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겁거나 차갑거나 늙거나 어리거나

목욕탕에서 만난 여자들

by 강하라




유독 새해마다 북적이는 곳이 있다.


다녀오면 몸과 마음의 때가 벗겨지고 아기처럼 깨끗해질 것만 같은 곳, 그러니까 내 의지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곳. 그곳엔 모든 여자들이 살아있다. 아무도 쭈글쭈글한 몸의 흉터, 뱃살과 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구부정한 사람도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자신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전혀 흉하지 않다. 그게 참 이상하다. 다들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도 아무렇지 않아서 나도 덩달아 펼 수 있는 최대치의 어깨를 펴게 된다. 마침내 우리는 한 장면 속에 녹아든다. 일요일 오후, 목욕탕의 풍경이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똥모양으로 올려 묶고, 수건으로 감싼다. 드디어 샤브샤브의 배춧잎이 될 시간이다. 살짝만 담갔다 빼도 온몸이 익을 것이 분명하다. 마그마가 빚어내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온천수의 효능을 눈으로 읽으며, 이 명약이 내게 미칠 영향력을 떠올린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좋아질 듯한 예감이 든다.


시작은 온탕에서부터. 발부터 슬쩍 들이밀며 구애하듯 ‘이런 나라도 괜찮겠냐고’ 허락 아닌 허락을 구한다. 열탕을 흘깃 쳐다보지만 못 오를 나무 꿈도 꾸지 말자. 의자에 앉으면 수면이 가슴께에서 찰랑인다. 저 멀리 온도계가 깜빡인다. 41.3도, 41.5도. 숫자가 변할수록 숨이 막히고 나는 뛰쳐나가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하지만 스스로를 견뎌내는 이 시간이 좋다. 얼마나 남았을까 시계를 보고 싶다. 아마 시계를 보는 순간 바로 뛰쳐나올 것이 분명하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왜 굳이 힘든 걸 자처하는 거야?” “그러니까 왜 굳이” 메아리친다. 어른이 된 나는 목욕탕에 혼자 온다. 때를 밀어줄 엄마가 없고, “왜 벌써 나왔어? 좀만 더 불리고 와!” 하는 잔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럼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와 숨을 몰아쉬고, 사물함에 갇혀 있던 시집을 해방시킨다. 봉인 해제. 빛이 시집을 감싸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역시나 착각이다.


시집은 가볍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닿는 촉감이 좋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지만, 은은하게 감싸는 수증기 덕분에 마치 핸드크림을 바른 듯하다. 책과 목욕탕은 상극이라 오히려 궁합이 꽤 좋다. 쭈글쭈글해진 손가락이 종이 표면에 더 밀도 있게 달라붙는다. 화자의 마음은 지금 울고 싶다. 종이는 끝부분이 살짝 울어 있다. 그러다 보면 시집을 물에 담그고 발장구 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음이 붕 떠서, 온몸에 힘이 빠진다.


‘네가 워터프루프 책이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시집은 인기가 없다. 그래서 어렵고도 쉬운 마음이 든다. 다시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분석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러니까 한 자 한 자 눈에 새겨 넣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끼는 마음은 다신 보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다시 보지 않을 것들을 오히려 더 아끼게 된다는 말이다. 이 목욕탕도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은 집에서 꽤 멀고, 나는 곧 이사를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순간에, 나는.


여기에 내 또래는 없다. 눈앞에 아주 어린아이 하나만 중간 사이즈 바가지 두 개를 겹쳐 납작한 공 모양을 만들고 껴안고 누워있다. 아주 소중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그것을 부표로 삼아서, 냉탕을 헤집고 다닌다. 물에 엎드려 있으면 수달 vs 물에 누워있으면 해달. 어느 어린이 신문 헤드라인을 떠올린다. 그 애는 해달이다. 혼자 있어도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마치 해탈한 것처럼 보인다. 꽤 재미있어 보이는데? 그 여유를 방해하고 싶다는 사악한 욕심에 냉탕에 발을 들인다. 아차, 이렇게 차가울 줄야. 이곳의 온도는 너무 뜨겁거나 차갑고, 이곳의 주인은 너무 늙거나 어리다. 나는 이삼십 대의 애매한 사람들 속에서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게 살아왔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모른 체하면서.


