그런 단어들은 다 가짜다. 모두가 그 속에 있다는 착각만으로 안도감을 얻지만, 표본층이나 데이터의 편향으로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그러한 중간이다. 대체 누가 중간을 만들까? 누가 당신은 중간이야 하면서 어깨를 토닥일까. 때때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것들이 까보면 신앙이나 프로파간다의 형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속지 말자.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그저 ‘생존’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생존이 목표라면 왜 랜덤으로 태어나고 랜덤으로 죽을까. 운은 변수이자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를 망치는 못된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 무언가에 닿기 위한 과정, 빌드업, 축복 같은 형태였을 수도 있다, 애초에는. 그러니까 너무 거창하게 삶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당신은 아마 들꽃의 향기를 맡기 위해서 태어남을 결심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당신은 믹스 커피의 맛을 음미하고, 그 믹스 커피를 더 완벽한 비율로 제조하기 위해서 태어났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믹스 커피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당신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당신은 버려진 강아지들의 눈꼽을 떼고 품에 안아 영혼의 진동을 공유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어떤 당신은 슬픔이라는 단어를 발명했다. 간접적으로 인생을 겪고 배울 수 있는 무수한 책과 영화 음악들이 널려있는 이 세상이 반가운 이유는 그런 것이다.


1000번 살아보지 못했어도, 1000권을 살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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