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을 시작합니다
비평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글을 쓰고 싶지만, 누군가 온전한 내 글을 읽어줄 거라는 기대가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트위터에는 ‘여름에 꼭 봐야 할 영화, 드라마, 소설, 시집, 에세이’ 타래가 올라오고, 내가 왓챠에서 ‘보고 싶어요’를 눌러둔 영화만 해도 천 개가 넘는다. 내 인생을 통틀어 본 영화가 천 편인데, 봐야하는 영화도 그만큼이나 쌓여 있다.
그게 영화만인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은 내가 읽는 속도보다 내는 속도가 더 빠르고, 매거진에서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책 리스트를 메모장에 아카이빙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수상작품집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이 좁은 땅에서 주목할 만한 신성은 매년 빠지지 않고 문학계에 태어난다. 다 납득 가능한 수준이라서 서글펐다. 이 정도면 내 순번은 저 멀리, 영원히 밀려버릴 것만 같다. 김기태가 요즘 가장 핫한 작가라는 말도 신기하게 들렸다. 나만 모르는 어떤 커뮤니티가 있는 것 같다.
한때 나는 솔직히 비평이나 해설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정도라고 여겼다. 시를 쓰며 “평론가 지망생 친구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 하고 속으로 바랐던 적도 있다. 독특한 형식 위에 현학적인 문장을 얹으면 누군가 멋진 포장지를 덧대줄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그게 내가 문학을 대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이었다!’ 상대가 버거워 홀랑 도망쳐놓고는 혼자 오열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남자 주인공 스즈카처럼 말이다.
좋은 글을 쓰는 창작자가 되지 못하면 좋은 글이 왜 어떻게 좋은지 따져보자. 그것이 내가 하고자하는 비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비평을 쓰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면 내 밑천이 드러날 것 같기 때문이었다.또한 무언가를 확신하면 언젠가 그것들이 내 뒷통수에 칼을 꽂을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나는 과거에 쓴 글을 잘 읽지 않았다. 잔뜩 솔직하게 쓴 글은 읽히는 순간 부끄러워지고, 내가 나를 숨긴 글은 몇 년 후 다시 보면 나 스스로를 낯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론가들은 어떻게 자신을 감추거나 드러내는 방식으로 타인의 작품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작가들은 어떻게 몇십 년이나 수치심과 불완전함을 견디며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솔직히 그들도 모를 것 같다. 그냥 써야 하니까 쓰지…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혹은 이 일을 의심하면서도 계속 쓴다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김멜라의 ‘이응이응’은 그런 면에서 나를 움직였다. 확신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화자의 태도는 내가 느끼는 불안과 닮아 있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젠가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아이러니. 하지만 나는 종종 그 태도를 잊는다. 내 비평 속에서도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확신하고, 설교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내 글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두렵다. 틀린 문장이 정답처럼 남아, 누군가의 삶을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무겁다.
최근 친구와 함께 빅마마의 체념을 듣다가 “이 곡, 전 남친과 한 달 사귀고 만든 거래”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내심 확신할 수 없어서 검색했더니 두 달이었다. 그런 사소한 정보들은 깊이 생각해볼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틀린 채 남아 있는 문장들은 번복되지 않고 계속해서 굳어진다. 나는 그것이 내가 쓰는 비평의 운명이 될까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계속 쓴다. 아마도 나의 글을 읽어줄 독자는 나처럼 애매한 사람일 것이다. 무엇도 완전히 믿지 못하지만,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사람들. 더 나은 세계가 있다고 믿으며, 그 세계는 쉽게 열리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 사람들. 끝없이 골몰하고, 상상하며, 연대해야만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믿는 사람들.
비평이란, 결국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비판할 미래의 내가 있다면, 그리고 그 글을 다시 읽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확신과 의심을 모두 기록할 것이다. 설령 나의 정답이 정답이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