이런 온도의 낙차를 아무렇지 않게 몸에 끼얹고, 팔다리가 새빨개질 때까지 박박 밀면서, 툭툭 끊기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거칠게 헤집어 말리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쩐지 다 괜찮을 것 같다. 화상 자국을 타투처럼 품고, 9개의 부항 자국을 견딘 등을 본다. 가로로 긴 줄과 실밥이 드나든 자국은 그러니까 살아왔다는 흔적 같다. “그래, 나 여기 있다.” 삶의 굴곡을 멋있게 이겨낸 훈장이라는 비유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모두가 그냥 거기 있었다.


입구 쪽에는 검은색이나 빨간색 레이스 속옷을 입고 게 중 제일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이 목욕탕의 실세가 아닐까. 보기만 해도 기세에 밀린 것 같다. 가만 관찰하고 있다가 한 분과 눈이 마주친다. 핑크색 세신 배드에 쫘악 물을 껸지고 43번 들어오라고 소리친다. 팔목의 번호를 본다. 내 차례다. 엉거주춤 들어가서 지시에 따라 얌전히 눕는다. 목욕탕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된다.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 옆으로 돌아눕고, 그렇게 360도로 돌아 돌아 처음의 모습이 된다. 내 모습이 흡사 전기구이 통닭처럼 느껴진다. 이제 처음의 부끄러움은 온 데 간 데도 없고, 이따 뭘 먹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빨간 레이스의 그녀는 ‘으이그, 네 때를 봐라’ 하셨지만 보기도 전에 쫘악 물을 껸지셨다. 어쩐지 해방된 기분이다. 대박. 단돈 25000원으로 내 때를 마주하지 않을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니. 자본주의는 꽤 좋은 것 같다. 바깥과 통하는 창문도 하나 없고, 신선한 공기 한번 들어오지 않는 이 폐쇄된 공간에서 해방이라… 참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처럼 다시 샤워를 하고 나가면서 무의식적으로 저울에 한번 오른다. 맨 몸으로 거울 앞에 선다. 평소에는 크림 하나 얼굴에 바르면 끝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다시 시작하는 날이니까.


파우치를 꺼내 와 종류별 스킨케어 제품을 앞에 나열한 뒤 머리의 물기를 짠다. 거울 속 나를 마주 보고 씨익 웃는다. 스킨, 에센스, 로션, 크림… 4겹의 레이어로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피부를 덮는다. 톡톡, 오늘을 열심히 보관해 주렴. 발가락 하나까지 섬세하게 바디 로션을 발라주고 나면, 몸 사이사이 이렇게나 많은 빈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그런 빈틈을 메워나가는 건 내 몫이라는 것도.


목욕탕의 헐벗은 여자들을 생각하면 두껍게 껴입은 마음들마저 헐벗어 버리고 싶다. 아름답지 않아도 돼, 웃지 않아도 돼, 사랑받지 않아도 되는,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면 돼.라고 말해주는 본연의 모습들. 아니,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함들. 내가 나를 사랑해 주는 방식을 착각할 때가 많았다.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고대기로 고불고불 말아주면서 나를 위한 치장이라고 세뇌해 보지만, 집 밖에서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았을 때 왜인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진짜 나를 위한 행동은 무엇일까? 내 마음 깊이 들여다보기, 나를 위해 애써주는 몸 돌보기, 그리고 점차 쭈글쭈글해지는 피부를 직면하기.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고 소중히 대해주는 것. 그건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게 되는 숙제가 될 것이다. 어떤 날의 난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어떤 날의 난 세상에서 나를 가장 혐오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나로부터 벗어날 순 없다는 것이다. 어쩌겠니,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내일 아침이면 욕탕의 물이 새로 갈아질 것이다. 일요일 오후는 물이 가장 더러운 날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각질과 고민과 한숨이 높은 온도에서 푹 고아져 진국이 된 날. 나쁜 건 이미 다 증발되었을지도 모른다. 목욕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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